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입시도 ‘불공정’ 논란에 몸살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5 13: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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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성 문제 탓 '영어 민간시험 활용' 연기…서술 문항 도입도 채점 논란 휩싸여

도쿄에 사는 고등학생 A양은 어머니와 함께 이번 주말 근교 사이타마까지 영어 민간시험을 치러 가기로 했다. 대입에 활용된다던 영어 민간시험은 논란 끝에 결국 연기됐지만, 이왕에 이미 응시료도 냈고 준비도 해 왔기에 이번에는 그냥 시험을 보기로 했다. A양을 따라나서는 어머니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의 입시부터 ‘공통테스트’가 도입되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는 탓이다. 입시설명회를 다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보다 불안한 것은 직접 시험을 쳐야 하는 A양이다. 어떤 시험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생각만 많아진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변화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대학 합격을 기원하고 있는 일본 학부모와 학생들 ⓒ AP 연합
대학 합격을 기원하고 있는 일본 학부모와 학생들 ⓒ AP 연합

지방 학생, 대도시에 비해 응시 불리

대학입학시험은 한국에서만 화두가 아니다. 옆나라 일본도 대학입시 변경 문제로 시끄럽다. 약 30년 만에 바뀌어 2021년도 대입에 적용되는 시험에 대한 반발이 심상치 않다. 영어 시험에 도입하기로 했던 ‘민간시험 활용’은 결국 연기하기로 했다.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는 대학입시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 교육 관련 종사자들까지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1990년 처음 실시된 ‘대학입시 센터시험’(센터시험)의 뒤를 이은 ‘대학입학 공통테스트’(공통테스트)는 2021년 입학부터 적용될 일본의 새로운 입시다. 국공립대학은 이 시험 점수를 반드시 필요로 하고 일부 사립학교도 입시에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만큼 대학 진학자에게는 중요한 시험이다. 2013년 10월 열린 ‘교육재생 실행위원회’ 회의에서 고등학교 교육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공통테스트를 제안했고, 2016년의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교육 접속 시스템 개혁회의’의 최종보고 등을 거쳐 2021년도 입학부터 도입하기로 결정됐다. 시험이 실시되는 것은 2021년 1월로 일본의 학교연도 기준으로 2020년도에 해당한다. 가장 큰 특징은 영어 시험에 ‘민간시험’을 활용하는 것, 일본어와 수학 시험에 서술식 문항을 도입하는 것 등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된 영어 민간시험은 공통테스트 실시를 약 1년2개월 앞둔 지난 11월1일 연기가 결정됐다. 당초 영어 민간시험 활용은 ‘듣기’ ‘읽기’ 능력밖에 평가하지 못했던 센터시험의 영어 능력 평가를 보강해 ‘말하기’ ‘쓰기’ 능력을 평가 기준에 넣기 위한 것이었다. 한 번에 수십만 명이 응시하는 대학입시에서는 쓰기와 말하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환경 정비가 어렵고 채점도 곤란하기 때문에, 대신 고안된 방법이 민간시험의 활용이었다. 토익과 토플을 포함한 7개 시험이 성적 제출 가능한 시험으로 선정됐다. 각 시험 성적은 6단계로 평가돼 정부 시스템을 통해 대학에 전달된다.

하지만 시험 기회의 공평성 등이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선정된 민간시험 가운데 일본 전국 어디서나 치를 수 있는 시험은 3개뿐이다. 응시료 또한 문제다. 토익의 경우 말하기·쓰기까지 모든 시험에 응시하려면 약 1만6000엔(약 17만원)이 필요하다. 토플(iBT)의 경우 기본 235달러(약 27만원)의 비용이 든다. 대도시에 살고 가정 형편에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몇 번이고 시험을 치러 좋은 성적을 제출할 수 있다. 반면 지방에 살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시험을 한 번 치르기도 쉽지 않다.

이와 같은 공평성 결여 문제는 일찍이 지적돼 왔지만, 일본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은 10월24일 TV방송에서 불공평한 시험 기회에 대한 지적을 받자 “자기 분수에 맞게 노력하면 된다”고 발언할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발언으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결국 “경제적인 상황과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안심하고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부족했다”며 연기를 결정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 ⓒ EPA 연합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 ⓒ EPA 연합

서술식 문항 두고 “채점 누가 하냐” 반발

영어 시험은 기존의 센터시험과 같이 듣기와 읽기만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유지되지만, 공통테스트 자체는 예정대로 2020년도에 실시된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일본어와 수학에 도입되는 서술식 문항에 대해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어와 수학에는 기존 선택지 문항에 각각 3문항씩 서술식 문항이 추가된다. 일본어는 한 문항당 80~120자 정도의 문장을 써야 하고, 수학에서는 수식 등을 써야 한다. 일본어의 경우 5단계 평가로 점수가 매겨진다. 기존 시험이 지식만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면 서술식 도입으로 사고력·판단력·표현력 등 다양한 능력을 평가한다는 방침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채점 방식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의 답안을 채점할지가 논란이 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채점을 담당할 업체를 선정했다. 통신교육과 출판사업이 중심인 민간기업 베네세 코퍼레이션 산하의 학력평가연구기구가 채점 업무자로 결정됐다. 민간업체가, 더군다나 모의시험과 교재를 판매하는 기업이 채점을 총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두고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50만 명 규모의 개별 답안을 채점할 인력도 문제다. 도쿄 도내에서 과학 교사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이 문제 때문에 서술식 도입에 비판적이다. B교사도 학교 시험에서는 서술식을 출제하고 있지만, 학교 시험의 경우에는 학생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출제자와 채점자가 일치하기에 예상 외의 답안이 나와도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수십만 명의 수험생 답안을 채점해야 하는 공통테스트의 경우 채점자도 1만 명 이상 필요하다. 채점자 사이의 동의와 합의가 곤란해지고 채점 기준의 통일성도 의심스러워진다. 채점자를 확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기용하는 경우도 예상되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B교사가 서술식 도입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채점’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어 논술의 경우 시험 후에 자기 스스로 채점을 하고 지망 학교에 따라 전략을 세우는 것이 어려워진다. 한자를 섞어 쓰는 일본어 특성상 오탈자의 채점 기준이 모호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자에 대한 채점자의 판단을 학생들은 예상할 수 없다. 학생들의 불안만 커질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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