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광장 청원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8 09: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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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유명한 저작 《촛불의 미학》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좋은 촛불의 추억 속에서 우리의 고독한 몽상을 재발견한다. 불꽃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이고, 또 혼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그가 ‘혼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고 했던 그 촛불이 한국에서는 기념일마다, 혹은 주말마다 여러 개로 뭉쳐 광장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광장에는 두 갈래의 촛불이 켜졌다.

한쪽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외쳤고, 다른 한쪽에선 조 전 장관을 끌어내리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맞섰다. 양쪽 다 퇴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전면전을 상정했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 이미지는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지만, 해방 직후 신탁통치를 놓고 극렬하게 대립했던 찬탁(贊託)·반탁 운동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 정도로 최근에 나타난 광장의 분열은 날카롭고 또한 무거웠다.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국민이 둘로 나뉘고 사회가 갈라진 현상 그 자체는 뒤바뀔 수 없는 ‘팩트’다.

지난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왼쪽)와 10월5일 서초동에서 열린 집회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왼쪽)와 10월5일 서초동에서 열린 집회 시사저널 최준필

극한의 분열은 광장뿐만 아니라 청와대 게시판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8월11일부터 시작된 조국 장관 임명 반대 국민청원에 31만여 명이 동의하고, 임명 찬성 청원에 76만여 명이 동의했다. 그리고 이들 청원에 대한 답변이 지난 10월11일에 나왔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내놓은 답변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는 원론적인 선에서 멈췄다. 좀 더 분명하고 내용 있는 답이 나오기를 바랐던 국민들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광장과 온라인에서 뜨겁게 일었던 국민청원은 조국 장관이 사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외침의 내용과 일부 장소는 바뀌었지만 열기는 그대로다. 그만큼 광장에 드리운 공기 또한 변함없이 무겁고, 갈라진 광장의 틈에서 찾아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 됐건 광장의 목소리는 소중하다. 소통이 막혀 있다고 느껴서 자신의 말을 직접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여 내놓은 ‘수고’의 언어다. 진영을 떠나 그 수고로움은 존중되어 마땅한 민주적 자산이 된다. 그럼에도 모든 말이 광장에 집결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광장에 나가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생업(生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시민들로 하여금 생업을 제쳐놓고 광장에 나가도록 내모는 모습은 못나도 참 못났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방치해 시민들을 수고롭게 하는 정치의 직무유기는 그만큼 죄가 크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이 광장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작업이다. 정치권과 정부, 혹은 권력집단이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일을 애초에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시민의 ‘수고’가 아닌 정치권의 ‘수고’가 필요하고, 시민이 아닌 정치권이 말을 할 때다. 광장에 나가 목청을 높였던 시민들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힐링의 시간을 갈망한다. 그 힐링을 누가 가져다줘야 할 것인가. 답은 빤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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