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가지 마라, 삼청교육대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9 17: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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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삼청교육대” 언급한 전직 육군대장 박찬주에게

전직 육군대장을 지낸 박찬주라는 사람이 있다. 대장까지 승진했으니 군인으로선 영광을 누린 셈이지만, 이분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한 번은 공관병을 조선시대 노비 부리듯 했다는 혐의 이른바 ‘갑질’로, 또 한 번은 이런 분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영입인사로 거론함으로써,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 되면 본인으로선 참 다행인데, 자신을 비판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두고 “삼청교육대 교육을 한 번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묘하게 서로 연결되는 세 가지 이유 중 노골적으로 끔찍한 발언이 바로 삼청교육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1호 영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관병 갑질’ 등을 이유로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11월4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별관에서 갑질 논란과 현안 등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1호 영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관병 갑질’ 등을 이유로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11월4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별관에서 갑질 논란과 현안 등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그게 뭐야 싶은 분들도 많으실 줄 안다. 한국 근대사에는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된 끔찍한 일들이 많다. 개인에게 저지른 범죄뿐 아니라 서북청년단, 보도연맹, 거창 양민학살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등등 집단을 향해 저지른 범죄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냥 잊혔다. 많은 국민들이 저 이름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뜻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흡사 일본이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거 식민통치 범죄와 전쟁범죄를 은폐한 결과로 현재의 일본인들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을 핍박한 일베들의 횡포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던 것이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지닌 폭력단체가 등장한 일이었는데, 심지어 일부 언론들마저도 이 이름의 끔찍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이들이 KKK단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면 오히려 지탄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1980년 ‘삼청교육대’는 무법·초법의 폭력범죄

삼청교육대는 신군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간인들을 잡아가서 때리고 심지어 살해하기도 한 무법초법의 폭력범죄였다. 이 범죄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450명에 달한다. 쥐나 새가 알든 말든 죽여도 된다는 말이 횡행하던 곳이 삼청교육대였다. 서북청년단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향해 북한 강제수용소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들이 상상하는 강제수용소의 모델이 삼청교육대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이름을 2019년에, 불과 얼마 전까지 군 장성이었던 사람의 입에서 듣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사람은 삼청교육대를 잘한 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며, 그 잘한 일의 내용은 “자기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잡아가서 교육이라는 이름의 가혹행위를 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을, 계엄 선포와 관련해서 의심을 받는 사람이 영입을 하려 하는 것이다. 계엄령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듯하지만, 그런 은폐와 망각의 덕분으로 척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법과 인권에 입각한 인간 대접이 불편하다고 자기 폭로를 해도 되는지 정말 아연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자유롭게 해도 지금은 아무도 잡아다가 삼청교육대에 넣지 않는다. 아직도 2019년에 도착하지 못하고 1980년에 사는 사람들이라 해서 1980년대식 취급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상상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국가로까지 우리는 성장했기 때문이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게끔 인권의 안전띠를 꼭 잡고 놓지 않는 일이 페미니즘이라 믿는 나는, 아무리 박찬주라도 삼청교육대 보내야 한다는 막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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