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모이는 유튜브·게임…광고도 ‘덕후’ 전성시대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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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민 제일기획 CD “미친듯이 게임했더니 광고회사서 ‘대체 불가’ 되더라”
이은민 제일기획 CD가 9월26일 서울 한남동 제일기획 본사에서 광고인 지망생 등에게 광고업계 변화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 제일기획
이은민 제일기획 CD가 9월26일 서울 한남동 제일기획 본사에서 광고인 지망생 등에게 광고업계 변화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 제일기획

“게임에 미쳐 수천 만 원씩 쓰던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9월26일 오후 서울 한남동 제일기획 본사 1층 홍보관에 광고인 지망생 40여 명이 모였다. 이은민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직함의 '크리에이티브'란 단어에서 보듯 CD는 창의성에 기반해 구체적인 광고물 제작을 진행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광고회사에서 오랜 경력과 성과를 쌓아야 겨우 CD가 될 수 있다. 아직 첫 발도 떼지 못한 광고인 지망생들에게 국내 최고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의 CD는 하늘처럼 우러러보는 자리다. '스펙'이 좋지 않으면 아예 꿈도 못 꿀 직업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CD는 대뜸 지망생들에게 "나는 여러분보다 스펙이 좋지 않을 것이다" "지금 클라이언트·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공감하는 능력은 여러분이 나보다 탁월하다"고 말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 CD는 여러 광고회사를 거쳐 제일기획에 경력으로 입사했다. 그는 "제일기획 기준으로 나는 '기대 이하'다. 머리가 좋거나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영어를 잘 하지도 않는다"라며 "CD가 된 건 순전히 게임이란 트리거(Trigger)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윽고 강연장 화면에 이 CD의 과거 '지질하던' 시절 사진들이 올라왔다. 초췌한 얼굴로 게임이나 낚시를 하는 사진이었다. 그는 게임에 깊이 빠져서 돈 몇천 만 원을 쏟아붓거나 낚시하러 꾸역꾸역 멕시코까지 갔던 사연을 털어놨다. 멀쩡한 광고회사 직원이었지만,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잔뜩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기도 했다. 본업인 광고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열심히 한 반면 게임하며 노는 일엔 혼신을 다했단다. 

이은민 CD가 제작한 게임 '포트나이트' 광고 캠페인 ⓒ 포트나이트 코리아
이은민 CD가 제작한 '포트나이트' 광고 캠페인 ⓒ 포트나이트 코리아

그러다 보니 자신 만의 색깔이 생겨 업계 최고인 제일기획으로 손쉽게(?) 이직하고, 주특기인 게임 분야를 접목한 광고로 결국 CD가 됐다. 바로 게임 '포트나이트' 광고 캠페인 제작이다. 이 CD는 포트나이트 작업 당시 밤을 새워가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고 전했다. 그처럼 게임을 마니아 수준으로 잘 아는 광고회사 직원은 드물었고, 이는 곧바로 광고주 상대 프레젠테이션에서 먹혀들었다. 이 CD는 "지금도 제일기획에서 게임 관련 일이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 연락 온다"며 "나는 광고는 잘 모른다. 다만 게임과 관련해 광고주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CD"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CD는 광고인 지망생을 비롯한 구직자들을 향해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게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여기서 더 나아가 좋아하는 것과 직무를 연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나의 경우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다 좋은 콘텐츠가 보이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모아서 '웃긴 것' '공감되는 것' 등으로 분류해 놓는다"며 "그런 게 쌓이면 장담컨대 업무 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가 폭발적인 인파를 모으고 돈을 벌어들이는 시대다. 애들 놀이 쯤으로 치부되던 게임은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을 내걸기도 한다. 여기서 기존의 통념, 습관, 연륜 등은 어렵잖게 전복당한다. 이 CD는 "광고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광고를 잘 아는 사람이 광고를 잘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좋은 CD가 되려면 나이가 어린 소비자의 얘기를 알아들어야 하기에 어려지기 위해 계속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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