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살아난 골프 흥행 불씨에 찬물 끼얹은 ‘손가락’
  • 안성찬 골프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6 13: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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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소음에 ‘손가락 욕설’ 파문 일으킨 김비오…KPGA, 진화에 전전긍긍

‘야단났다 야~’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가 KBS 2TV에서 방영한 대국민 사기극 드라마 《국민여러분》에서 부른 OST 노래 제목이다. ‘참 야단났다 야,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노래 가사가 현실이 되어버린 ‘불운의 선수’가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활약하는 김비오(29·호반건설)다.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3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 우승의 기쁨은 사라졌다. 골프선수로는 사실상 생명이 끊긴 셈이다. 그만큼 이번 손가락 욕설 파문과 중징계는 1968년 KPGA 창설 이래 사상 초유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프로골퍼 김비호가 9월29일 열린 KPGA투어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 4라운드 16번홀에서 티샷을 한 후 갤러리들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고 있다. ⓒ YTN 방송 캡쳐
프로골퍼 김비호가 9월29일 열린 KPGA투어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 4라운드 16번홀에서 티샷을 한 후 갤러리들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고 있다. ⓒ YTN 방송 캡쳐

“실력과 인성 겸비한 선수단체로 거듭날 것”

내용은 이렇다. 9월29일 경북 구미시 선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PGA투어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 4라운드 최종일 경기 16번홀(파4). 구미에서 처음으로 열린 탓인지 수많은 갤러리가 골프장을 찾았다. 김비오가 티잉 그라운드에서 다운스윙을 하는 순간 갤러리석에서 찰칵하는 휴대전화 카메라 촬영 소음이 터졌다. 이 때문에 그는 티샷 실수를 했다. 스윙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임팩트가 돼 버렸다. 비거리는 겨우 100야드밖에 나가지 않았고, 러프로 굴러갔다. 그는 분에 못 이긴 듯 갤러리들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했고, 드라이버 헤드로 바닥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절묘하게 이 손가락 욕설은 JTBC TV중계 화면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며 그대로 노출됐다.

그의 낯부끄러운 행동은 바로 ‘도마’에 올랐다. 포털사이트 실검 상위에 오를 정도로 팬들을 격앙시켰다. 골프팬들의 분노가 쉽사리 식지 않자 한국프로골프협회는 10월1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바로 징계를 내렸다. 10월1일부터 2022년 9월30일까지 3년간 자격정지를 내린 것이다. 벌금 1000만원에다 제네시스 대상포인트 등 2019년 KPGA 코리안투어의 모든 기록은 각종 순위에서 모두 제외됐다.

김규훈 상벌위원장은 “김비오 선수는 프로 자격을 갖춘 선수로서 굉장히 경솔한 행동을 했고, 이에 합당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며 “물론 대회가 끝난 뒤 반성과 사죄의 뜻을 보였고 개인 SNS에도 사과의 글을 올렸지만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KPGA의 모든 회원과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위상을 떨어뜨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KPGA 이우진 운영국장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골프를 사랑하는 팬들과 대회 스폰서 관계자분들께 굉장히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갤러리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과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인성 교육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또 “프로 선수들은 팬이 있어야 존재한다. 대중의 관심이 있어야 대회가 열리고 TV를 통해 중계되며 결과가 언론에 의해 쓰여진다. 다시 한번 이번 일로 상심이 컸을 팬 여러분과 관계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들이 활동하는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10월1일 경기 도중 갤러리에게 ‘손가락 욕설’을 한 프로골퍼 김비오가 경기도 성남시 KPGA빌딩에서 열린 상벌위원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던 중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1일 경기 도중 갤러리에게 ‘손가락 욕설’을 한 프로골퍼 김비오가 경기도 성남시 KPGA빌딩에서 열린 상벌위원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던 중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골프는 매너와 에티켓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실골프협회(R&A)가 제정한 골프규칙을 보면, 에티켓과 매너가 가장 첫 장에 나올 정도로 중요시한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쌍방과실’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갤러리석에서 술을 마시고, 환호성을 지르는 대회도 있기는 하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은 관중석에 ‘갤러리들의 해방구’를 만들어 갤러리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수가 스윙할 때는 조용히 해 달라고 주문한다.

 

타이거 우즈도 갤러리 소음에 짜증 표출

사실 대회 때마다 선수들은 소음에 시달린다. 2017년 제주도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PGA투어 더 CJ컵에서도 선수들은 갤러리의 카메라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탓에 사진기자와 갤러리들이 매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것이다. 우승자 저스틴 토머스(미국)도 플레이 중 갤러리를 향해 “노 카메라, 노 플래시”라고 외치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2002년 경기 고양시 한양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오픈에 출전했던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당시 한 갤러리가 카메라 셔터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자신의 클럽으로 갤러리를 때리려는 몸짓을 취하기도 했다. PGA투어에서 방송 카메라맨이 자신을 가까이에서 찍자 ‘필드신사’ 필 미켈슨(미국)조차 욕설을 내뱉어 전 세계의 전파를 타기도 했고, 디오픈에서는 사진기자의 카메라 소리에 제대로 샷을 하지 못하자 비속어를 던지기도 했다.

갤러리를 향해서는 아니지만 스스로 화를 내거나 침을 뱉거나 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골프지존’ 타이거 우즈(미국)는 수많은 광팬들을 몰고 다니지만, 유독 소음에 민감하다. 우즈는 자신이 샷을 할 때 소음이 들리면 샷을 한 후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거나 신경질을 부리며 클럽으로 땅을 찍기도 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골프 경기 특성상 골프선수들은 작은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스윙 순간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는 선수의 리듬과 템포를 깨트리기 십상이다. 샷을 망가트린다는 얘기다. 특히 임팩트 순간에 나는 소음은 선수에게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PGA투어에서 활약하는 김시우(25·CJ대한통운)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금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소음은 어느 정도 괜찮다. 하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상황에서의 카메라 소리는 마치 폭탄처럼 굉음으로 들린다”고 전했다.

김비오는 우승 인터뷰를 사과로 시작해 사죄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번 욕설 파장은 단순한 김비오의 개인 문제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협회가 스폰서 유치를 비롯해 대회 수와 상금 확대 등 어렵사리 살려낸 ‘흥행 불씨’가 풍전등화(風前燈火)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골프(KLPGA)에 비해 인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KPGA는 골프장을 찾은 팬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 주고, 원포인트 레슨까지 하는 등 갤러리들과 호흡하며 남자골프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번 김비오의 ‘일탈’이 모처럼 가능성을 보였던 남자대회의 인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길 KPGA 관계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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