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의원, 불출마 선언 전 기자에 털어놓은 심경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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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취재진과 12일 여의도 오찬에서 솔직한 속내 밝혀
"지금 한국당은 답이 없다. 절망적이다" "기후변화 등 지속가능 가치가 진짜 보수정치"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10월15일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10월15일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다.”

김세연 한국당 의원이 11월17일 전격적으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40대 개혁보수 선두로 부산 금정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4선은 무난해보였기에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이날 정가의 큰 충격이었다. 김 의원은 자신의 불출마 선언문에서 ‘좀비’ ‘당 해체’와 같은 다소 과격해보이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강도높은 당 개혁을 주문했다.

그러나 정작 김 의원 주변은 “예전부터 고민한 사항”이라는 반응이다. 이러한 고민은 12일 시사저널 취재진과 오찬을 겸해 만난 자리에서도 읽혀졌다.

4선 의원 출신인 고(故) 김진재 의원의 아들인 김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대인관계가 좋기로 유명하다. 개혁보수를 꿈꾼 탓에 한국당을 뛰쳐나간 뒤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친박계와의 관계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를 꾸렸을 때 김 의원도 비대위원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 김 의원의 인터뷰는 재미없기로 유명하다. 요즘 말로 치면 ‘답정남’(무슨 말을 할지 답이 정해진 남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심스런 행보 탓에 서열문화가 짙은 한국당에서도 김 의원은 복당파이면서도 ‘미운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이날 기자와의 오찬 장소는 뜻밖에도 서울 여의도 KBS별관 근처에 위치한 평범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보통의 국회의원들은 남의 이목을 생각해 별도의 방에서 만남을 가지는 데 이날 김 의원은 여느 여의도 직장인처럼 오픈된 공간에서 시사저널 취재진과 편안하게 점심을 같이했다. 동석한 보좌관도 없었다.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정치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김 의원은 “상관없다. 여러 번 와봤지만, 내가 국회의원인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당초 이날 오찬은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김 의원은 평소와는 다르게 정국에 대해 거침없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 한국당은 답이 없다. 절망적이다. 누구는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대패해 보수진영이 완전히 깨져야 한다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여당이 독주를 하게 된다. 그게 걱정스럽다.”

김 의원은 부산시당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여의도연구원장 등을 맡고 있다.

지역구인 부산 민심은 어떤가.

“우리(자유한국당) 역시 만만치 않다. 조국 사태 이후 조금 좋아졌는데. 박찬주 대장 영입 해프닝 이후 다시 나빠졌다.”

당 일각에서 영남권 3선 이상 중진은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했다. 아직 나이가 40대인데 억울하지 않나.

“뭐, 그럴게 볼 수도 있겠고…”

당의 문제가 뭔가.

“한국당은 여전히 친박당이다. 친박이 잡고 있다는 걸 다 알지 않나.”

‘정치인’ 황교안 대표를 어떻게 보는가.

“인품은 아주 훌륭한 분이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감각은 없는 거 같다. 박찬주 대장 문제를 보면 알지 않느냐.”

보수 대통합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가.

“잘 모르겠다. 당이 유승민 의원의 3대 원칙(박 전 대통령 탄핵 인정, 당 해체, 개혁보수 지향)을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말하지 않고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나.”

김 의원은 “우리 당의 지지기반은 너무 고령화 되어 있다. 전체 인구 중 세대비율이 있는데 우리 당은 노년층에 치우쳐 있는 셈이다. 젊은 의원들이 몇몇 들어왔는데, 기성정치에 흡수됐다”며 아쉬워했다.

김세연 의원(여의도연구원장)이 9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정권, 가짜뉴스 논란과 표현의 자유 침해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김세연 의원(여의도연구원장)이 9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정권, 가짜뉴스 논란과 표현의 자유 침해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원장으로 겸직하고 있는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역할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안타까워했다. 올 7월 김 의원이 당 보건복지위원장과 여연 원장을 겸직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선 논란이 된 바 있다. 김 의원은 원장에 취임한 이후 여연 직원들에게 두 달 동안 여의도 위워크(공유오피스) 근무를 지시한 바 있다. 증권가 주변에 위치한 위워크 여의도점에서 일하게 함으로써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분위기를 집어넣기 위해서다.

김 의원은 “다들 여연에 있으면 공천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연은 공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든 조사 결과는 대표에게 직접 보고되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여연 부원장 자리 놓고 갈등이 있었다던데.

"여연은 총선에 영향을 주는 자리가 아니다."

요즘 뭘 기획하나.

“구체적인 걸 말하기 힘들지만,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거 한다고 하니, 선배 의원들이 ‘선거 기획 준비나 잘하라’며 핀잔을 주더라.”

보수진영도 진보 진영의 가치를 담을 수 있지 않나. 언제까지 안보, 한미동맹만 강조할 것인가.

“동의한다. 보수도 기후변화, 노동의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념 정치에 빠져 있는 지금이 오히려 우리(보수정치)에겐 기회다. 지속가능이라는 게 보수의 기본 가치 아닌가. 녹색당의 환경, 정의당의 노동 정책에 있어 급진적인 것을 뺀다면, 우리 당에서 이를 채택할 충분한 의미가 있다.”

아무리 기사를 안쓰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 한다고 해도 오늘은 평소와 달리 굉장히 거침없이 말하는 것 같다.

“사무실(국회 의원회관)에선 이런 말을 못한다. 보는 눈도 많고. 그리고 의원이라면 모름지기 정제된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의원과의 만남은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당초 김 의원과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사로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불출마 배경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김 의원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결례를 무릅쓰고 기사화했다. 이 점에 있어선 김 의원에게 미안한 마음은 든다. 다만 그 자리에서 거론된 황 대표를 제외한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당초 약속대로 기사화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문 일부를 발췌했다.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합니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합니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새로운 기풍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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