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1점대 평균자책점만 유지했더라면…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8 10: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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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 기록에도 사이영상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

9월23일 새벽 류현진은 시즌 13승째를 거뒀다. 비록 홈런 두 방 허용으로 평균자책점(방어율)이 2.41로 좀 더 높아졌지만, 여전히 이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의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미국 현지 분위기다.

류현진 ⓒ AP 연합
류현진 ⓒ AP 연합

사이영상은 메이저리그의 양대 리그(아메리칸리그·내셔널리그)에서 공히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이다. 과거에는 다승을 거둔 투수들에게 유리했지만, 최근에는 평균자책점에 보다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경향이다. 여기에 탈삼진율과 이닝 수 등도 중요시된다. 현재 류현진은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다승 공동 6위, 이닝당 출루 허용률(1.02) 3위 등 다른 성적도 나쁘지 않다. 시즌 중반까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 0순위였다. 그런데도 류현진이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뭘까.

 

사이영상 선정 기준에서 WAR 중요성 커져

현재 수상 가능성이 가장 강력하게 점쳐지는 경쟁자인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과의 성적을 비교해 보자. 아래 기록은 9월23일 현재 기준이다.

표에서 다승과 평균자책점은 류현진이 앞서고 있다. 투수 성적에서 특히 이 두 부문을 매우 중요시하는 KBO리그라면 당연히 류현진이 디그롬보다 앞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두 선수의 다른 스타일은 기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좌완으로 컨트롤을 앞세운 류현진은 본인의 말처럼 맞혀잡는 유형이다. 반면 디그롬은 160km에 달하는 빠른 볼과 150km를 오르내리는 강력한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타자를 힘으로 누르는 스타일이다. 디그롬은 작년에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디그롬은 9이닝당 탈삼진율, 이닝당 출루 허용(WHIP), 그리고 피출루율과 피장타율을 합친 피OPS에서도 류현진을 앞선다. 여기까지 본다면 두 선수의 우열은 엎치락뒤치락 엇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류현진이 디그롬에 뒤처지는 기록은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다.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깊이 들어간 야구 기록 방식에 기본을 둔 WAR 수치(‘팬그래프 닷컴’ 사이트)에서 류현진은 4.4로 리그 7위에 올라 있는 반면 디그롬은 6.7로 1위다. 또 다른 사이트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도 자체적인 WAR 수치를 발표하는데, 거기서도 디그롬이 6.9로 1위인 반면, 류현진은 4.6으로 10위에 그친다. 도대체 WAR이 뭐길래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일단 리그 평균치와 비교해 얼마나 잘 던졌나가 측정의 기본이다. 팬그래프 닷컴의 경우 ‘수비 독립 평균자책점’을 중시한다. 즉 수비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타자를 잡아낸 것을 말한다. 수비의 도움을 벗어나려면 당연히 삼진과 같은 수치가 높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경기 상황에 따른 활약도를 수치화해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이 WAR 수치가 메이저리그의 MVP나 사이영상 투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통한의 8월24일 뉴욕 양키스전…올 시즌 최악의 투구

코리안 메이저리거 1호로 1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한 박찬호에게 최고의 시즌은 2000년이었다. 당시 박찬호는 18승으로 리그 5위, 9이닝당 탈삼진도 8.64개로 5위였고 평균자책점은 3.27로 7위였다. 이런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사이영상 투표에서 아예 표를 받지 못했다. 당시 수상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랜디 존슨으로 19승에 평균자책점 2.64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존슨의 WAR은 8.1로 압도적 1위였다. 2010년부터 지난 9년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는 WAR 순위에서 1위가 5번, 2위가 3번, 3위가 1번 차지했다. WAR 수치를 무시할 수 없음이 잘 나타난다.

WAR 수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흔히 타자들을 압도하는 측면으로 보이는 탈삼진 순위와의 상관관계도 비슷하다. 1위가 사이영상을 5번 받았고 2위 2번, 3위 역시 2번이었다. 반면 류현진이 강세를 보이는 평균자책점에서는 사이영상 수상자가 1위 4번, 2위 2번, 3위 2번, 8위 1번씩이었다. 이 역시도 중요한 수치지만, WAR보다는 절대성이 약간 떨어짐이 느껴진다.

과거와 같이 단순히 평균자책점과 다승에 무게를 두었던 시절이 아닌 것이다. 물론 타 선수들과 비교될 정도의 압도적 평균자책점, 즉 1점대 방어율을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투수는 단 2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한 명은 잭 그레인키로 같은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제이크 아리에타에게 밀린 사례여서, 엄밀히 말하면 18번 중 딱 한 번을 제외하곤 무조건 1점대 평균자책점은 사이영상 수상의 보증수표였다. 지난 19년 동안 내셔널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1점대를 기록한 선수가 단 6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기록의 중요성을 잘 말해 준다.

시즌 후반까지 경이적인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류현진의 입장에선 8월24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4.1이닝 동안 7실점한 올해 최악의 투구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이 경기로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1.64에서 2.00으로 치솟았다. 

MVP 투표의 경우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팀 성적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하위 팀에서 MVP가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에 못 오른 팀에서 MVP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이영상은 다르다. 소속팀이 비록 꼴찌를 했더라도 본인의 성적이 우수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내셔널리그 승률 1위를 달리는 LA 다저스 소속이란 점 또한 실질적으로 류현진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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