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꼰대는 돼도 ‘꼰대괴물’은 되지 말자고요”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8 17: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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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올해의 책’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작가 “차기작은 ‘관종’ 주제”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나이 든 사람’. 지난 8월 영국 BBC는 ‘KKONDAE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지정하며 이같이 정의했다. 1960년대 우리 신문에도 나왔을 만큼 오랜 말이지만, 꼰대는 새삼 올 한 해 가장 뜨거운 단어 중 하나로 회자됐다. 너도나도 ‘꼰대’ 자가진단에 나섰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들이 널리 공유됐다. 그 불씨를 지피는 덴 지난해 말 출간돼, 1년 내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임홍택 작가의 책 《90년생이 온다》가 큰 몫을 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1980년대생 임 작가는 어느 순간 조직으로 밀려드는 1990년대생들과의 큰 괴리를 발견했다. 같은 ‘밀레니얼 세대’인 줄 알았는데, 그들과의 대화는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었다. 이런 일화를 하나둘 적어둔 것이 모여 책이 됐다. 발간 1년 새 100쇄 이상 찍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여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이 책을 나눠줬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임 작가의 1년은 얼떨떨함의 연속이었다.

11월11일 현재 다니던 회사를 나와, 차기작 준비와 육아를 병행하며 새 직장을 구하고 있는 임 작가를 만났다. 그는 “아싸(아웃사이더)인데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다 보니 인지 부조화를 겪은 한 해였다. 더는 이 책에 대해 설명할 게 없다 싶어 8월부터 인터뷰를 일절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경제·경영 서적 코너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0》에 ‘드디어’ 1위 자리를 내준 데 대해 내심 반가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앞에서만 자유를 강조하는 ‘꼰대괴물’

1990년대생의 출현은 개성 넘치던 세기말의 X세대와 1980년대생까지 ‘꼰대’로 만들어버렸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윗세대와 이를 ‘깨부수려는’ 90년대생 간의 갈등을 너도나도 열심히 조명하고 분석했다. 이러한 세대 갈등에 정작 임 작가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으며 90년대생 꼰대도 많다”며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았다. “내 책에 ‘꼰대 테스트’가 있다. 23개 항목인데, 이 중 하나만 해당해도 꼰대라고 적었더니 사람들이 화를 내더라. 내 말은 누구나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다, 다만 ‘개꼰대(책에선 ‘꼰대괴물’로 표현했다)’가 되진 말자는 거였다. 개꼰대란 앞과 뒤가 다른 사람. 이를 지적받으면 ‘그래 나 꼰대다 어쩔래!’라며 귀 막는 이들을 말한다.” 그는 조직에서 흔히 벌어지는 몇 가지 사례들로 설명을 더했다.

“‘자율복장제’ 시행하는 회사들이 많다. 그런데 가서 보면 다 회색·검은색 똑같이 입고 있다. 반바지 입고 오면 그렇게 눈치를 준단다. 휴가 자유롭게 쓰라고 한다. 그러곤 ‘또 쓰게? 난 3년 동안 휴가 못 썼는데’란다. 차라리 처음부터 ‘우린 무조건 정장. 휴가 못 갈 수도 있고 야근 많아. 그래도 오려면 와’라고 까놓고 말하라는 거다. 90년대생들도 ‘우리만을 위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다. 단 ‘나 열린 사람이야’ ‘우리 자유로운 조직이야’ 잔뜩 말해 놓고 딴소리를 하니까 싫은 거다. 사전에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면 머리에 구루프(롤)를 말고 일하든, 빨간 옷을 입든 뒷얘기하지 말자는 거다.”

임 작가는 책에서 ‘90년대생들은 ‘정직’을 중시한다’고 썼다. 그리고 이 정직의 가치가 깨졌을 때 이들은 참지 않고 퇴사든 무엇이든 결단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정직의 가치는 앞서 말한 ‘말과 행동이 다를 때’, 그리고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상황에 놓일 때 깨져버린다. “우리나라 채용공고들을 보면 딱 두 줄 써 있다. 군필, 그리고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 능력자 우대. 그런데 와 보면 외국어 전혀 쓸 일이 없다. 성과평가도 애매하다. 나는 꼬박꼬박 왔는데 지각을 밥 먹듯 한 사람이 승진한다. 90년대생들은 이런 ‘정직하지 못함’을 참지 못한다”.

그는 윗세대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 ‘60년생이 온다’ ‘70년생이 온다’도 써서 ‘우릴 대변해 달라’는 요구 또한 상당했단다. 다 그렇게 버텼는데 왜 90년대생은 유독 참지 못하느냐는 지적도 그럼 직하다. 이에 임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80년대 세대까진 잘 참아왔다. 참는 게 더 이득이니까, 나름의 생존전략에 따라 합리적 결정을 한 거다. 이게 요즘 사회에선 ‘참으면 호구’ 되는 분위기다. 지금은 참지 않는 게 더 합리적 선택이 됐다. 90년대생이 대단히 별종인 게 아니라 지금 시대 분위기가 그렇고, 이들은 그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거다.”

 

“빨간 차에 위아래는 없다”

인정하든 안 하든, 세대 간의 이 거대한 ‘다름’에 대해 이제 모두가 인지한 상태. 이젠 어떻게 이를 조직에서 발전적으로 승화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임 작가는 말한다. 그는 향후 조직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52시간 근무제가 강조되는 이 분위기가 점점 더 널리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직을 이끄는 이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워라밸을 적당히 지켜주면 구성원들이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조직 내 꼰대괴물도 자연히 정리될 거다. 이들 때문에 하나둘 그만두는데 어떻게 하겠나. 이 흐름을 끝까지 따르지 않고 고집부리는 곳은 자정작용에 따라 밀려나거나 결국 뒤늦게 변화에 편승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90년생이 온다》 책 설명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임 작가에게 너무 책 얘기만 물은 듯했다. 그의 최근 관심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활동 중인 ‘전국빨간차연합회(전빨연)’라는 동호회 얘기부터 꺼냈다. 인터뷰 전에 받은 명함에도 임 작가는 ‘전빨연 회장’으로 소개돼 있었다. “빨간 차를 12년째 끌고 있고 지금 2대 갖고 있다. 남자가 빨간 차 혹은 유색 차를 타면 이상한 놈이 된다. 페라리 정도 인정하려나. 우린 수많은 것들의 다양성을 말하지만 결국 뭐든 수직적으로 나누고 일원화시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내 취향을 걱정 없이 털어놓을 테니, 법과 원칙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그냥 ‘취존(취향 존중)’해 달라는 걸 얘기하고 싶다. 재미로 하는 거고 10원도 벌 생각 없다. 빨간 차 20대 모이면 내년에 퍼레이드도 할 거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야 할 듯, 앞선 얘기와 묘하게 연결되는 대목이었다.

대통령도 주목한 화제작을 써낸 그에게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재미있게 느끼는 걸 또 한 번 써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게 아마 우리 사회 ‘관종(관심종자)’에 대한 얘기가 될 거라고 한다. “2000년생이 온다는 절대 안 쓴다고 꼭 말해 달라(웃음).” ‘꼰대’와 ‘개꼰대’를 나눴던 그는 지금 ‘관심종자’와 ‘관심병자’를 나누는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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