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리더십] “연동형 비례대표제 절대 불가!”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9 11: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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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등 범여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전제조건”…협상 여지 닫아버린 한국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결국 단식 8일째를 맞은 11월27일 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28일 의식을 회복한 황 대표는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황 대표는 당초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신설, 지소미아 종료 반대 등 세 가지를 내세웠지만, 그중에 가장 핵심은 선거법 개정안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에 당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현재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회의에서 다뤄질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전면적 반대 입장이다. 여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과 협상을 통해 선거법 개정안 통과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각 정당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안갯속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어 한국당을 제외한 상황에서는 타협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국회법에 따라 최대 60일간의 협상기간을 가지게 됐다. 만약 60일 안에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 개의되는 첫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의 접점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11월24일 황교안 대표가 단식 중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24일 황교안 대표가 단식 중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당 “선거법 개정안 철회만이 답”

한국당의 요구는 아예 선거법 개정안 철회다. 한때 당내에서 공수처법을 지렛대로 삼아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황 대표가 단식 끝에 입원하자 당내 강경기류가 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선거법 협상이 어려운 이유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있다. 한국당은 이 제도의 도입 자체에 대해 절대 반대 입장이다. 협상 여지를 아예 닫아두고 있는 셈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재 지역구 선거에서 1위만 당선자가 되는 이른바 ‘승자 독식’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자는 취지로 거대 정당보다는 군소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이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영남에서 상당히 약진한 민주당도 시뮬레이션 결과 의석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영남 등 특정 지역에서 강하고, 호남에서는 약세를 면치 못하는 한국당은 비례대표에서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하다. 조선일보가 11월28일 시뮬레이션 조사를 한 결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한국당 의석수가 적게는 4석에서 많게는 10석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이 결사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황 대표가 병원에 입원한 11월28일 패스트트랙 저지 의사를 거듭 피력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명분도 동력도 모두 사라진 낡은 탐욕”이라며 “불법 패스트트랙 폭거를 멈추고 공존과 대화의 정치를 복원하라. 칼을 내려놓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패스트트랙의 모든 단계가 불법이라 그런 부분을 걷어내야 진정한 협상이 된다”며 “여당이 청와대 뜻을 받들어 추진하는 것이라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 분위기도 강경으로 흐르고 있다. 11월27일 한국당이 국회에서 개최한 의원총회에서도 강경론이 대세였다. 이날 의총장에서는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의원직 총사퇴’까지 감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총사퇴 얘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반대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총사퇴가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서로 공유한 자리였다”고 전했다.

한때 한국당 내에서 대두됐던 협상론은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되면서 강경론에 묻혔다. 그러나 협상할 여지도 있다는 당내 의견이 소수지만 존재하긴 한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11월25일 황 대표가 단식 중인 천막을 찾아 “공수처 설치법을 민주당과 타협하고, 선거법을 막아내는 선에서 타협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주호영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선거법을 일방 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을 경우 당내에서 협상론을 제기할 움직임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협상의 여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與, ‘4+1 공조’ 본격 모색

반면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면 협상 여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협상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한국당과 협상은 시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협상 자체가 성립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야당과의 공조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한국당과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야당과 협상해 개정안을 손보는 쪽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우선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4+1’ 공조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4+1’이란 민주당 외에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을 의미한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를 필두로 한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변혁)는 제외됐다.

민주당은 기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 개정안의 원안인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을 ‘240(지역구)+60(비례)’ ‘250+50’ 등의 수정안으로 제시하고 절충점을 찾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수정안이 나온 이유는 원안인 ‘225+75’의 경우에는 정의당만 찬성하고 있어 사실상 본회의 통과가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원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할 경우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한국당이 저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회의 통과 가능성을 높이려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4+1’ 협의체에서는 지역구 의석을 3석만 줄이는 ‘250+50’안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호남 지역 의석이 많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원안에 반대한 호남계 정당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반대한다는 점이 변수이긴 하나 호남계 정당이 찬성해 준다면 최대 160석가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본회의 통과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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