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박정민의 자전적 산문집 《쓸 만한 인간》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8 10:00
  • 호수 15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로도 쓸 만한 한 사람 들여다보기

박정민은 2013년부터 매거진 《topclass》에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를 연재했다. 2016년 말 47개월간 모은 글이, 첫 출간됐고, 이번에 다시 리뉴얼돼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의 글은 일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경마장 가는 길》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하일지가 쓴 문학이론서에 《소설의 거리에 관한 하나의 이론》이 있다. 중심 개념은 작품의 중심인물과 작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작품의 중심인물과 작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독자와의 거리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작가는 작품과 더 거리를 둘수록 독자들이 더 깊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소설 등 작품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전적 산문은 더욱 그렇다.

《쓸 만한 인간》 박정민 지음│상상출판 펴냄│312쪽│1만4200원 ⓒ 조창완 제공
《쓸 만한 인간》 박정민 지음│상상출판 펴냄│312쪽│1만4200원 ⓒ 조창완 제공

4년 동안 연재한 글 책으로 엮어

이런 관점에서 배우 박정민의 글은 묘한 느낌을 준다. 자신과 가족, 영화, 여행, 이웃 할머니의 죽음 등 다양한 단상을 펼쳐놓았다. 글은 쉽게 읽히는 듯하지만 작가의 강한 아우라로 인해 그 안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중반쯤 넘어가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와 비슷한 감정선을 탈 수 있다. 독자들이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은 작가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10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스크린 앞에 다가온 그의 모습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파수꾼》 《들개》 《동주》 《변산》 등의 독특한 영화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그 자체로 독특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줬다. 영화 《변산》에서 보여준 현란한 래퍼의 기질이 그가 내놓은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삼십대 초반이 됐고, 《타짜: 원 아이드 잭》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함께 그의 자전적 산문집은 어떤 함의를 담고 있을까. 배우인 그에게 글이란 무엇일까.

“연기란 글을 말로 옮기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연재 제안으로 말을 글로 옮겨보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4년간 글을 쓰면서 그다지 달라진 건 없지만,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해 온 것도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할 말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 더 많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글도 일단 놓아버렸습니다. 이제 글을 말로 옮기는 일에 다시 몰두하는데, 이전이 그립기도 합니다.”

연재는 말 그대로 소소한 자신의 일들에 관한 것이다. 앞부분을 장식하는 것도 촬영을 위해 호기롭게 떠난 미국 여행이다. 길들의 이야기를 적고, 독자들도 그 경험을 통해 공감한다. 연재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소소한 일상, 영화가 중심이다. 글을 읽다보면 그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공항이라는 경계의 공간에 서는 것부터 타국에서 만나는 이들, 그곳의 공기와 역사 같은 것들에 짓눌려 나 자신이 작아지는 그 순간순간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들었던 음악들은 지금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도 배우 박정민은 여행지와는 금방 동화되지만, 사람들과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연기에서처럼 글에서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애쓰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자연스럽기도 하다.

“글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 한마디를 던져요. 가능하면 긍정적인 말입니다. ‘다 잘될 거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등이오. 제가 이겨내려는 것들처럼 독자들도 저에게 부정적인 기운보다는 긍정적 기운을 느끼고, 힘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그간 길든 짧든 칼럼을 연재하는 연기자는 많지 않았다. 스타의 지명도를 통해 판매고를 올리는 자서전은 많았지만 직접 글을 쓸 정도의 습관이 있는 연기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정민은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글을 연재했다.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글이지만 완성하기 위해서는 매번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자기검열을 거칩니다.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쉽게 읽히도록 쓰려는 겁니다. 제가 작가도 아니고 엄청난 고찰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뽐내면서 쓰고 싶지 않았어요. 몇 장 안 되는 글이지만 탈고하기까지는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의 이력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충주에서 태어났지만 서울로 가는 진입구인 야탑동에서 성장했다. 야탑동은 분당의 초입이지만 문화적으로 옛날 성남을 닮은 부분도 많은 지역이다. 연기를 시작했고, 대학도 인문학으로 시작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한예종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웠다.

초반기 그는 독립영화를 주로 했고, 연극에도 참여해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일반에 알리는 가장 큰 계기가 됐다. 그는 캐스팅된 후 자신이 맡은 송몽규에 근접하기 위해 중국 용정을 찾고, 송몽규의 무덤도 찾았다. 5억원의 저예산이지만 그는 그에 몰두했고, 배우로서 예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연기는 글을 말로 옮기는 일”

“관객들에게 ‘송몽규’라는 인물을 최대한 잘 소개하겠다는 일념으로 촬영했습니다. 영화의 성패 여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하늘나라에 계신 그분께서 판단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찌 됐든, 죄송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마음을 간직하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형 상업영화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병헌과 같이한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주연으로 정나한 역을 맡은 《사바하》 등은 그에게 시험무대였다. 반면에 주연 도일출 역을 맡아 곧 개봉하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본무대나 마찬가지다. 이제 글로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책은 독자들에게 깊은 회한을 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