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파생금융상품의 악몽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5 09: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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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의 주범…재발 가능성 낮아도 주의해야

최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가 높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의 금융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면서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금융기관에서 판매한 독일 국채 등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펀드(DLS) 등이 최근 큰 폭의 원금 손실을 기록하면서 다시 파생금융상품과 이로 인한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시작돼 큰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부실한 부동산담보대출(MBS)을 매개로 한 파생상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채담보부증권(CDO) 때문이었다. 그때도 그렇지만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부채가 담보가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왜 이런 상품들이 나왔던 것일까.

CLO, CDO의 배다른 동생일까?

은행은 예금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후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비용에 적절한 이윤과 상환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이 대출 이자가 된다. 대출을 받은 사람은 매달 이자를 꾸준히 갚아나가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상환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다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앞으로 들어올 수입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흔히 자산유동화증권(AB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안정적으로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자산을 기초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DO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애플, 삼성전자 등 초우량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10개 정도 넣고 저축은행 대출 등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대출채권을 20개 넣는 경우 안전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리고 여기에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보험 등을 가입한다. 부실한 자산들이 어느 순간 우량 자산으로 탈바꿈해 이를 통해 새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CDO는 부채상환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 이루어질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부채상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연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8년의 경우 부실한 주택담보대출, 일명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주택담보대출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함으로써 재발 가능성을 현격히 낮추고 있다. 그렇지만 넘치는 유동성과 추가적인 수익을 원하는 수요가 만나면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라는 금융상품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CLO는 저신용 기업들의 은행대출(레버리지론)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대출채권은 투기등급이지만 이러한 대출채권을 100~225개 정도 묶고 이를 상환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하고 적절한 신용 보강을 하게 되면 이들 상품은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받는 상품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대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보험사, 연기금 등의 투자가 가능해지고 이들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저금리로 인해 안정적인 국채 이자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높은 금리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2018년 미국의 CLO 발행액은 128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럽의 경우도 전년 대비 40% 증가한 270억 유로 규모다. CLO를 거래하는 전체 시장 규모는 2012년 이후 연평균 13.1%씩 성장해 2018년 말에는 6161억 달러에 이르렀다. 또 CLO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초자산이 되는 레버리지론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는데 2018년의 경우 6220억 달러어치가 발행됐으며 발행 잔액 규모는 1조15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 규모는 2007년 대비 2.1배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 은행들은 CLO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일본 농림중앙금고의 경우 620억 달러 규모의 CLO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웰스파고, JP모건, 시티은행 등도 200억~350억 달러의 CLO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4개 은행이 보유한 CLO는 전 세계 CLO 규모의 20%를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CLO 시장의 급속한 확대는 과거 CDO의 급증과 유사하다. 양자 모두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레버리지론과 같은 비우량 자산을 구조화해 우랑자산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교역량 감소와 경기후퇴가 본격화될 경우 한계 기업들의 대출상환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CLO 역시 과거 CDO와 같이 급속한 부실화와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중앙은행 카니 총재와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등은 2019년 수차례 CLO 급증이 과거 CDO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물론 과거 CDO와 비교할 때 CLO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며, 과거에 비해 은행들의 건전성 역시 높아졌음을 들어 CDO와 수평적 비교는 곤란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금융당국 대응 수단 마땅치 않아 우려

미국 기업들은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과도한 차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신규 투자나 R&D에 사용하기보다는 자사주 매입, 배당 및 M&A에 주로 사용하고 있어 경기후퇴 본격화나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으로 기업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길 경우 CLO의 리스크는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6월 한국은행의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CLO 투자 규모는 40억 달러 정도다. 2013년 말 10억 달러 대비 약 4배 증가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채권의 2.8% 수준이며, 투자 규모 자체가 제한적이므로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체적인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CLO의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거나 이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2008년 이후 10년 동안 진행돼 온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공급과 제로금리로 대표되는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규모는 매우 클 수밖에 없으며, 금융당국의 대응 수단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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