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TV 드라마,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 있다”
  • 클레어 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0 10: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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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TV 드라마·사진예술 경계 넘나들어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11월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국제영화제에서 필름 앤 비욘드상을 수상했다. 주최 측은 2014년 이래 영화 이외에도 다른 포맷을 시도한 실험적인 영화인에게 이 상을 수여해 왔다고 밝혔다. 제네바영화제는 영화, TV 드라마, 디지털아트 및 XR(가상현실 VR, 증강현실 AR, 이 둘을 합친 융합현실 MR) 등 최첨단 디지털 기술도 포함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동시에 디지털 업계 전문가들을 위한 제네바디지털마켓도 운영 중이다. 다양한 매체의 경계에 도전하는 혁신성을 그 기치로 삼는 제네바영화제가 박찬욱 감독을 수상자로 선정한 데는 물론 그가 재능 있는 영화감독이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박찬욱 감독은 그동안 영화와 TV 두 영역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파란만장》이라는 핸드폰 영화도 연출했고, 최근에는 대규모 사진전도 열어 놀라운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선보였다. 시사저널은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디지털 필름메이킹의 선구자면서 동시에 세계무대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인 박찬욱 감독을 만나 그의 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모호필름
ⓒ 모호필름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지 27년 만에 TV 드라마 영역에도 도전했다. TV 드라마는 영화 작업과 많이 다를 텐데.  

“어떤 작품은 소설을 해체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처럼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테레즈 라캥의 소설로 《박쥐》를 만들었거나, 《올드보이》도 원작이 만화였지만 많이 다르게 영화로 각색했다. 이번 드라마도 소설과 자세히 비교해 보면 대사도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조연들을 다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다. 극장용 길이로 축소했다면 많은 조연이 사라져야 했다. 이건 다이언 키튼이 주연한 동명의 극장용 미국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이스라엘 요원들 및 팔레스타인 조직에 속한 많은 인물들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분량을 유지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TV 드라마를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매체이고,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리틀 드러머 걸》.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박찬욱 감독이 드라마로 만든 것으로 2018년 10월 영국 BBC1, 11월 미국 AMC네트워크를 통해 방송되었고, 한국에서는 올해 3월29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감독판이 공개되었다.) 

원작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정치적으로 무척 예민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존 르 카레 작가는 생존 작가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그의 많은 작품이 맘에 든다. 특히 나는 이 작품을 최고 수준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는데, 이는 그의 팬덤 중에서도 소수의 의견이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가를 설득력 있게 그렸을뿐더러, 테마가 장르 문학 및 첩보 세계에 한정되지 않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보는 진정한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가장 심오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 성장한 나로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교묘하리만큼 양쪽 입장에 공평히 연민을 가지고 쓰인 작품이라 그 균형감각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편파적인 작품은 안 되겠다는 자신은 있었다.”

2011년 1월 세계 최초로 핸드폰 영화 《파란만장》을 제작해 ‘스마트폰으로도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경제적 부담 없이 영화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획기적인 시도임은 분명하지만, 분명 모바일 영화 촬영의 한계도 있을 텐데.

“나는 장점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핸드폰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찍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내가 아이폰 4로 찍었을 때보다 핸드폰의 해상도 등 기술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요즘에는 액세서리도 많을뿐더러 영화적인 질감이 나도록 후반작업에서 보완할 수도 있다. 숙련된 촬영감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적은 돈으로 촬영할 수 있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정말 큰 장점이라고 본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디지털화라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지만, 영화업계 내에서는 극장 배급의 위기론도 존재한다. ‘4G보다 20배 더 빠르다고 알려진 5G 서비스가 시작되면, 결국 음악시장처럼, 콘텐츠 유통은 구글 포털이나 세계적 대기업인 넷플릭스·아마존·애플TV 같은 디지털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영화관 배급은 상징적으로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대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관도 나름 생존 방식을 찾아갈 것이라고 보는 건가. 

“슈퍼히어로가 아닌 영화들이 영화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질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큰 상업영화들이야 극장에서 보는 것이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에 끄떡없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진지한 영화, 독립예술영화가 영화관에서 살아남을 것인지가 관건인데, 아무래도 점점 위축될 것 같다. 영화관 운영자들은 관객들이 영화 관람이라는 경험을 총체적으로 더 즐길 수 있도록 극장을 더 고급화하고 매력적인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시설도 낙후하고, 영화 관람 이외에는 딱히 다른 용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밝은 면을 보자면, 기존의 배급 시스템에 비해 OTT 서비스는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기회는 줄겠지만 영화를 만들 기회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으니 관객들에게 접근할 기회는 많아질 수 있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다큐나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들을 관람하지 않던 관객들의 이런 영화에 대한 소비가 최근 늘었다.”

11월5일(현지시각) 박찬욱 감독이 스위스 제네바국제영화제에서 필름 앤 비욘드상을 수상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제네바영화제
11월5일(현지시각) 박찬욱 감독이 스위스 제네바국제영화제에서 필름 앤 비욘드상을 수상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제네바영화제

영화감독 데뷔전, 미술사학자를 꿈꾸었을 만큼 미술에도 관심과 애정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작년 《파킹찬스 2010-2018》이라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어 동생 박찬경 작가(감독)와 함께 만든 단편 이외에도, 본인의 사진 70여 점을 선보였다. 사진 전시회라는 방식은 영화라는 매체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사진 작업은 대학교 때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찍어왔고, 영화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내가 영화 작업보다 사진 작업에 더 몰두하고 열정적으로 한다고 내 아내가 말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스스로 영화감독 이외에도 사진작가라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작년에는 광주에서 큰 전시회를 했고, 11월13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서 그룹전의 일부로 15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로 정물 풍경 사진들이 많다. 인물 사진들은 촬영현장에서 찍은 배우들의 사진이 많지만, 이 사진들은 좀 더 쌓인 후 전시할 계획이다. 내가 만든 영화라는 것이 잘 디자인되고, 자연스러운 것조차도 인공적으로 꾸며서 만든 것이지 않나. 그래서 그런지 사진은 그런 연출, 조작, 의도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그냥 발견한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빛이라는 것도 특정한 시간에 따라 다 다르고, 똑같은 컵도 앵글에 따라 다 다르지 않나. 정확한 순간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거나 혹은 내가 눈을 감고 단지 보기만 했다는 것에 대한 기록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100번째 생일을 맞은 뜻깊은 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영화 100주년이 본인에게 갖는 특별한 의미나 소회가 있다면.

“영화를 시작할 때는 솔직히 한국영화에 대한 큰 애정이 없었다. 한국영화를 보면서 성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큰 감동과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존경하는 선배 감독인 김기영, 이두용, 임권택 등 소수의 감독님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이것도 성장 후에나 접한 세계였지, 한창 영향을 받을 중·고교 시절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역사와 전통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적었다. 하지만 차츰 영상자료원에서 새로운 복원판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인식을 갖게 되었다. 내가 모르던 좋은 영화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나의 게으름의 문제였지 한국영화의 역사가 척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영상자료원의 제안에 따라,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나 이두용 감독님의 《최후의 증인》 등 블루레이의 음성해설에 참여하는 가운데 점점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제법 경력이 쌓인 감독이 되었으니 후배들도 생각해야 되고, 또 그들이 선배들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종종 의식하게 된다.”

한국영화는 지난 100년 동안 군사독재 시대의 검열, 미국 UIP 직배, 스크린쿼터 투쟁, 블랙리스트 사건 등 다사다난한 역사를 거쳐왔다. 특별히 본인에게 힘든 시기나 사건이 있었다면.

“한국영화에 대한 검열이 심했던 시기를 관객으로서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일까라며 겁을 많이 내곤 했었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표현의 자유를 얻어내면서 그런 선배 감독들이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갖게 되었다. 선배 감독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예를 들어 《최후의 증인》 같은 걸작이 공무원의 부패, 검사 성상납 등의 내용 때문에 38분이나 삭제되면서 개봉했다고 들었다. 3분 삭제, 아니 30초만 삭제하자고 해도 난 화가 났을 것이다. 결국 나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시민의 반독재투쟁 덕을 제대로 본 세대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10월 부산영화제에서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차기작 《도끼》를 협업하고 있고, 앞으로 대표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50대 중반의 박찬욱 감독. 그는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유럽 등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를 아끼는 팬들은 앞으로도 영화 및 TV, 사진전시회, 그리고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그와의 유쾌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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