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음란물법 위반 아니라 개인의 존엄 해치는 것”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3 09:16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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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논란’ ② 여성계에 물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 “성인 여성에게도 폭력과 혐오 가해질 수 있어”

인형이 한국 사회에 파장을 던졌다. 여성의 신체를 본떠 만들어진 ‘리얼돌’이다. 대법원이 지난 6월 ‘리얼돌’ 수입을 허가하는 판결을 하고 두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논란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26만 명이 리얼돌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했고, 리얼돌 반대 집회가 예정됐다. ‘사생활’이라는 찬성 입장과 ‘인격권 침해’라는 반대 입장이 맞서는 지금,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여성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8월28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를 만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진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다. 판결문을 보면 판사도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이다. 1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음란물이므로 유통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여성계 입장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음란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삶과 인격권, 존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음란물과 관련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기본권을 해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리얼돌에 대해 왜 반대하는가.

“리얼돌은 온전한 여성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여체를 성적으로 부각한 것이다. 성적인 욕망을 해소할 도구로 사용할 목적임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여성의 존재가 성욕을 해소할 대상으로 치환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왜 여성의 인권을 훼손한다고 보나.

“리얼돌은 얼마나 여성을 리얼하게 재현하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남성의 성적 욕구를 가장 최적화해 해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체를 재구현하는지가 포인트다. 작년에는 온라인상에서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여성의 성기가 있는 성인용품이 논란이 됐다. 결국 ‘능멸’이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리얼돌을 아무리 아끼고 예뻐하더라도, 기본적인 전제는 개성과 개인의 가치 등의 역동성을 없애고 재구현된 ‘몸’만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얼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소유욕, 지배욕을 발현하는 것은 건강한 방식일 수가 없다. 리얼돌이 자유롭게 유통되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성욕이나 취향은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논리다. 성욕이 해소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증가했다. 독일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성매매가 합법화되면서 인신매매와 여성혐오, 성폭력은 오히려 증가했다. 여성을 모욕과 폭력을 가해도 되는 존재, 성욕에 대한 모든 욕망을 해소해도 되는 존재로 만드는 전제가 성립된 것이다. 리얼돌이 있을 때 성폭력이 줄어든다는 주장도 같은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 리얼돌은 버릴 수 있고, 폭력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다.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여성에 대한 폭력 등으로 증폭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것뿐, 여성용 자위기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성들 주장의 전제는 포르노그래피에서 보아왔던 딜도의 모습 때문이다. 판매 사이트를 보면 남성의 성기가 재현된 성인용품의 판매 비중은 확연히 적다. 인간의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누구나 필요하다. 어떤 페미니스트도 그걸 막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폭력과 착취의 구조 속에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신체를 재현하고, 성적으로 부각시킨 것으로 성욕을 푼다는 것은 혐오와 차별을 느낄 수 있는 문제다.”

리얼돌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국가가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한히 확장돼야 하는가의 문제다. 자유의 무한한 확장은 인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말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논한다. 그러나 그들의 존엄을 훼손할 수 없게 기본적인 제한은 돼야 하고, 그 이후에 공론화돼야 한다. 리얼돌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존엄과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다. 혐오와 폭력에 맞닿아 있는 여성들이 느낄 때, 리얼돌에 대한 찬성 발언은 ‘강자의 언어’일 뿐이다.”

올 초 일부 남성들이 정부의 인터넷 유해 정보 차단에 항의하며 “야동을 허하라”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야동에 대해서도 반대하나.

“야동은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여성 혐오적인 야동 유통이 용인되고 있다. 그것들이 야동이라는 단어로 퉁쳐져 있고, 그것을 뜯어보는 논의가 없었다. 모든 성 표현물이 금지돼서는 안 된다. 억압하려고 했을 때 지켜야 할 방식은 중요하다.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 어떤 폭력 메시지를 용인하고 있는가를 살핀 후에 유통될 수 있는 포르노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실제 여성들이 리얼돌을 심각한 공포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6만 명의 동의가 있었던 것은 ‘리얼돌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작년에 단일 의제 최대 규모로 열렸던 혜화역 시위 역시 내 삶에 대한 폭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지가 ‘리얼돌 논쟁’의 핵심은 아니지만, 여성들은 내 얼굴, 지인의 얼굴, 연예인 얼굴로 리얼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폭력’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등장하는 포르노나 불법 촬영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리얼돌이 공포와 불안의 요소가 된 것이다.”

아동 리얼돌의 수입과 제작 등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리얼돌 전체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나.

“아동 리얼돌만 금지하는 법안은 ‘안전한 방법’이었다. 국민 청원에 부합하면서도 안전한 지점을 찾아 선택한 방법이다. 아동 리얼돌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폭력과 혐오를 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아무도 반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성인 여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제에는 동의하지 않는가.”

리얼돌 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하나.

“선진국의 결정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이라고 여겨왔던 국가들이 인권 이슈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따라가기보다는 한국적인 맥락이 반영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정부는 대법원의 판단을 어떤 방식으로든 유보하고 법을 새로 만들거나, 사회적인 기준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단순히 남초 사이트, 여초 사이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가 확신을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연구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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