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 “청와대 하명수사? 소설 같은 이야기”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2 10:00
  • 호수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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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당사자 황운하 대전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 직전 수사한 김기현 전 울산시장(자유한국당 소속)의 측근 사건이 정국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울산경찰청은 직권남용·뇌물수수 혐의로 김 전 시장 측근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울산지방검찰청은 올해 3월 이 사안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당시 울산지검은 90쪽이 넘는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수사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을 야기한 수사”라며 이례적으로 경찰 수사를 질타했다.

경찰의 사건 수사를 총괄한 인사는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이었던 황운하 현 대전지방경찰청장이다. 최근 이 사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경찰에 지시한 ‘정치적 하명수사’였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정국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김 전 시장은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후보에게 패했다. 한국당에서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의혹과 이 사건을 묶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 청장은 현재 명예퇴직을 신청한 상태다. 그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 사건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향후 거취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김 전 시장 사건이 불거진 11월27일 대전지방경찰청에서 황 청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날 그는 대전지방경찰청 기자실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찰청 본청에서 넘어온 첩보를 토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을 뿐이며, 청와대 하명 여부를 알지도 못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었다. 

그는 “검찰이 지난해 고소·고발된 사건을 이제야 수사에 착수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며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하명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어떤 고려 사항도 없이 수사에 임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진상 밝힐 수 있다면 국조도 얼마든지 환영”

오늘(27일) 하루 종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이 사건을 이제 서울중앙지검에서 다루게 됐다.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 외에 별도로 할 얘기는 없다. 중앙지검으로 사건이 넘어간 것은 불순한 의도라고 보진 않는다. 종결을 위한 절차 아니겠나. 지난해 한국당이 날 고발할 때부터 청와대와 관련된 의혹을 계속 제기해 왔다. 이것의 진위를 밝히려면 확인 절차는 당연히 밟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제기된 의혹을 왜 이제야 하는지는 좀 의문이고 유감이다. 그뿐이지, 진위를 밝히는 절차는 지금이라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의 하명수사란 의혹이 커지고 있는데.

“소설 같은 이야기다. 경찰청 본청을 통해 범죄첩보를 받았고, 이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을 뿐이다. 내가 확인할 수 있거나 아는 얘기는 그것이 전부다. 청와대와 경찰청 사이에 수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는지 여부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수사를 지시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는 울산시장이 아니라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에 대한 범죄첩보였다. 그리고 짐작하건대 청와대가 각종 범죄첩보를 검찰이나 경찰에 이첩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프로세스(과정)다. 통상적인 절차를 가지고 정치적인 의혹을 부추기려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검찰은 청와대와 경찰이 당시 한국당 소속 김 전 시장의 재선을 막기 위해 사실상 표적 수사를 했을 가능성을 살펴볼 예정이다. 검찰은 당시 황 청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김 전 시장의 비위 첩보를 넘겨받아 수사를 개시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물증과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청와대 민정실 반부패비서관에게 해당 첩보를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백 부원장은 11월28일 입장문을 내고 “일반 공무원 관련 비리 제보라면 당연히 반부패비서관실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확인이 필요한 첩보나 제보는 일선 수사기관에 이첩해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통례”라며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청와대는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관련 기관에 이관한다. 당연한 절차를 두고 하명수사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에서는 국정조사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난해 한국당이 날 고발할 때부터 국정조사뿐만 아니라 특검도 받을 수 있다고 계속 얘기해 왔다. 진상을 밝힐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이 사건은 울산지검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 이 사건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위에 대해 수사한 것이 아니라, 김 전 시장의 동생과 비서실장의 비위에 대한 수사였다. 그리고 검찰에 송치한 총 3건의 혐의 중 2건은 무혐의가 내려졌고, 후원금 문제는 불구속 기소됐다. 불기소 처분한 2건에 대해 울산경찰 지능수사대는 납득을 못 하고 있다. 그것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겠다고 결과를 내려놓고 억지로 짜맞췄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가지고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지적한다면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경찰이 정당하게 수사한 것을 가지고 검찰이 다른 의도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퇴직 후 선거 출마를 시사했는데.

“명예퇴직 신청 당시에는 선거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신청 이후 주변에서 물어 와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16일 이전에 퇴직이 완료돼야 한다. 12월초에 경찰 정기 인사가 있다. 그 이전에 가급적이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현재 수사가 진행되면 명예퇴직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꼭 명예퇴직만으로 공직 사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면직으로 그만둘 경우에도 공직 사퇴가 가능하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면 빠르게 결론을 내지 않겠는가.”

한국당과 김 전 시장 측에서는 공천을 대가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

 

“패스트트랙은 검찰 개혁 시작일 뿐”

그동안 ‘검찰 저격수’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경찰 경력 내내 검찰 문제를 직접 다뤘다. 최근 1심 판결이 난 김학의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않나.

“2013년 경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등장한 동영상을 가지고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당시 강력한 증거인 동영상을 가지고도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이 김 전 차관인지 확실치 않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공소시효가 지난 혐의들이 생겼다. 그런 이후 뒤늦게라도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여러 사건을 묶어 기소했지만 법리나 증거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 당시 경찰이 수집한 증거에 대해 검찰이 정상적으로 판단했다면 그런 결론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재직 동안 검찰과 여러 차례 갈등을 겪지 않았나.

“내가 직접 다룬 사건들 중에 유독 검찰과 마찰을 빚은 사건이 많긴 하다.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대립 내지는 충돌로 평가된 사건들은 거의 모두 내가 했던 사건들이다. 그런 마찰은 모두 수사권 독립 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법안이 올라가 있다.

“현재 개정안이나 공수처 설치 법안이 전부 만족스럽지는 않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검찰 개혁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후에 진행될 검찰 개혁 과제가 매우 많다.”

정부의 수사권 조정, 검찰 개혁 의지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의지는 매우 강력하다고 본다. 하지만 2년 반 동안 여러 장애물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때문에 늦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오히려 힘을 키워서 개혁에 저항하는 힘까지 커졌다. 검찰의 개혁 저항이 변수가 됐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권 출범 초기에 적폐청산과 병행해 과감하게 개혁작업을 했어야 했다. 적폐청산을 추진하느라 결과적으로 개혁이 늦어졌다.” 

경찰 생활 정리하며 책 발간…“검찰과의 전쟁 비화 담아”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명예퇴직을 신청하며 한 권의 책을 냈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란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황 청장은 경찰청 수사기획관과 수사구조개혁단장 등을 역임하며 경찰 내 대표적인 ‘검찰 저격수’로 꼽혀 왔다. 이번에 발간한 책은 황 청장이 경찰 재직 동안 다룬 사건 중 검찰과 대립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황 청장은 그동안 검찰과 대립한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2003년 다뤘던 ‘오다리 사건’을 꼽았다. 이 사건은 용산 지역에서 활동한 법조브로커(일명 ‘오다리’)가 서울중앙지검 서부지청 검사들과 유착돼 금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던 사건이었다.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황 청장은 오다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이후 검찰이 구속영장과 각종 압수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가 막혔다. 황 청장은 “결국 대검 감찰에서 금품을 받은 검사들이 확인돼 징계를 받았다. 검사를 수사하는 데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검사를 수사선상에 올렸던 사건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외에도 책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된 각종 사건의 뒷얘기들이 담겨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됐던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울산지방경찰청장 당시 수사해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고래고기 환부 사건’의 내용도 담겼다. 고래고기 사건의 경우에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과 함께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라 관심을 끌 만하다.

황 청장은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남은 개혁작업을 후배들이 이어서 잘해 주기를 당부했다. 황 청장은 “검찰 개혁과 수사권 독립도 중요한 문제지만, 신뢰받는 경찰을 위한 자체 개혁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도록 수사 역량을 높이고 신뢰받을 수 있는 경찰을 만드는 데 후배들이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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