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나 할머니’에 대한 국가의 죄와 사죄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4 14: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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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위안부’와 에레나 할머니 ③

(지난주에 이어)

나라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이 엄청난 주장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에레나’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기 어려울 듯하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도 들리기 어렵겠고, 여기에 보태 이미 늙고 병들어 더 이상 성매매도 할 수 없고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하염없이 사그라드는 ‘양공주’들의 목소리 또한.

‘미군’ 위안부라고 불리는 이 ‘할머니’들이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이미 1948년에 ‘공창제도 등 폐지령’을, 1961년에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한마디로 성매매는 범죄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동두천이나 평택 등지의 기지촌, 속칭 텍사스 골목이라 불리는 도시의 성매매 집결지 등등이 경찰과 공권력의 비호 아래 존재해 왔다. 미국은 미군 병사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성욕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안소의 설치 운영이 필요했고, 한국은 이 위안소에서 벌어들이는 미군 상대의 돈벌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전하고 위생적으로”라니?

‘성매매방지법’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은 2011년 강동구 천호동 집창촌 모습 ⓒ 시사저널 포토
‘성매매방지법’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은 2011년 강동구 천호동 집창촌 모습 ⓒ 시사저널 포토

문제의식 없는 성매수자들 내버려두는 국가의 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 중 ‘소녀’들이 많았던 이유가 군인들의 성병 감염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읽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이유도 똑같다. 미군 병사들의 보건과 위생, 달리 말하면 성병 감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관리되는 여성들’이 필요했고, 한국은 금지된 성매매를 지역적으로 허용하는 특수지대를 만들어 이 여성들을 ‘관리’해 주었다. 이 관리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성병 관리’다. 여성들은 언제나 보건증을 소지해야 했고, ‘토벌’이라는 이름의 단속 때 보건증에 검진 도장이 없거나 성병에 감염된 미군 병사가 지목(컨텍이라고 불렀다)하기만 하면 무조건 수용소로 잡혀가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본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이다. 심지어 용량마저 높아서 쇼크사하는 여성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인 일의 이유는 오직 하나, 미군 병사의 안전을 위한 위생적인 몸 만들기였다. 이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기지촌에 유입되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거의 탈출하기 어려웠다. 도망가서 파출소에 갔더니 도로 포주한테로 데려다주더라, 라는 증언은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들면서 더 강하고 악랄하게 여성들을 통제했고, 미군뿐 아니라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까지도 국가관리는 확장되었다.

재판은 이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1·2심에 이어 원고 승소판결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판결의 결과, 국가가 배상을 한다 하여 국가의 죄를 다 사할 수 있을까. 박정희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견하고는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미담이 전해지는데, 이 에레나들 앞에서도 울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국가가 지금도 짓고 있는 죄는, 엄연히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어 있는데도 성매매에 대한 경각심이나 문제의식 없는 성매수자들을 내버려두는 죄다. 많은 논란과 혐의가 다 해명되더라도, 법무장관 후보자의 성매수자에 대한 관대함은 심각한 결격사유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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