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론 몰린 중진들, 불출마해야 하는 3가지 이유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6 10: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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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선거환경·현역 교체 의향·재기 모색 등이 강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은 어디가 될까. 더불어민주당일까 아니면 자유한국당일까. 어쩌면 두 정당 모두 제1당이 못 될 수도 있다. 역대 총선들도 다 그랬지만,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거에서 각 정당이 당선자를 많이 배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유독 내년 총선 승리에 기를 쓰고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년 21대 국회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하반기 임기와 직결된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다수당이 되어야 문 대통령의 개혁 동력이 유지된다. 만약 여소야대 국회가 된다면 검찰 개혁을 비롯해 대부분의 개혁 공약은 도루묵이 되고 만다. 2016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이 제1당에 실패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 조경태 최고위원(왼쪽부터) 등이 1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 조경태 최고위원(왼쪽부터) 등이 1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 탄핵 이후 첫 총선, 개혁 요구 거세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정권 재창출이나 정권 교체는 상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종합해 보면 내년 총선은 차기 대권과 연결되고 공천 혁명이 불가피한 선거가 되고 있다. 2004년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이 ‘차떼기 정당’으로 몰렸을 당시 박근혜 대표는 ‘천막당사’로 정치적 하방을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속에 압도적인 참패가 예상되는 시점이었다. 이때 필요한 충격요법은 ‘중진 불출마’였다. 한나라당이 내건 카드 중에 ‘천막당사’보다 더 큰 파괴력은 사실 ‘중진 불출마’였다. 30여 명 가까운 불출마 결단이 이어졌는데 다수는 보수 정당의 텃밭인 영남 지역 중진들이었다.

얼마 전 현 정부의 실세이자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총선 불출마와 함께 정계 은퇴를 시사했다. 어떤 의도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임 전 실장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좋아진 셈이다. 한국당의 40대 중진 의원인 김세연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회견에서 당과 황교안 대표 그리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한 쓴소리를 토해냈다. 한국당이 민폐이자 좀비 정당이라고까지 했다.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거나 다른 정치적 모색을 할 수 있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왜 불출마를 선택했을까. 불출마를 원했다기보다는 불가피하게 불출마해야만 하는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선거환경, 교체 의향, 재기 모색 등 3가지다. 이 3가지가 중진 의원들로 하여금 불출마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중진 의원들이 불출마해야 하는 이유는 ‘선거환경’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개혁 요구가 강하지 않다면 굳이 중진들이 불출마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다선 의원들의 영향력이 주변 지역의 같은 정당 소속 다른 후보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 실시되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일반적인 선거 성격과 판이하게 다르다.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준다면 문 대통령 국정운영의 불확실성은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다. 지난 2004년 총선은 대통령 국회 탄핵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이 걸린 선거였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은 개혁 공천을 표방했고 여대야소를 만들어냈다.

국정 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내준 한국당 입장에서 내년 선거는 2004년과 비교되는 특별한 선거환경이다. 내년 선거에서 지지층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선 승리는 없다. 15년 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시점이기 때문에 지지층 회복을 위해 ‘중진 불출마’의 파격적 결정은 불가피하다. 당연히 초선 의원 비율은 높아지게 된다. 국회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선거에서 초선 당선자 비율은 40.7%였다. 2008년 선거와 2016년 선거도 초선 의원 당선자 비율이 40%대였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품고 치러진 2004년 총선의 초선 의원 비율은 무려 62.5%였다. 특별한 선거환경에서 현역 불출마는 불가피했던 것이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그해 4월 총선에서도 초선 의원 비율은 50%에 육박했다(그림①). 내년 총선 역시 2004년 때만큼은 아니지만 대선을 앞두고 특별한 선거환경으로 중진 의원 불출마는 불가피해 보인다.

중진 의원들이 불출마해야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교체 의향’ 때문이다.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법안 통과가 역대 국회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준인 데다, 4년 임기 내내 여야 간 정쟁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들의 대표기관이지만 민생은 본회의장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 의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전략 필요할 수도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11월19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를 보면 다음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교체할 것인지 물어본 결과 ‘교체’ 의견은 46.9%, ‘유지’ 응답은 42.2%로 팽팽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지역구 의원이 한국당 소속인 경우 교체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그림②). 국회의원의 교체 의향을 묻는 경우 초선 의원보다는 선수가 높은 중진일수록 교체 의향이 높게 나타나는 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구 유권자들의 기득권 혐오가 깊어졌고 당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무모한 도전이므로 불출마할 수밖에 없다.

중진 의원이 불출마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재기 모색’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불가피한 결정이다. 당선 가능성이 낮거나 교체 대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무리한 출마는 정치 생명을 단축시킨다. 정치 혁신 법안을 내놓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양심 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획득하며 서울시장 자리에 올랐다. 선거 구도와 정당의 경쟁력은 해마다 달라진다. 지난해 지방선거는 야당 소속 후보자들이 어떻게 손써볼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내년 총선에서는 지난해 지방선거와는 사뭇 다른 전망이 도사리고 있다. 특정 정당에 절대 유리한 판세는 없는 모양새다(그림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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