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초역 사거리에 서서
  •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6 18:00
  • 호수 156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토요일 ‘마침내’ 또는 ‘참다못해’ 검찰 개혁을 외치러 서초역 그러니까 검찰청 앞으로 나갔다. 이제 나이도 느긋한데 뭐를 참지 못해 이렇게 광장으로 나갔는가?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요 근래에 검찰이 한 짓을 보면 장관 청문회도 열리기 전부터 그들이 인지한 의혹으로 한 집안을 박살 낼 지경으로 수사를 하고 압박을 가했다. 이것이 그들 권력의 과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 그들이 과시하는 것은 단순한 힘자랑이 아니다. 국민을 겁박하는 행위다. 그것도 교묘하게 언론과 짬짜미해서 말이다.

내가 기회 있을 때(검찰에 관계된 일이 터질 때)마다 앞세우는 검찰 이야기가 있다. 10년 전쯤 EBS방송에서 외국의 뇌 과학자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멍게는 태어나서 동물로 살아간단다. 어렸을 때는 아주 미약한 뇌의 활동으로 자기가 정착할 암반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이런 헤맴도 마치 사시를 통과하기 위해 젊은 청년들이 고시원을 떠도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어쨌든 동물로서 살아간다는 거다. 그러다 마침내 적당한 암반을 만나면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뇌의 활동은 정지되고 식물로서 살아간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야! 어쩌면 검사동일체를 외치는 우리나라의 검찰을 이렇게 잘 비유할 수가 있는가?’

범죄에 대해 수사하고 기소권을 행사할 때 모든 검사가 독립적인 검사로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검사동일체’의 요건이다. 그들은 검찰 조직의 일원이 되는 순간 ‘검사동일체’의 ‘무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냥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조직으로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 참 인간적으론 불쌍한 사람들이다(위의 ‘멍게 검찰론’은 2018년 6월20일자 시사저널에 실려 있다).

9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촛불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촛불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초동 검찰 개혁 시위 현장에 앉아 나는 다시 한번 검찰 권력은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를, 또 검찰 권력은 해방을 외치는 나 같은 예술가와는 영원히 불화할 수밖에 없는가를 곱씹고 있다.

그런데 오후 5~6시쯤 되니 점점 밀려드는 인파가 심상치 않았다. 2~3년 전 광화문 촛불시위를 생각하게 했다. 그때 광화문 촛불시위는 ‘박근혜 정권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아주 명쾌한 목표가 있었다. 그때도 광화문 시위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과는 어딘지 의기투합하고 감성이 교류되는 걸 느꼈는데 이번 서초동 시위현장에서도 똑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뭔가 모르게 타자들과 같은 감성으로 교류한다는 것은 소위 예술에서 이야기하는 ‘미메시스적 감성’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이성으로 재단되지 않는 자연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미메시스적으로 감응하고 소통하는 인파, 적어도 100만 이상의 사람들과 한 광장에서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이는 정치권이 소화 못 시키는 민주주의를 국민이 광장에서 직접 관철시킨다는 국민의 의지로 읽힌다.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 마침 ‘검찰 개혁에 정치권이 나서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잘된 일이다. 지금껏 정치권에서 해결이 안 되니 나 같은 그림쟁이들도 광장으로 나와 구호를 외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국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정치권이 나서기 전에 검찰 스스로 임은정 검사처럼 용단을 내리고 각성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으리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