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 여전히 뜨거운 남자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2 12: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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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맨》으로 돌아온 ‘모두의’ 배우…그의 매력 분석

‘세상 어딘가에 나의 DNA로 탄생한 복제인간이 있다면?’ 제목이 힌트다. 쌍둥이라는 뜻이 암시하듯 《제미니 맨》은 복제인간을 그린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윌 스미스가 1인 2역을 맡아 51세의 헨리 브로건과 헨리의 복제인간인 23세 주니어를 오간다. 영화에서 젊은 주니어는 중년의 헨리를 바라보며 놀리듯 말한다. “50대의 내가 이런 모습이라고?” 이에 대한 헨리의 반응. “이봐, 이 정도면 훌륭하게 나이 든 거라고!”

맞다. 올해로 52세인 윌 스미스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회춘한 20대의 윌 스미스와 붙여놓아도 그 매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30년 세월의 중력을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날렵하고 단단하며 이전에 없던 중후함으로 가득 차 있다. 《반지의 제왕》 《아바타》 등을 만든 웨타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20대 주니어와의 대비는 윌 스미스의 ‘나이 듦’을 부각시킨다기보다, 그가 밟아온 지난 30년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 주니어의 나이는 윌 스미스가 NBC 시트콤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The Fresh Prince of Bel-Air)》를 통해 배우로 데뷔하던 때다. 길거리 문화가 익숙한 고등학생 윌(윌 스미스)이 상류층이 모여 사는 베벌리힐스의 친척 집에 오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작품에서 윌 스미스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제미니 맨》의 기술력이 실제 윌 스미스의 젊은 시절을 얼마나 실감 나게 구현했는가를 확인하려면 이 시트콤을 보면 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등에서 정식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물론 스틸컷으로도 비교는 충분히 가능하다.

윌 스미스는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에 캐스팅되기 전 래퍼로 이름을 날리는 뮤지션이었다. 1989년 결성된 ‘디제이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라는 이름의 힙합 듀오에서 ‘프레시 프린스’로 활동했다(짐작하겠지만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는 래퍼 윌 스미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시트콤이었다). 단순 취미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불리는 그래미 어워드에서만 총 4번의 상을 받았다. 평생 가수만 해도 한 번 받기 힘든 상을 짧은 기간에 품었으니 그의 음악 실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제미니 맨》의 헨리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미니 맨》의 헨리 ⓒ 롯데엔터테인먼트

성공한 래퍼의 화려한 변신

윌 스미스의 랩은 기본적으로 밝고 신난다. 가사에 비속어도 섞어 쓰지 않는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멋있게 표현하기 위해 그런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할머니의 조언을 철학으로 받아들인 덕이다. 힙합 특유의 저항정신이 옅고 분노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음악은 힙합 아티스트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에미넴은 《The Real Slim Shady》라는 노래에서 “윌은 앨범 판매 때문에 노래에 욕도 못 넣지, 그런데 난 해”라고 ‘디스’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윌 스미스는 자신의 견해를 견지했고, 지금도 견지해 나가고 있다. 자유분방한 가운데 발견되는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면모는 윌 스미스의 이미지를 견인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래퍼로서의 윌 스미스 재능은 영화에서 종종 빛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히트작 중 하나인 《맨 인 블랙》(1997)에서 그는 수록곡 《Men In Black》을 직접 불러 음원 차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 역시 윌 스미스가 직접 OST에 참여한 작품이다. 그리고 올해 모두가 열광한 《알라딘》. 잘 알려졌다시피 《알라딘》이 개봉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이 가장 우려를 표한 건 지니 역의 윌 스미스였다. 그런데 웬걸. 파란 분칠을 한 그는 등장하는 장면 족족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능청스러운 랩을 구사하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로빈 윌리엄스표’ 지니와는 완벽히 다른 매력의 지니 탄생. 오죽하면 이 영화의 제목을 《알라딘》이 아니라 지니라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래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뒤 영화 《나쁜 녀석들》(1995)을 통해 섹시한 남자의 면모를 뽐냈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 데이》(1996)와 《맨 인 블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눈여겨볼 것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다. 지금이야 흑인이 히어로 물에서도 활약하는 시대지만, 1990년대 초엔 흑인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캐릭터 폭이 좁았다. 특히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는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흑인 배우는 백인 주인공의 친구이거나 악당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웃음을 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시장에서 윌 스미스는 인종과 편견을 지우며 넓은 층의 지지를 얻었고, 슈퍼스타가 됐다.

특히 《맨 인 블랙》은 3편까지 이어지며 ‘MIB 요원 J=윌 스미스’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배우가 어떤 캐릭터의 아이콘이 된다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윌 스미스와 《맨 인 블랙》의 인연이 그랬다. 윌 스미스 없는 《맨 인 블랙》은 어떨 것 같냐고? 지난 6월 리부트로 돌아온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이 그에 대한 해답이다. 영화는 윌 스미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다. 토르로 유명한 크리스 헴스워스가 주연을 맡았지만, 《맨 인 블랙》 안에서의 존재감은 윌 스미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알리》(2001)는 윌 스미스 배우 인생의 변곡점이 된 작품이다. 엔터테이너 이미지가 강했던 윌 스미스는 《알리》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완벽하게 변신,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연기력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입지적인 인물인 알리를 연기하기엔 역부족이란 이유로 캐스팅을 무려 40번이나 거절한 후 출연한 작품에서 부담을 이겨내고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인 것이다. 노숙인에서 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으로 성공한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행복을 찾아서》(2006년)에선 실제 아들 제이든 스미스와 출연해 지극한 부성애를 그려내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윌 스미스는 11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1억5000만 달러를 넘은 흥행 보증수표이기도 했다.

 

흥행력과 연기력 갖춘 배우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한 작품도 물론 있었다. M 나이트 샤말란과의 만남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애프터 어스》(2013)는 1억3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예산으로 제작됐지만 엄청난 혹평과 함께 빠르게 극장에서 철수했다. DC의 악동들을 모은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또한 연출이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많은 팬들에게 적잖은 배신감을 안겼다.

배우로서 최근 몇 년간 그리 좋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윌 스미스에게 올해는 조금 각별하다. 앞서 언급한 《알라딘》으로 아직 흥행파워가 죽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였고, 20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제작 얘기가 오갔던 《제미니 맨》을 드디어 완성해 선보였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쁜 녀석들》의 3편 《나쁜 녀석들: 포에버》도 출격 준비 중이다.

그래미와 아카데미를 모두 석권한 래퍼이자 배우.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타. 그리고 그는 미국 10대 아이콘으로 떠오른 제이든 스미스와 뮤지션 윌로우 스미스의 아빠로도 이젠 유명하다. 제이든 스미스와 윌로우 스미스에게 윌 스미스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팔불출 아빠이자 인생의 좋은 선배다. 일찍이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달콤함을 맛본 윌 스미스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긍정의 마인드로 도처에 깔린 유혹에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래퍼와 배우를 넘어 제작자로서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누비고 있는 윌 스미스는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뜨거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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