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양국에 자충수 될 옥수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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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구입 약속한 미국산 옥수수…사려는 기업 없고, 트럼프는 표밭 잃을 수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구입을 약속한 미국산 옥수수가 자칫 양측 정상에 모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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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5일 뉴욕에서 열릴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에선 아베 총리의 ‘퍼주기 외교’를 꼬집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8월26일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산 옥수수 275만 톤을 추가 수입하겠다”고 약속한 게 화근이었다. 

대략 600억 엔(6669억원)에 달하는 이 물량을 사려는 일본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은 9월23일 “본지가 주요 6개 사료 기업·단체를 취재한 결과, (미국산 옥수수를) 추가로 혹은 앞당겨 구입하겠다고 응답한 곳은 현재 제로(0)”라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나방 유충에 의한 일본 농가의 피해를 언급하며 “민간이 옥수수를 살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사료업계는 “옥수수를 추가 구입할 정도로 유충 피해가 크지 않다”며 “미국산 옥수수는 일본산과 용도도 다르다”고 밝혔다. 

 

"옥수수 구매 실패하면 양국 불씨 될 수도"

도쿄신문은 “옥수수 구매가 진행되지 않으면 오는 25일 (정상회담 때) 예정된 미·일 무역협정 서명 후 양국 간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의 협상 전략은 옥수수 구입을 지렛대로 미국으로부터 일본산 자동차의 관세 철폐를 얻어낸다는 것이었다. 단 재팬타임스는 9월20일 복수의 소식통을 빌려 “미국은 관세를 없앨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성과 없이 자국 농가에 부담만 전가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농가를 달래기 위해 옥수수 수출을 추진했다는 시각이 있다. 일본에 팔려는 옥수수는 원래 중국이 사려고 했었으나,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면서 수출길이 막힌 상황이다. 게다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수년 간 중국이 미국산 콩의 구매를 줄이면서 미국 농가는 옥수수로 작물을 바꿔왔다”고 했다. 이로 인해 옥수수가 남아돌았다. 공급이 수요를 초월하니 가격은 올 여름 22% 떨어졌다. 

농가는 타격을 입었다. 미국 중서부에서 농업이 발달한 ‘팜 벨트(Farm belt)’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으로 알려져 있다. KB증권은 “팜 벨트에서 옥수수 농가를 중심으로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오는 10월 추수철에는 그 정도가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덧붙었다. 

 

농가는 트럼프 표밭…"민주당이 끌어오려 해"

이 와중에 일본이 옥수수 수입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농가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미국 정부의 에탄올 정책으로 농가의 인내심마저 떨어진 상황이다. 바이오연료의 하나인 에탄올은 주원료가 옥수수다.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40%가 에탄올 제조에 들어간다. 

미국은 농가 지원 차원에서 정유 기업에 에탄올을 쓰라고 권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에탄올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입장은 달랐다. 경쟁력 증진 차원에서 31개 소규모 정유사에 에탄올 사용을 면제해준 것.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에탄올을 안 써도 되는 정유사는 총 85곳으로 늘었다. 로이터는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농가에 시름을 안겨주는 사이, 민주당은 농가의 표를 끌어오려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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