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힘만 빼면 개혁 끝?…특수부 폐지는 국가적 재앙”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9 16: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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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 정부 대법관 물망 올랐던 신평 변호사 “법원도 개혁해야”

‘조국’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신호탄을 조국 전 법무장관이 아닌 다른 인물이 쏴 올렸다면, 개혁은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개혁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국민의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재인표 검찰 개혁’은 과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검찰 개혁을 둘러싼 물음표가 꼬리를 무는 가운데, 신평 변호사(63·사법연수원 13기)는 이 모든 질문에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신 변호사는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중앙선대위에서 활동했던 인물. 정부 출범 후에는 대법관 후보 물망에도 올랐다. 누구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랐을 신 변호사지만 최근 그는 ‘개혁의 방향타’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법 개혁의 방향도 방법도 틀렸다는 게 신 변호사의 소신이다.

신 변호사는 “법원 개혁과 경찰 개혁은 논의에서 제외된 채 검찰 개혁만을 주장해서는 진정한 사법 개혁을 이룰 수 없다”며 “특히 검찰의 특수부 폐지는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월7일 서울 광화문 ‘공정세상연구소’ 사무실에서 신 변호사를 만나 헌법학자인 그가 그리는 사법 개혁의 청사진에 대해 들어봤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진보귀족, ‘계급의 이익’ 위해 조국 수호”

신 변호사는 법률가이자 글쟁이다. 한때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지금은 책을 쓰고 시를 적으며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촛불 정국’에서 문 정부 탄생을 위해 힘을 쏟았던 만큼,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는 검찰 개혁과 ‘조국 사태’를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 8월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게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조 전 장관을 향한 진보 인사의 ‘첫 저격’이라고도 표현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신 변호사의 표정에선 분노가 아닌 실망이 읽혔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취임사를 보며 이번 정부가 꼭 성공하길 바랐는데… 조국 사태를 보고 알았다. 이 정부도 결국 기득권자들의 집합이었다. 조 전 장관을 내치는 대신 품고자 했다. 국민들의 상식과는 거꾸로 간 거다.”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월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월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그는 조국 사태가 비단 조 전 장관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넘어, 진보 인사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이라 진단했다. 진보진영이 정치권력의 한 축을 잡고 힘을 키워가면서, ‘계급화(化)’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진보귀족’이라는 말은 2009년 신 변호사가 써낸 저서 《한국의 사법개혁》에도 등장한다. 신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의 사법 개혁을 두고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주도한 인물들은 노무현의 취향에 맞춘 사람들로 그들은 한때 권위주의 정권에서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투쟁을 하였으나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래 온갖 사회적 이익의 향유에 흠뻑 젖은 소위 ‘진보귀족’들이었다”고 적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신 변호사는 조국 사태를 겪으며 이 말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가 남긴 오랜 말을 인용해 ‘진보귀족’을 재차 설명했다. ‘인간은 누구도 자기가 속한 계급을 초월할 수 없다.’

“(진보 인사들 중)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민주화를 위해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대의에 불탔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많은 이익을 과점하고 만족하면서 점점 더 기득권자로 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일반 국민들과는 차별화된 계급이라고 의식하고 있다. 자신들의 목표, 이해관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서울대 법대 후배이자, 한 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조 전 장관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전했다. 신 변호사는 “진보귀족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퍼스널리티(personality)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 전 장관이 최악의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세월이 지난 다음에 조 장관이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번 일을 겪으며 본인도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재기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막장’이다”라고 덧붙였다.

 

“특수부 폐지 재앙…사법의 '책임' 강조돼야”

신 변호사는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헌법의 권위자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많이 공부했다. 그만큼 국내 사법 시스템의 한계도 잘 안다. 그리고 문제를 알면, 쉽게 넘기지 못하는 게 그의 성격이다. 일례로 신 변호사는 대구지방법원 판사 시절이던 1993년, 당시 법원 판사실에서 돈봉투가 오간 사실을 폭로했다가 같은 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법관의 재임용 탈락은 1987년 헌법 시행 이후 처음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안을 두고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경찰과 법원은 개혁하지 않고 검찰의 힘만 빼서는, 진정한 사법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신 변호사의 생각이다.

“법학계에 검찰개혁이란 말이 독자적으로 유통된 전례가 없다. 검찰 개혁과 법원 개혁, 경찰 개혁을 아우르는 사법 개혁을 해야 하는데, 유독 조 전 장관 수사가 개시된 이후 검찰 개혁만 강조하는 모습이다. 국민들에게 ‘어떤 검찰 개혁, 어떤 사법 개혁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라. 예상하건대 ‘법원행정처가 폐지돼야 한다’ 혹은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고 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공정한 재판과 공정한 수사다. 이게 과연 검찰의 힘만 빼서 이뤄지겠는가.”

그는 이어 검찰 개혁의 화두인 △검찰 특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우선 특수부 폐지에는 단호하게 ‘반대’를 외쳤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경찰의 힘이 커졌을 때의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수부 폐지는 국가적 재앙이다. 중앙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하거나, 무자비하게 이익을 사유화하려는 이들을 잡아들이는 게 특수부의 역할이다. 오·남용 부작용만 강조하고 특수수사의 순기능은 얘기하지 않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 힘이 센 수사조직이 우리나라 검찰 특수부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뉴욕 검찰만 봐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특수부 수사를 한다. 그렇다고 폐지가 거론되지는 않지 않나. 그러면서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줘버린다? 그 시점부터 오히려 경찰은 불행해질 것이다. 국민의 불신은 검찰이 아닌 경찰을 향할 것인데, 논의되는 ‘자치경찰제 도입’만으로는 경찰의 비대화를 막을 수 없다. 경찰에 권력을 넘겨만 주고 통제장치는 거의 마련하지 않은 셈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여론에서는 찬성 입장이 크게 앞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국회사진취재단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여론에서는 찬성 입장이 크게 앞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국회사진취재단

그는 공수처에 대해서는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신 변호사는 “검찰 조직에 대한 비상적인 조처는 필요하다. 공수처를 한 10년 정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검찰이 정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어 문제인데 공수처가 두 개를 다 가지고 있으면 검찰과 똑같아지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에 그는 “공수처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검찰의 공정성이 이후 향상된다면 공수처가 왜 필요 있겠나. 공수처가 불필요해지는 시점에 사법 개혁은 완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의 구멍을 메울 대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신 변호사는 자신의 고향인 사법부를 시작으로 좀 더 큰 개혁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기소배심제 △조서 작성 폐지 △법왜곡죄 같은 다양한 법·제도 신설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법의 독립뿐 아니라 책임이 강조되는 개혁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의 법조계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같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려면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기소배심제도’나 판검사가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법을 왜곡할 경우 처벌하는 ‘법왜곡죄’ 등이 도입돼야 한다. 사법의 독립과 사법의 책임이 같이 강조되는 게 세계 법학의 트렌드인데, 유독 우리나라는 사법의 독립만 강조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윤석열 총장도 재판과 수사의 독립만 반복하며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만 말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사법의 독립이 아닌 책임이다.”

 

“재판 왜곡 진상 밝혀달라”…윤석열에게 서신 보내

한편, 신 변호사는 경북대 로스쿨 교수를 지낼 당시 경북대 총장의 부당 인사, 동료 교수 성매매 의혹 등을 공개 비판한 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신 변호사의 명예훼손 상고심을 1년8개월간 심리하지 않다가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자 주심 재판관을 바꾸고 벌금 500만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사법 개혁을 주창하는 신 변호사의 대법관 임명을 막으려 한 사법부의 ‘재판 왜곡’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신 변호사는 ‘사법농단’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진상을 밝혀주길 기대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지난 7월 사법농단 수사의 주체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로부터 전화상으로 조만간 소환할 것이니 진술을 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 후 지금까지 전혀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와 수사의 기대를 담은 서신을 윤석열 총장에게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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