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재취업으로 건강 챙기고 노후도 든든
  • 인도네시아 칠레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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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카타우 포스코에서 제2의 인생 꽃피우는 포스코 SV들

<글 싣는 순서>

‘K-스틸’ 매료된 인도네시아 “우리에게 제철신화 노하우를”

‘인도네시아에서 은퇴 후 제2인생 꽃피우는 포스코 퇴직자들

2017년 7월 직원들과 인근 산에 오른 김창만 크라카타우 포스코 슈퍼바이저(뒤편 맨 오른쪽) ⓒ김창만
2017년 7월 직원들과 인근 산에 오른 김창만 크라카타우 포스코 슈퍼바이저(뒤편 맨 오른쪽) ⓒ김창만

인도네시아 철강 역사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지만 기술력은 엄연히 다르다.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인 크라카타우 스틸(Krakatau Steel)은 최근 경영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후문이다. 철강경기 불황은 둘째치더라도 내수 시장 자체가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력도 아직은 세계 정상급 철강사들과 격차가 있다. 크라카타우 스틸이 생각한 것은 수준 높은 제철사의 손을 잡고 기술력을 얻는 것이었다. 그 파트너로 포스코가 선택됐다.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칠레곤 공장에는 89명의 슈퍼바이저(SuperVisor)가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정년퇴직한 후 현지 법인에 재취업된 사람들이다. 포스코는 현지 직원들을 가르치는 숙련된 제철 전문가에게 SV라는 호칭을 선사했는데, 89명의 SV 중 77명이 포스코에서 정년을 마쳤다.

 

89명 슈퍼바이저 중 77명 포스코 퇴직자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 크라카타우 포스코는 이들이 낯선 이국땅에서 잘 적응하도록 숙식문제에 신경을 썼다. 이들 모두 사내 기숙사에서 지내며, 대부분의 식사는 한식이 제공된다. 주말에는 가까운 산이나,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이곳 분위기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회사 근처로 찾아오거나 휴양지인 발리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이렇게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다보니, 동년배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한결 여유롭다.

퇴근 후 직원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는 이재만 크라카타우 포스코 슈퍼바이저(왼쪽 세 번째) ⓒ이재만
퇴근 후 직원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는 이재만 크라카타우 포스코 슈퍼바이저(왼쪽 세 번째) ⓒ이재만

1978년 23세의 나이로 포스코에 입사해 32년간 근무한 뒤 2010년 퇴직한 이원기 SV도 비슷한 경우다. 현재 크라카타우 포스코는 연간 300만 톤(조강 기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지 직원은 2223명, 한국인 직원은 150명이다. 입사 후 포항제철소 화성부에 근무하며 코크스 공장 전문가로 활동한 이원기 SV는 30여 년의 노하우를 칠레곤 제철소 설비 정상화에 쏟아 부었다. 결과는 대성공. 한발 더 나아가 그는 현지 직원들과 함께 코크스 오븐 설비를 개선에 노력해 오븐에서 발생하는 가스누출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성과를 거뒀다. 코크스 오븐이 위치한 곳은 평지보다 낮아 물이 고이면 악취가 난다. 나무를 심고 가꾼 결과, 현장은 작은 녹지공간으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그는 직원들 사이 한국말로 “사부님”이라 불린다.

 

"제철보국 가르치는 한국 사부님 좋아요"

이재만 SV는 현지 직원들과 틈만 나면 사우나 미팅을 갖는다. 2012년 칠레곤에 포스코와 크라카타우 스틸이 함께 공장을 세울 때 파견 나온 그가 일하는 곳은 소결공정이다. 철의 원료인 철광석은 땅에서 캐낸 다음 바로 용광로로 들어가지 않고 ‘소결’이라는 공정을 거친다. 소결은 들쭉날쭉한 철광석의 성분을 균일하게 만들어 용광로에 넣기 좋은 크기로 만드는 공정이다. 제철에 있어 초기 과정에 속한다.

2019년 4월 직원들과 풋살을 하고 있는 최종석 시험분석팀장(뒷줄 가운데)  ⓒ최종석
2019년 4월 직원들과 풋살을 하고 있는 최종석 시험분석팀장(뒷줄 가운데) ⓒ최종석

“카톡(휴대전화 메신저)으로 24시간 중 아무 때라도 연락하라고 했어요. 이 친구들 일부는 중국, 일본 철강회사가 일해 봤는데, 우리처럼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처음 봤나 봐요. 외국인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그는 요즘 현지 직원 육성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화합이 중요하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우나 미팅’이다.

 

낯선 사우나에서 함께 땀흘리며 신뢰 다져

무슬림 비중이 절대적으로 많기에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히잡을 쓴다. 남자 역시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다른 사람에게 상체를 보이는 것은 흔치 않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부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격의 없는 그의 모습에 이제는 ‘사우나 마니아’가 됐다.

이재만 SV가 강조하는 것은 ‘포스코웨이(POSCO WAY)’다.

“‘제철보국’이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수시로 강조합니다. 너희들이 인도네시아 철강의 미래라고 말이죠. 당연히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겠지만, 요즘은 제 말뜻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2019년 5월, 직원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석한 최종석 시험분석팀장(오른쪽 두번째) ⓒ최종석
2019년 5월, 직원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석한 최종석 시험분석팀장(오른쪽 두번째) ⓒ최종석

시험분석팀장인 최종석 SV에게는 최근 인도네시아 직원들의 자주 인생 상담을 요청해온다. “함께 일하는 인도네시아 직원이 며칠 전에는 ‘고민이 있다’고 해 이야기 나눴죠. 사귀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자친구쪽 종교가 이슬람인가 봐요. 개종해야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되겠죠. 그 친구는 종교가 기독교거든요.”

 

'포스코웨이' 인도네시아 현지에 뿌리 내리다

그는 요즘 결혼식 초청을 많이 받는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까운 친척들만 결혼식에 초대하는 게 관례다. 직원들에게 그가 그런 존재다. 제선부 코크스공장에서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창만 SV는 자주 직원들과 산에 오른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직장 문화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역시 흔치 않다. 최종석 SV는 “포스코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최상의 철강기업이 된 것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제철보국’(製鐵保國)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중년의 희망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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