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 이어 리옹에서도 울려퍼진 환호성 “봉준호!”
  • 클레어 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6 14: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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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봉준호 감독 초청한 프랑스 리옹 ‘뤼미에르영화제’ 현장을 가다

“《펄프픽션》이래 제일 재미있는 황금종려상 수상작”(20 Minutes) 

“숭배의 대상의 될 운명적인 작품”(Paris Match) 

“기념비적인 명작”(Le Journal du Dimanche) 

“폭발적인 스릴러”(프리미어) 

프랑스 언론은 이렇듯 봉준호 감독과 그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에 관해 수많은 찬사의 언어를 쏟아냈다. 칸영화제이후 봉감독이 인터뷰한 현지 언론매체는 이미 400~500개에 달하고 있고, 미처 응하지 못한 매체의 수는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다. 또한해외 세일즈 총 국가 수는 205개국으로, 역대 한국영화 중 최다인 셈인데 특히 프랑스 시장에서의 선전이 돋보인다.

동시에 2004년 이래 15개 황금종려상 수상작중 최고의 흥행 결과이기도한데, 영화산업지 버라이어티도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1세기 황금종려상 수상작중 프랑스 시장내 두번째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프랑스 배급을 담당해 온 조커스 필름사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발 빠르게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며 움직였다. 10월16일 현재 Cinego서비스가 배급사에 제공한 총 관객 수는 168만4731명이다. 지난 6월5일 개봉 후 20주를 맞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에서만200만 명 관객을 향해 고공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 영화산업계에서 관객 50만 명은 꽤 만족스러운 결과이고, 100만 명은 꿈의 수치로 여겨진다. 물론 이는 역대 프랑스 개봉 한국영화로선 최다 기록으로, 이전 최고 흥행기록(68만 명)은 《설국열차》였다.

10월18일(현지시간) 리옹의 거리(rue du premier-film)에 마련된 영화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Mur des cinéastes)에 이름을 올린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의 환호에 인사하고 있다. ⓒ 클레어 함 제공
10월18일(현지시간) 리옹의 거리(rue du premier-film)에 마련된 영화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Mur des cinéastes)에 이름을 올린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의 환호에 인사하고 있다. ⓒ 장뤽 메쥬 인스티튜트 뤼미에르 컬렉션 제공

“봉 감독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10대 영화감독 중 한 명”

최근 북미 지역개봉 홍보를 위해미국 순회를 마친 봉준호 감독은 뤼미에르영화제 참가차 프랑스 리옹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리옹은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곳으로 영화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봉감독은 자신의 전작 회고전과 함께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김기영 감독, 배창호 감독, 장선우 감독의 작품 중 몇 편을 본인이 직접 선정한 ‘카르트 블랑쉬’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또한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스크린 쿼터 투쟁 및 미국 UIP 직배 사건, 블랙리스트 사건 등 한국영화사의 큰 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기생충》의 기염을 토하는 흥행성적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면서,뤼미에르영화제를 찾은 봉감독은 그야말로 스타 배우를 능가하는 인기몰이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봉 감독의 영화 상영은 모두 연일 매진되었고, 심지어 감독의 작품 소개를 직접 듣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찾아온 열정적인 팬들도 많았다. 봉감독의 작품 4편 《괴물》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등을 밤 9시부터 밤새 관람하는 ‘봉준호 올 나잇’ 심야상영에는 150여 명의 관객들이 아침 마지막 상영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중 몇몇은 당일 오전 10시반에 같은 영화관에서 열렸던 《옥자》 상영에도 모습을 드러내 무척 놀라웠다고 한영화제 관계자가 전했다. 봉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있던 17일 목요일 오후, 행사장 코메디 오데옹 극장 앞에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의 강의를 듣고자 무려 3시간 전부터 팬들의 긴 대열이 이어진 것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겨우 10명 남짓한 이들만 행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인들은 봉준호 감독의 무엇에 이렇듯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봉감독도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봉감독은 진행을 맡았던 프랑스의 거장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에게 이를 묻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행사에 함께 참석했던 프랑스 OCS TV의 프로그래머플로레스탄 라 토레는 봉감독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10대 영화감독 중 한 명”이라고 극찬한 뒤, “예술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능숙함”이라고 성공비결을 평가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및 뤼미에르영화제집행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신상옥 감독의 회고전으로 뤼미에르영화제를 시작했고, 박찬욱 감독도 3년 전 초청했다”며 “봉준호 감독은 현존하는 세계의 가장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는) 올해 초청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초청 이유를 전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의 성공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 스토리, 정치적 신념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비롯되었고, 이런 모든 것들을 놀라움과 유쾌함을 자극하는 매우 탁월한 방식으로 풀어나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평가했다.함께 자리한 프로듀서 에디 플뤼숑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를 직접 전하지 않고, 인간의 양면성 및 이중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봉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10월18일(현지시간) 뤼미에르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 중인 봉준호 감독이 영화평론가 필립 루이에의 질문을 받고 있다. ⓒ 클레어 함 제공
10월18일(현지시간) 뤼미에르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 중인 봉준호 감독이 영화평론가 필립 루이에의 질문을 받고 있다. ⓒ 클레어 함 제공

내년 아카데미상 수상 조심스레점치기도

프랑스 배급사‘더조커스필름 & 라비아’사의 대표 마뉘엘 시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도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뗀 뒤, “심지어 85세이신 내 어머니도 《기생충》을 무척 재미있게 보셨다”고 말했다. 그는 《기생충》의 성공배경에 대해 두 가지 이유로 요약했다. 전 세계의 모든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계급갈등이 하나고,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다룬 소재와 함께 놀라운 반전이 많은 재미있는 내러티브가 또 하나다. 특히“유머, 공포, 슬픔 등 무수한 인간의 감정을 한 영화 속에 표현한 ‘롤러코스터 라이딩’ 경험이야말로 관객들이 잊지 못할 이 영화의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봉준호 나비효과’라는 흥미로운 지적도 곁들였다. “이미지로 소통하는 글로벌 언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프랑스 관객들은 그간 자신들이 멀게만 느꼈던 한국영화와 문화를 더 친근하게 느낄 것”이라며 “앞으로는 한국영화에 대해 두려움 없이 호기심으로 접근하지 않을까”라고전망했다. 마뉘엘 시쉬 대표는 또 현지 영화제의 살인적인 일정으로 “한 시간 쪽잠을 자고도 마스터클래스를 훌륭히 마친 봉감독의 책임감과 성실함에 감탄한다”며 그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기생충》의 내년 아카데미상수상을 조심스레 점치기도 했다.마뉘엘 시쉬 대표는 2003년부터 한국영화 배급을 시작했으며, 그동안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개봉 및 《살인의 추억》 재개봉을 진행했고, 이전에는 박찬욱 감독의 모든 타이틀 배급과 《올드보이》를 칸에 소개하는 등 대단한 한국영화 애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영화가 탄생한 프랑스 리옹의 거리에 선배인 이창동·박찬욱 감독에 이어자신의 이름을 영구히 남기는 영예를 얻었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봉 감독에게 필자가 ‘기생충’이 상징하는 것이 누구 또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기생충은 나자신이며, 숙주를 떠나지 않는 기생충처럼, 이 영화와 함께 시네필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가을 《기생충》은 북미 개봉에서도 (외국 영화로서) 스크린당 최고의 평균 관객 수로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봄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최초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할리우드 영화사에도 족적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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