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5 09:00
  • 호수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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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386세대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꼽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소란하다. 세대교체와 386 용퇴론에 불을 댕겼다는 등 갖가지 해석이 나온다. 그 의미가 어찌 됐든 제도권 정치를 떠나 민간 영역에서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는 그의 뜻은 존중받을 만하다, 꼭 금배지를 달아야만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도 이참에 함께 사라지면 좋겠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4월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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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이 말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에 30대 연령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출생자를 일컫는다. 지금 나이로 치면 50대이니 ‘586세대’로 불러야 옳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용어가 당시 많이 사용된 ‘386 컴퓨터’에 빗대 나온 것이니만큼 그냥 ‘386’으로 쓰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들이 대학을 다닌 1980년대는 학원민주화 투쟁이 뜨거웠던 시기다. 전두환 정권 시절 사회 모순에 맞서 싸웠던 그들의 연대는 이른바 ‘1987년 체제’의 등장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세대 가운데 소위 ‘공부 좀 했다는 386’들이 지난 조국 사태와 함께 국민 앞에 소환되었다. 그들을 향해 던져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미 공고한 세력으로 자리 잡은 그들이 각종 기회와 사회자본 및 자원, 정보를 장기 독점해 공정과 정의의 확산을 가로막지는 않았느냐는 것이다. 사회 발전을 이끈 세대라는 인식에 침잠해 정치적 정당성까지 독점하려 들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도 거기에 포함된다. 386세대 가운데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데 대해 여전히 상당한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추종했던 신념과 상식이 현재에도 유효하리라는 믿음은 이제 스스로를 가두는 장벽이 되어 있다. 벽 안에 갇혀 있다 보면 자신들이 지닌 도덕적 허점에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시대는 변했다. 지금 20대의 눈앞에 서 있는 386은 그냥 많은 것을 독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층일 뿐이다. 30여 년 전 똑같이 젊었던 그들이 세월을 따라 어른의 나이는 되었지만, 사회의 진정한 어른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고 본다. 당사자들이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회의감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젊었을 때 가졌던 시야는 좁아들었고, 열정은 식었다. 이제는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에까지 소개됐던 그 단어 ‘꼰대’라는 개념과도 싸워야 한다.  

사회 정의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그 ‘틀림’을 인정하고 다른 세대의 고민을 공유하는 데 게을렀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그래서 필요하다. 꼭 시국선언과 같은 거창한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386세대가 삼삼오오 모여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하고, 공정의 가치를 나누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팔을 걷는 모습만 보여줘도 우리 사회 전체가 큰 힘을 얻을 것이다. 

디즈니의 상속자이자 영화감독인 애비게일 디즈니는 지난 11월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판 386’인 또래의 베이비붐 세대에게 이런 쓴소리를 내놓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직시합시다. 당신은 늙었어요. 아직 완전히 시대와 동떨어진 건 아니지만, 날마다 뒤처지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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