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오늘만 사는 정치’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kim@gmail.com)
  • 승인 2019.09.23 09: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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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한민국이 ‘조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통째로 갇혔다. 사람들은 ‘조국 정국(政局)’에 놀라고, 조국 정국에 분개하고, 조국 정국에 안타까워하며 나날이 지쳐간다. 추석 명절 밥상 앞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권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야말로 ‘죽자 살자’ 싸움이다. 급기야 제1야당 대표는 조국 장관 퇴진을 외치며 삭발까지 했다. 9월 정기국회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워낙 판을 크게 키워놓다 보니 반전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월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월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한국형 누아르 액션 장르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은 영화 《아저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정치가 꼭 그 모양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외친 그 말처럼 ‘오늘만 사는 정치’의 폭주다. 정치권이 벌여놓은 싸움에 검찰까지 가세하면서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제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조국’에서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한 극한의 대결만 눈앞에 뚜렷할 뿐이다. ‘조국 지키기’에 매진한 청와대도, 조국 장관의 딸 문제를 집중 공격했다가 부메랑을 맞은 정치권도, 강수를 꺼내들며 싸움에 끼어든 검찰도 모두 너무나 크고 많은 것을 이 싸움에 걸어버렸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오늘만 사는 정치’의 폐해는 여러 면에서 크다. 대결에 매몰된 참전자들이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뒤엉켜 싸우는 동안 얼마나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안다면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문재인 정권=조국’이라는 프레임에 더 깊이 갇혀버린 청와대나, 툭하면 닥치는 대로 검찰에 고발해 온 정치권이나 위험부담이 커진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이 함께 손잡고 열어젖힌 ‘판도라 상자’의 내용물이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우선, 이제 어느 누구도 자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제한 타격’의 링이 열려버렸다. 그 자승자박에 대해서는 어떤 예외도, 변명도 더 통할 수 없다. 고소·고발 남발로 정치권 스스로가 검찰의 힘을 키워준 그 역설의 업보는 또 어찌할 것인가. 온갖 것이 다 까발려지는 조국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 앞으로 공직에 선뜻 나서려 할 것인가 하는 우려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정치권 대결에서는 누구도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처럼 상대방을 다 쓰러트릴 수. 없다. 또 그렇게 이긴다 해도 결코 이긴 것이 아니다. 국민이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어야만 승자로서의 영예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결코 ‘오늘만 사는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 그 정치에는 오직 승부만 있고 ‘여지(餘地)’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가 여지를 두지 않은 채 어떤 ‘플랜 B’도 없이 모든 것을 꼭짓점까지 밀어붙이면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계처럼 끝내 깨지고 망가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치에 여지가 있어야 경제에도, 사회에도 여지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국민이 숨 쉴 공간이 생긴다. 이제는 제발 국민도 숨 좀 쉬고 살게 하자. 국민이 원하는 국가는 오늘만 사는 ‘조국의 나라’도, 조국밖에 안 보이는 ‘오늘만의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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