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법’에 반대한다…문 의장의 강제징용 해법 논란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30 17: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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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문희상과 대한민국, 이러면 안 된다

사건이 발생했다. 개요는 이렇다. 11월5일 일본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와세다대학에서 강연을 한다. 이 강연에서 문 의장은 현재 한·일 갈등의 시작점이자 근본 문제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판결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1+1+α’라는 제안을 한다.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이 기금을 내고 양국 국민들이 성금을 보태서 해결하자는 제안이다. 심지어 여기에 지난 2015년 위안부 협상 당시 일본이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중 아직 남아 있는 60억원도 보태자고 했다 한다.

이 제안은 꼬리를 물고 커져서 불과 20여 일 만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초안이 언론에 소개되고, 여야 의원 40여 명이 지지하고 있단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웃는 낯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조선일보 지면을 보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제안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제안인지를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나도 또 지적하고 싶다.

2017년 5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특사인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이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P 연합
2017년 5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특사인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이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P 연합

“돈을 달라”가 아니라 “일본이 잘못했다”이다

우선 순전히 겉으로 드러난 모순이다. 첫째로 가해자가 해야 할 배상을 피해자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문 의장은 한국 기업과 국민이 성금을 내자고 한다. 둘째로 그러려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해야 하는데 문 의장은 그러자고 한다. 셋째로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가 같은 일본이지만 피해의 결이 하나는 강제노동이고 하나는 전시성 폭력으로, 둘을 합쳐서 퉁칠 수 없다. 그런데 문 의장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넷째로 과거사가 원인이 된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돈은 사죄와 반성에 따라오는 것일 뿐 앞설 수가 없다. 문 의장은 오로지 돈을 만들어서 피해자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섯째로 이러나저러나 해결은 일본이, 일본의 기업이, 일본 정부가 해야 한다. 그런데 문 의장은 이를 국내 문제로 생각하고 국내법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이 무슨 내선일체적 사고방식인가.

강조한다. 문희상 의장의 해법이 지닌 근원적 맹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해자가 안 보인다는 거다. 오로지 가해자의 입장을 편하게 해 주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한·일 관계를 풀어보자는 일념이라고 하지만, 그 일념이 왜 일본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되는 것처럼 작동할까? 그래서 생기는 두 번째 맹점은 피해와 가해의 성격에 혼란이 오고 주체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대법원 판결의 진정한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배상, 즉 돈을 달라”가 아니라 “일본이 잘못했다”이다. 대한민국 국가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가가 국민의 피해를 알고 있고 함께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 잃어 서러웠던 백성에게 나라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강제징용도 위안부 문제도, 구체적인 살과 피를 지닌 사람이 엄연히 피해자로 존재한다. 아무리 국회의장이든 국회든 심지어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한 인간의 존엄이 파괴된 일 앞에서 그를 대신해 용서하거나 합의할 수 없다. 언제나 가해자에게 빙의하는 습성이 한·일 관계에까지 연장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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