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신공항 재검토’, 여권의 총선용 큰 그림인가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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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PK 세력 확대, TK 고립 노림수”
與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 여부 검토…확대 해석 경계”

PK(부산·경남·울산) 여권과 3개 단체장이 '김해신공항 재검토'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해신공항은 '반쪽짜리 공항'인 탓에 부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는 여권 핵심부의 주장에 일견 공감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해신공항 재검토' 이면에 여권의 '큰 그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 판을 흔들 일종의 구상이 깔려있다는 전제 아래 여러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김경수 경남지사가 김해 신공항으로는 부울경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했다. 여권 핵심 인사가 '신공항 재검토'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뭔가 계산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김해공항 계류장 모습 ©연합뉴스
김해공항 계류장 모습 ©연합뉴스

與 "노림수 없다"…野 "PK·TK 보수대통합 저지"

그렇다면 과연 여권의 '그림'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없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도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 여부다. 때문에 PK 단체장과 여권이 자체 검증단을 만들어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김해신공항 건설이 강행되면 심각한 소음피해와 안전사고, 환경파괴 우려 외에 재검토로 의도하는 정치적 구상은 없을 것"이라며 노림수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야권 인사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들의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여권의 PK 세력 확대, 야권의 TK(대구·경북) 고립'이 핵심이다. 여권의 궁극적 목표는 21대 총선에서 필승하고 2022년 대선 승리의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PK를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만들 수 있고, 때문에 선거 결과를 가늠할 보수대통합을 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시각은 야권에서 주로 나왔고, 이런 가운데 야당 의원들이 국감에서 '김해신공항 재검토'에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10월11일 부산시청 국감에서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은 "오거돈 시장과 민주당 정권이 총선을 앞두고 김해신공항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완수 한국당 의원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전 정부 결정대로 김해신공항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해신공항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정치권의 내년 총선용이다"고 지적했다.

야권은 여권의 '김해신공항 재검토'에 PK·TK 보수 결집을 막는 등 야권 무력화 의도가 숨어있다는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여권이 내년 총선에서 PK 의석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서 보수의 심장인 TK를 덩그러니 고립시킨 뒤 정치 지형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24일 열린 부·울·경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단 최종보고회에서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동남권 관문공항을 외치고 있다(사진 왼쪽) 주호영 의원 등 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이 6월21일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과 관련,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4월24일 열린 부·울·경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단 최종보고회에서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동남권 관문공항을 외치고 있다(사진 왼쪽) 주호영 의원 등 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의원들이 6월21일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과 관련,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TK·野 "김해신공항 재검토는 TK 갈라치기"

야권의 한 관계자는 '총리실이 동남권 신공항을 검증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 전국경제투어 등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적용할 경우 가덕도 신공항과 남부내륙고속철도 등 PK 관련 사업들이 최대 혜택을 받는다. 반면 TK는 PK에 비해 형편없다. PK·TK 간 해묵은 갈등을 부각시켜 야권 결집을 막아야 하는데, '김해신공항 재검토'는 바로 이걸 노리는 것이다"고 했다.

'김해신공항 재검토' 자체가 TK를 고립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얘기다. 이는 PK에서 정권 창출의 프리미엄으로, TK에서 홀대로 지역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영남권 보수 세력의 분리·분열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지난 2006년부터 입지를 두고 PK와 TK가 경쟁을 벌였다. 신공항 부지로 TK는 밀양을, PK는 가덕도를 요구하면서 지역갈등의 원인으로 커졌다. 정부는 당초 2009년에 발표할 예정이던 용역조사 결과 공개를 3차례나 미루기도 했고, 2011년 3월 밀양과 가덕도 모두 적합하지 않다며 백지화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2013년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국내가 아닌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 2016년 경제성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김해공항 확장이 결정됐다. 그러나 2017년 정권이 바뀐 뒤 여당 소속 PK 단체장들이 반대하면서 논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TK지역과 야권은 "궁극적인 목표는 TK 갈라치기"라고 못박고 있다.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10월2일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공항 검증 문제가 더 이상 영남권 사회 갈등을 조장하면서 추진되면 안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정태옥 의원도 "'김해신공항 재검증'에 TK와 PK를 갈리치기 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봉쇄하려는 속셈이 깔렸다"고 했다.

앞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6월21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총리실 재검토 결정에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 정부가 일부 자치단체의 정치적인 요구로 사업 재검토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실추시키는 동시에 영남권을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일련의 '김해신공항 재검토' 흐름과 이로 인한 TK의 부정적 여론을 다독이려는 정부·여당의 움직임도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10월1일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역대 처음으로 대한민국 안보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애국의 도시 대구에서 국군의 날을 기념하게 됐다"고 했다.

특히 이날 국군의 날 기념식이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대구 방문은 TK 민심잡기를 위한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한 때문이다. 실제 이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대구'라는 단어를 9번, '대구 공항'을 3번 언급하면서 공을 들였다.

여권도 '김해신공항 재검토 이슈가 지역감정을 유발한다'는 얘기를 단정적으로 하는 건 비논리적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10월11일 부산시 국감에서 "대구·경북이 합의를 깼다. 동남권 관문공항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오거돈 부산시장 발언에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지역 싸움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 역시 "김해신공항 재검증이 총선용으로 호도돼 유감스럽다"고 언급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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