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없는 제조업체도 성공할 수 있을까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9 15: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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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레스(less) 비즈니스 모델 도입해 ‘폭풍 성장’한 기업들

일반적으로 브랜드는 제품(Product) 제조로 시작해, 가격(Price)을 결정하고 판촉(Promotion) 활동을 통해 자사 매장이나 EC사이트(Place)에서 판매하는 흐름을 보인다. 전통 경영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4P 전략’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 ‘공장 없는 제조업, 가게 없는 소매업, 점포 없는 음식점’을 표방하는 레스(less) 비즈니스 모델이 그것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2013년 창업한 야맵(YAMAP.Inc)은 본질적으로 등산용품 제조업이다. 하지만 생산라인이 없고 판매할 매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년 폭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150만 명의 마니아를 거느린 등산지도 앱(App)이 있다.

일단 프로세스를 보자. 먼저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등산가를 위한 전용 앱(Yamap)을 개발했다. 이 앱을 켜면 현재 등산 중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그동안 올랐던 등산코스도 매핑해 보여준다. 이용자들끼리 동선과 날씨를 공유하며 새로운 루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10월3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9 IFS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10월3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9 IFS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거꾸로 연결하는 역발상

등산 중 조난 사고나 장비 고장, 파손, 도난에 대비한 보험 가입도 가능하다. 휴대폰 액정 파손 7만 엔, 구조대 수색비용 45만 엔, 헬기 수색비용 165만 엔이 모두 하루당 250엔의 보험료만으로 커버된다. 그 결과 이용자의 안전과 상호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성공의 원천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이용자들은 등산 중 겪은 패션이나 필요한 장비, 동행 프로그램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면 바로 이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패션을 즉각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소위 ‘요구에 의한(On Demand)’ 제품인 것이다. 이 회사의 하루야마(春山慶彦) 사장은 “매출만을 추구하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전제로 한 사업은 반드시 한계가 온다”고 말했다. 이제는 고객과의 관계가 핵심 성공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유통이 경매에서 역경매로 발전했듯 제조업 역시 거꾸로 연결하는 역발상이 성공을 견인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티치픽스(Stitch fix)도 마찬가지다. 이 모델은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35세의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가 설립한 온라인 개인 스타일링 서비스다. 그녀 역시 독특한 전략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 2018년 5월 현재 3000명의 스타일리스트와 75명의 데이터 과학자를 포함, 58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나스닥에도 상장했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 먼저, 고객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회사의 두 가지 제안에 동의해야 한다. 하나는 회사가 제공하는 온라인 설문에 응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고객의 SNS 계정에 접근 권한을 주는 것이다.

고객 스타일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는 스타일리스트가 분석하고, SNS 계정 분석은 데이터 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으로 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대상 고객에게 보낼 5개의 품목이 결정된다. 다음으로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배송한 후, 고객이 판단할 수 있도록 3일간의 반품 여유를 준다.

고객이 하나 이상 제품을 구매할 경우 별도의 스타일링 서비스 비용을 면제받는다. 5개 품목 모두를 구매한 경우는 총 비용에서 25%를 할인받는다. 고객은 원하는 기간을 정해 배송 빈도를 선택하면 같은 방법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와 기계학습을 결합한 혁신적인 서비스로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전통적 창업 방식은 한계 다다라

일본의 조조닷컴(zozo.com)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고객을 유인한다. 먼저 땡땡이옷(zozosuit)을 입어보라고 보내준다. 고객은 받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회사는 그 사진을 보고 고객에게 어울리는 패션과 치수를 분석해 완벽한 착용감을 느낄 만한 제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대상 고객은 표준 사이즈에 식상하거나 남다른 체형을 가진 고객들이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유사 상품 검색기능을 추가하고, 입지 않은 옷은 언제든지 포인트로 교환해 다음에 구입할 때 차감하도록 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72개국에 온라인 상점을 열 정도로 급성장했다.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조조닷컴은 아쉽게도 지난 4월25일 몇몇 국가의 온라인 상점을 폐쇄해야 했다. 문제는 두 가지다. 땡땡이옷을 통해 착용자 신체를 3D모델로 DB화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 그리고 수백만 개의 조조슈트(Zozosuits)를 무료로 발송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든 데다, 생산 지연에 따른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연말에는 일부 전략을 수정해 타 브랜드와 협력하는 ‘다중 플랫폼(multi-size platform)’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회사는 비록 피봇(Pivot)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아이디어만큼은 미러링(mirroring)해 다른 분야에 적용 가능할 것 같다.

레스 비즈니스 모델은 패션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현재 ‘점포 없는 꽃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는 플로리스트가 꽃을 만들어 놓고 간단한 애락(哀樂)의 사연을 덧붙여 판매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거꾸로 사연을 꽃으로 표현하는 소위 ‘스토리텔링 꽃’을 오직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

예컨대 결혼을 앞둔 남자가 예비신부에게 꽃을 보내고자 하면 △예비신부가 평소에 좋아하는 꽃 △꽃말에 담긴 남자의 마음 △미래의 소망 등을 글이 아닌 꽃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시기에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유독 잘 팔리는 ‘김 판매점’이 있었다. 주인은 같은 김이지만 각각의 김에 스토리를 붙였다. ‘부부금실 김’ ‘아들 합격 기원 김’처럼. 그 결과는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 경제는 최근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희망적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다. 전통적인 창업 방법으로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는 없을 듯하다. 공간이 필요 없는 레스 비즈니스 모델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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