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과 한전의 적자, 맞지만 틀리다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7 13: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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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사업자지만 공공성 있는 한전의 한계…김종갑 사장이 특례 할인 폐지 언급한 배경 주목

지난 7월, 한국전력의 소액주주들이 김종갑 사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손실과 올림픽 지원금 등으로 적자 경영을 유발했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한전은 2011년 이후 가장 부진했던 3분기 실적을 11월14일 발표했다. 지난해의 실적은 2080억원 적자였다.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에 벌써 9285억원의 적자를 냈다. 연말까지 가면 대략 2조3000억원의 적자를 예상한다. 돌아보면 한전의 영업이익은 2015년 11조3000억원, 2016년 12조16억원이었다. 현 정부가 12조원의 흑자가 나던 회사를 2조3000억원의 적자로 추락시킨 셈이다. 한전 측은 산업, 일반, 가정, 교육, 농업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흑자가 나는 분야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종갑 사장, 주주들로부터 왜 고발됐나

흔히 한전 적자의 원인을 정부의 월성1호기 폐쇄를 비롯한 ‘탈원전 정책’에서 찾는다. 원자력이라는 값싼 전원 대신 비싼 전원을 확대했고, 이게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한전의 적자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백 퍼센트 정확한 것도 아니다. 우선 원전 발전량이 감소한 것은 맞다. 2017년과 2018년 원전 이동률은 65~70% 수준으로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원자력 발전이 줄어든 만큼 LNG, 재생에너지, 석탄 순으로 발전량이 늘었다. 한전으로서는 원전의 발전량을 줄이는 대신 LNG 발전량을 늘렸는데, 마침 국제 원유 가격 반등으로 비용이 늘어난 게 불운이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가스 단가는 kWh당 2016년 99원에서 2017년 112원, 2018년 121원으로 크게 올랐다. 평균 발전 단가도 2016년 79원/kWh에서 2018년 90원/kWh으로 급등했다. 2016년 1조2000억원이었던 재생에너지 지원금도 2조원 규모로 늘면서 부담이 컸다.

그러나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항상 흑자를 기록했던 회사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한전은 3년에서 4년을 주기로 적자와 흑자를 반복해 왔다. 고유가를 극복하기 위해 원전 가동을 독려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한전은 적자였다. 2008년의 영업적자는 2조8000억원을 기록해 정부가 이를 보전하기 위해 67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했다. 대규모 단전까지 이어진 2011년에도 1조원의 적자였다.

문제의 핵심은 석탄, 가스 등 연료 가격이 올라도 원가가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 있다. 한전은 항상 원가가 오르면 일정한 기간 적자를 감내하다가 결국 요금 인상을 통해 적자를 해소해 왔다. 한때 10조원이 넘는 흑자가 가능했던 것도 계속되는 적자 끝에 요금을 대폭 인상한 뒤, 마침 국제 유가가 떨어진 덕분이었다. 비용을 반영해 적시에 조정하지 않는 현재의 요금체계가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한전은 계속 적자와 흑자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대책도 마련해 이미 제도에 반영했다.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던 2010년 정부 고시에는 원가 변동이 자동으로 요금에 반영되는 이른바 ‘발전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그 뒤 정부가 스스로 시행을 막고 있다. 이 문제에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의 차이는 없다.

한전의 정체성은 조금 미묘하다. 한전은 독점적 전력공급 사업자로서 공공성이 뚜렷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민간기업이기도 하다. 상장기업으로 수많은 기관과 소액투자자들도 주주지만, 민간기업 한전이 가진 공공성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공 사업자면서 동시에 민간 사업자로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한전이 하는 사업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발전소도 계속 지어야 하고, 송전과 변전 시설은 때때로 수리도 하고 교체도 해야 한다. 한전이 계상한 연도별 투자금액을 보면 앞으로 5년간 46조3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해마다 연평균 9조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전은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면, 필요한 돈을 모두 빌려야 하고 적자가 나면 적자가 난 만큼 더 빌려야 한다. 한전의 공공성 때문에 전력요금을 규제하지만, 또한 한전의 공공성 때문에 돈이 부족하면 정부가 나서서 재정이라도 투입해야 한다.

한전 김종갑 사장은 지난달 전기요금 한시 특례 할인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성윤모 산자부 장관은 국회에서 각종 특례요금은 도입 목적과 정책효과를 감안해 검토를 거친 후에 조정과 연장, 폐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당연한 얘기다. 전기요금체계 개편은 먼저 산자부의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치고 한전 이사회 표결로 확정된다.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낸 김종갑 사장이 이를 모르고 얘기를 꺼냈을까. 누군가 말을 꺼내야 논의가 시작되고 공론화도 가능하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거듭 공언해 왔다. 공론화의 시동을 걸기 어려운 정부를 대신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전 김종갑 사장이 산업자원부 차관을 하던 시절, 성윤모 장관은 그 밑에서 전력산업팀장을 맡고 있었다.

한전은 2011년 이후 가장 부진했던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한전은 2011년 이후 가장 부진했던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요금 인상 이유 투명하게 공개해야

계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몰형 특례 할인 규모만 한 해 1조14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는 특례의 일괄 폐지도 어렵다. 저소득층이나 농민,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적용하는 할인은 아무래도 폐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전은 정부도 특례 할인 가운데 산업정책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정도는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기업농이 값싼 농업용 전기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재 농업용 전기 사용량의 40% 정도를 대규모 기업농이 쓰고 있다. 하림이나 현대서산농장, 신세계푸드, 아모레퍼시픽 등이다. 농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의 30%를 조금 넘는 kwh당 47원이다. 한전은 이달 말 이사회에서 논의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에 전기요금 개편안을 산업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전기요금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청와대에도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과 직접 얘기해 본 사람들은 탈원전은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고 말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는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 자신의 철학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 당시의 공약이기도 했으니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의 대가에 대한 정보는 국민에게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옳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한전 적자의 진정한 문제는 원가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요금체계에 있고, 탈원전 정책의 진정한 문제는 정부가 정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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