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론’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는 중진들
  • 송창섭‧박성의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6 10: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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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한국 중진들, ‘586 용퇴’ ‘좀비당 해체’ 여론 수그러들자 다시 반격

세대교체는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화두였지만 자연스럽게 이뤄진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치권 안팎의 강한 동력이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11월초 시사저널이 국내 언론으론 처음으로 실시한 무당파층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4.7%가 정치권이 시급하게 개혁에 나서야 할 이슈로 ‘세대교체’를 꼽았다. 응답률로는 ‘개헌’(28.8%) 다음으로 많았다. 정치권이 무당파층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세대교체’(39.1%)는 ‘정당의 새 비전과 공약’(40.6%) 다음으로 많이 꼽혔다.

정치권에서 세대교체는 ‘전가의 보도’와 같다. 총선 때마다 세대교체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선진화·전문화였다. 새 인물을 많이 끌어들인 정당일수록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도 각 정당이 세대교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19대 총선(2012년)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총 300석 가운데 152석을 차지했는데 이 중 초선의원 비율이 51.3%를 기록해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44.0%를 앞섰다. 이후 치러진 20대 총선(2016년)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의원 비율이 46.3%로 36.9%인 새누리당보다 많았다. 물론 원내 제1당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왼쪽부터)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왼쪽부터)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민주당 내 세대교체 바람이 꿈틀거리고 있다. 바람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임 전 실장은 11월17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총선 불출마를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서울 종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집주소까지 옮긴 임 전 실장이었기에 이날 글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여권의 잠룡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 왔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인 임 전 실장은 당내 대표적인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다. 그전까지 민주당에선 이철희, 표창원 의원 등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임 전 실장처럼 중량급 인사가 나선 적은 없었기에 이날 여권의 충격은 컸다.

임 전 실장의 선택 이후 관심은 586세대 교체론이 확산될지 여부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재선 의원은 “최근 학계에서 586이 정치·경제·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 데 이어 임 전 실장까지 불출마 선언을 해 당내 586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임 전 실장의 이번 결단은 차기 총선을 준비 중인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서 추산하는 청와대 출신 출마 예상자는 50~60여 명으로 상당수가 586세대다.

 

조국 논란 눈감은 민주 586세대에 대한 비판 거세

여권 내 586세대 행보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중진으로 성장한 원내 세력이다. 이인영 원내대표(전대협 초대의장 출신)를 비롯해 우상호, 김태년, 최재성, 조정식 의원 등이 대표적인 586세대 정치인이다. 두 번째 그룹은 현역 의원이면서 내각에 포진한 인사들이다. 유은혜 교육부총리,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당 외곽세력이다. 전·현직 청와대 출신 참모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현재 이 세 그룹 모두 임 전 실장의 불출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 논란은 586세대 용퇴론에 더 힘을 싣는 모양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불공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조 전 장관을 앞장서 방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2030 세대는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586세대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비타협적인 진영논리를 심화시켜 정치를 분열시킨 책임도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재선 의원 보좌관은 “586세대는 국정원, 검찰 개혁에만 온통 관심이 있을 뿐 요즘 청년들의 고민은 안중에도 없다”면서 “임 전 실장이 앞으로 통일운동에 본격 나서겠다고 했는데, 20대들에게 ‘통일’은 먼나라 이야기”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최근 586세대 용퇴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배경도 이와 비슷하다. 한국 정치사에서 586세대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86세대(586세대)가 정치적으론 다른 어떤 세대 못지않게 성과를 거뒀다.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586세대가 87체제로 상징되는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데는 기여했지만 그 이후 한 일은 냉정하게도 없다”면서 “그러는 사이 국민들에게는 586세대가 갖은 혜택을 누린 것만 비춰졌다”고 평가했다.

당 안팎의 용퇴론에 대해 정작 당사자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586세대 의원은 “이철희 의원은 지역구도 없는 초선 비례대표인 데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도 “586에서 대통령이 나왔나, 당 대표가 나왔나. 이제 겨우 원내대표 하나 나왔다”면서 “건물로 치면 이제 2층에 올라갔는데, 도로 내려오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스트586세대’(일명 97세대) 중 선두주자로 꼽히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임 전 실장의 결정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하며 이것이 586세대 전체의 공감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치 목표를 구현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직선제와 수평적 정권교체만 이뤄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거라고 봤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미완의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선 선거법, 국회법, 헌법 개정을 위해 586세대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년 2월 이인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단상)과 젊은 개혁세대 출마자들이 총선 선전을 위한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 2번째는 임종석, 오른쪽 3번째는 이인영, 왼쪽 5번째는 함승희 ⓒ 연합뉴스
2000년 2월 이인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단상)과 젊은 개혁세대 출마자들이 총선 선전을 위한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 2번째는 임종석, 오른쪽 3번째는 이인영, 왼쪽 5번째는 함승희 ⓒ 연합뉴스

김세연 발언 놓고 “지금이 어린애 영웅놀이 할 때냐”

김세연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자유한국당 내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당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앞서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김 의원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당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비유한 것도 중진 의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게 당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 김 의원이 ‘내부 총질’로 해당 행위를 했다며, 당 지도부에 중징계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당의 한 3선 의원 보좌관은 “(의원이) 매우 불편해했다. 김 의원의 발언을 듣고는 바로 다른 선배 의원에게 전화해 ‘지금이 어린애 영웅놀이를 할 때냐’며 혀를 찼다”며 “특히 당의 중진 의원들은 (김 의원의) 불출마 요구에 동참은커녕 굉장히 화가 나 있다. 사석에서는 온통 (김 의원의) 당 해체 요구에 대해 ‘오버했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실제 당내 기득권을 차지하는 친박계와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친박계 곽상도 의원(초선, 대구 중·남구)이 ‘조건부 불출마’를 시사하며 영남권 친박계의 쇄신이 시작되는 듯했지만, 정작 쇄신 대상으로 거론되는 영남권 중진 의원들이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는 지역구를 놓치기 싫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 한국당 내 수도권 의원들은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대 총선 패배와 대통령 탄핵 등 박근혜 정부 실패의 책임을 ‘친박‘ ‘영남’ ‘중진’ 그룹이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래서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수도권 의원들은 인적 쇄신과 신인 등용이 절실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고 밖에서 데려올 뚜렷한 인사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결국 김세연 의원 주장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나는 일단 쇄신 대상이 아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게 한국당의 현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특정 지역이나 정치 경력 등 ‘획일적 선’이 인적 쇄신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부인사 등이 참여해 객관적인 ‘쇄신 지표’를 만들어, 출마 적정성 등을 검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했다. 이 상황에서 ‘그대로 가자’는 주장은 정당사와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다만 명확한 개혁안도 없이 ‘누구, 누구 나가’라는 식의 용퇴론이나 당 해체론을 집어드는 것 역시 해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일단 획일적 기준으로 쇄신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선 이상 의원 중 훌륭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나”라며 “결국 어떤 방식으로 불출마 대상자를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외부인사 등이 참여해 합의된 인사 검증 종합지표를 개발해 검증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2011년 12월 19대 총선 불출마 방침을 표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2004년 1월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2011년 12월 19대 총선 불출마 방침을 표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2004년 1월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2보 전진 위해 1보 후퇴’한 오세훈·홍정욱  

2004년 17대 총선 때의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2019년 자유한국당보다 상황이 더 열악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정치자금을 모금했고, 이것이 2003년 말에 드러났다. 국민은 지지를 거뒀지만, 당 중진 의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때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이가 초선 의원이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당시 오 전 시장의 나이는 43세, 지역구는 한나라당 텃밭이던 서울 강남이었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다”고 불출마 이유를 밝혔고,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을 이끌어냈다. 개혁보수의 이미지를 굳힌 오 전 시장은 2년 뒤 열린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두 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 이후 그는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19대 때는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불출마했다. 영화배우 남궁원의 아들인 홍 전 의원은 수려한 외모와 ‘하버드대 수석 졸업’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보수의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노원병에서 당선됐다. 이후 2011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을 때 여당 의원 신분임에도 ‘기권’을 선언해 여당의 단독처리를 무산시키며, ‘소신 있는 보수’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계파 정치에 지친 그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후 헤럴드미디어그룹 회장을 지내면서 기업경영 경험을 쌓았다. 최근까지 범보수연대의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올해 시사저널이 뽑은 ‘정치 부문 차세대 리더’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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