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왜구(倭寇)인가, 일본(日本)인가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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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의 탄생 메이지 유신 이야기》ㅣ서현섭 지음ㅣ라의눈 펴냄ㅣ368쪽ㅣ1만 6800원

동아시아 역사에서 일본을 지칭하는 왜(倭)라는 호칭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중국 후한 때 편찬된 《한서지리지》다. 이는 고대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 야마토(倭) 조정이 사용한 공식 국호였다. 그러다가 7세기 무렵 일본(日本)으로 국호를 바꾸며 ‘천황’이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왜’는 여전히 일본을 뭉뚱그려 비하하는 호칭으로 한반도에서 유통 중이다. 일본은 이를 몹시 못마땅해 하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법이니 일본이 먼저 그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 라의눈

15세기 일본은 무사정권끼리 부침을 거듭하는 전국시대였다. 전국시대를 통일국가로 이끈 세 주역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오다 노부나가는 최초로 조총을 전략무기화했던 인물이다. 1543년 8월 중국 국적 표류선에 탄 포르투갈 인들이 가지고 있던 조총 2자루를 은 200량(현재 가치 약 4천만 원)의 거금을 주고 구입해 복제한 사쓰마 영주는 겨우 16세 소년에 불과했다. 중국 명나라는 이보다 30년 앞서 조총을 손에 넣었지만 화살보다 전투 효율이 떨어진다며 무시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고수했지만 나가사키 앞바다에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어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선진문물은 열심히 받아들였다. 19세기 막부 말기 조슈번(야마쿠치현)의 하급무사 아들 요시다 쇼인이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하며 이토 히로부미 등 제자들을 길러냈다. 현재의 아베 총리까지 62명 중 9명의 수상이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했던 미우로 고로도 이곳 출신이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은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존경심이 유별났다.

농촌 하급토착무사의 아들 사카모토 료마와 추종자들이 주도한 삿초동맹이 일본 근대화의 서막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이끌어냈다. 정한론을 다시 들고나온 일본 최초 육군대장 사이고 다카모리도 거기에 끼여 있었다. 메이지 신정부는 이토 히로부미 등 주요인사와 유학생 등 100여 명의 구미 사절단을 파견했다. 여덟 살 여학생 쓰다 우메코가 미국 유학생으로 나섰다. 사절단은 현재 금액으로 최소 10억 엔의 비용을 쓰며 장장 632일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을 돌았다. 이들이 귀국하면서 일본은 근대국가로 쾌속발전을 시작했고, 조선침략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즈음 조선에서는 전라도 고부 몰락양반의 아들 전봉준이 봉건제도 타파와 근대화를 이루고자 농민혁명을 일으켰으나 이씨왕조가 외세를 불러들이고 김홍집, 유길준 같은 개화 엘리트들이 일본군과 결탁함으로써 실패했다. 이로써 정한론이 실현됐던 바, 메이지 유신과 동학혁명의 차이가 지배와 피지배, 제국과 식민지를 갈랐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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