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를 이겨내는 《겨울왕국2》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3 14: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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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대신 ‘자매애’에 무게
속편의 법칙에 따라 ‘더 크게 더 많이’ 무대 넓혀

“그래서 1편보다 재밌어?” 《겨울왕국2》 시사회를 보고 온 후 끊임없이 받은 질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2013년 《겨울왕국》의 마법을 경험한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1편을 뛰어넘었는가 여부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12억7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역대 최고 히트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가 음원차트는 물론 라디오와 커피숍을 접수하고,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품의 속편이 지닌 운명이란, 세간의 기대와 그것이 주는 부담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저 질문에 내놓은 대답을 미리 공개하자면, “지난 5년간의 노력이 결코 헛된 작품은 아니야”다.

《겨울왕국2》는 1편에서 3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는 아렌델 왕국. 언제부터인가 엘사에게 의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왕국도 위기에 빠진다. 트롤은 이 모든 게 과거에서 비롯됐으며, 엘사가 지닌 힘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엘사는 주저하지 않고 모험을 떠난다. 혼자가 아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 올라프, 스벤이 함께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편의 줄거리 기둥, 엘사 마법의 기원 찾아

디즈니가 고안해 낸 2편의 줄거리 기둥은 ‘엘사는 어떻게 마법의 힘을 갖게 됐는가’다. 신선한 방법은 아니다. 주인공이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출생의 비밀’은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나는 네 아비다(I’m Your Father)”부터 최근 《조커》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할리우드 영웅·반영웅들이 차용해 온 서사다. 신선한 방법은 아니지만, 약점도 아니다. 역시 《스타워즈》부터 《조커》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이 증명해 보인 바다. 중요한 건 익숙한 소재를 어떻게 응용해 내는 가인데, 《겨울왕국2》는 이 부분에서 허술하지 않다.

엘사에게 어울리는 히어로가 있다면 그것은 응당, ‘엑스맨’이다. 자신이 지닌 능력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엘사의 과거는 무수히 많은 엑스맨들의 과거와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안타깝게도 엘사에겐, 어린 돌연변이들을 위한 영재학교를 설립해 그들의 정신 건강을 챙겼던, 자비에 교수(제임스 맥어보이·패트릭 스튜어트)가 없었다는 점이랄까. 엘사는 비범한 능력 때문에 격리됐고, 폐쇄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딸의 안위를 걱정해 특별한 능력을 감추게 했던 엘사 부모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엘사를 더욱 두려움으로 밀어넣었다. 1편은 그러한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면 《겨울왕국2》는 그 능력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묻는다.

최근 고전 장편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리메이크를 통해 구시대적 가치관과 시대에 뒤처진 여성 캐릭터들을 빠르게 수정해 나가고 있는 디즈니에 《겨울왕국》은 탄생부터 동시대 트렌드에 부합하는 요소가 가득 채워진 작품이었다. 거울 조각이 심장이 박혀 마음이 차갑게 식은 소년 카이를 소녀 겔다가 찾아 나서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여정을 ‘엘사와 안나 자매 이야기’로 치환해 낸 설정부터 예고된 바다. 이들 자매는 왕자의 키스나 구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쟁취하며 ‘디즈니 프린세스 프랜차이즈’(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벨 등으로 구성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주체성 평균치를 끌어올렸다.

1편의 장점으로 평가받은 이러한 흐름은 2편에서도 이어진다. 로맨스나 브로맨스가 아닌 엘사와 안나의 시스터후드(자매애)가 전면에 나서 극을 이끈다. 그 끝에서, 각자의 입장에 맞는 성장사를 획득한다는 게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특별한 힘을 지녔으나 예민하고 고독한 성향의 엘사와, 비범한 능력은 없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위기 앞에서 강해지는 안나는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보완하며 허들을 넘고 넘는다. 드레스 대신 바지를 입은 엘사와 안나의 모습에서도 캐릭터 설정에 신경을 쓴 제작진의 고민 흔적이 엿보인다.

영화 《겨울왕국2》의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2》의 한 장면

‘렛 잇 고’를 잇는 뮤지컬 넘버가 변수

엘사와 안나만큼이나 사랑받았던 눈사람 울라프의 매력은 이번에도 반짝인다. 몸을 자유자재로 분해하고 합치는 ‘슬랩스틱 개그의 달인’ 울라프는 걸쭉한 입담까지 끌어와 관객의 들썩이게 한다. 이 캐릭터는 감동까지 능숙하게 담당해 낸다는 점에서 만능이다. 새롭게 등장한 불의 정령 브루니의 매력도 상당하다. 울라프와 함께 귀여움을 담당하며 극에 밝은 기운을 전달한다.

디즈니가 최근 주목하는 다문화, 다인종 끌어안기도 녹아 있다.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나아가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 그것이 공존이고 평화임을 아는 것. 그에 대한 두터운 자각이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 굳이 트럼프 시대의 은유로 읽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할 만한 지점을 잘 깔았다.

《겨울왕국2》 만족감의 큰 변수는 아무래도 뮤지컬 넘버 쪽일 것 같다. 빌보드 200 차트에서 역대 애니메이션 OST 사상 최장기간인 13주 1위를 세운 ‘렛 잇 고’의 위력은 한 번 들으면 머리에서 자동재생되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에 있었다. 2편 주제곡 ‘인투 디 언노운(into the Unknown)’은 어떨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마법은 ‘렛 잇 고’에 비해 약한 편이란 생각인데, 이 뮤지컬 넘버가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가 《겨울왕국2》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령대별로 편차를 가를 곡은 크리스토프가 부르는 솔로곡 ‘로스트 인 더 우즈(Lost in the woods)’다. 1970~80년대 팝음악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창법이 애잔하면서도 뭔가 느끼하고 그래서 웃기다.

의견이 나뉠 수 없는 건 기술력이다. 1편이 눈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풍광으로 ‘헉’ 소리 나는 아름다움을 안겼다면 이번엔 물이다. “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대사가 증명하듯, 이번 편에서 물은 또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물 입자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엘사가 지닌 능력과 만나 동화적이면서도 신비하고 아름다움운 장관을 연출한다. 엘사가 파도를 이용해 서핑하는 수중 액션 장면의 기술적 완성도엔 엄지를 치켜들게 된다. 계절 배경이 겨울에서 가을로 바뀌면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음미할 수 있는 장면들이 추가된 것도 색다름이다.

더 크게, 더 많이. 속편의 법칙에 따라 무대를 넓힌 《겨울왕국2》는 ‘1편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놓고 보면 충분히 빼어난 오락 영화다. 아이들 성화에 ‘렛 잇 고’를 지겹게 들었다는 부모들은 긴장하시라. 굿즈 구매로부터 지갑도 잘 사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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