우리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4 17: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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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위안부'와 에레나 할머니 ②

(지난주에 이어)

이영훈씨는 일본군 ‘위안부’와 달리 미군 위안부가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집단정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일정서는 있는데 반미정서가 없어서라는 말일까?

미군 위안부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와 달리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지속적인 성매매를 해야 했으며, 그에 따른 일반의 인식 역시 전시 피해자에 대한 것과는 다르게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들 중엔 국제결혼에 성공해 기지촌을 탈출한 사람도 있다. 이 에레나들을 바라보는 가난했던 시절의 한국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2018년 2월8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앞 삼거리에서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2월8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앞 삼거리에서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기지촌 여성들의 실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내 경우에는 윤금이씨부터다. 윤금이씨는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발언한 바로 이듬해 미군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시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한·미 동맹을 뒷받쳐주는 어둠의 ‘위안부’였던 이들이 구타와 강간과 심지어 살해라는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불러일으킨 분노를 아직 기억한다. 그러나 ‘보호지원집단’들은 단지 미군이 가해자라고 외치는 데서 머물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과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이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 그러니까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점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 또한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사용될 것이다. 오히려 이영훈씨 등이 주장하는바 일본군 위안부는 소규모 자영업자였다는 주장이야말로 ‘반일’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종일(일본 추종)적 주장이 아니겠는가.

성매매가 착취이고 성폭력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전시성폭력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들을 향해서도 매춘부라는 망언을 퍼붓는 이영훈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내가 피해자다”라고 나서지 못하게 하는 바로 그 집단정서다. 왜 이영훈씨들은 자신들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 미군 위안부들 중에는 이제 70대 노인이 되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분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도 할머니들인 것이다. 처음부터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 일본군 ‘위안부’들과 달리 이 미군 위안부들은 기나긴 ‘에레나’ 시절을 지나 병들고 나이 들어 우리 곁에 왔다.

2014년 김광진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주한미군기지촌 성매매피해 진상규명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2017년 유승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역시 자동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더라도,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반인권적 각종 폭력을 저지른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한국의 여성단체들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정부가 취한 정책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복하고자 애쓴다. 이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를 뒷받침하고자 법을 만들려는 단계에까지 이르러 있다. 이영훈씨가 ‘미군 위안부’라는 명칭을 사용해 준 것은 오히려 반갑지만, 불과 두세 명이라니, 그 많은 분들을 두 번 죽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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