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진 황교안, 더 노골화된 ‘친황(親黃) 체제’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6 13: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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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2기' 인선 뒷말 무성…박완수·주광덕 등 黃 친위조직 ‘공추위’ 출신 전면

“단식을 해서 그런지 황교안 대표가 확실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어찌 됐든 자기 뜻대로 당을 장악하려는 것 같다. 유승민 쪽(바른미래당 유승민계)과의 통합 시 당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라도 친정체제 구축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12월2일 당직 개편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1월28일 단식을 마친 후 나흘 만에 첫 일성으로 “국민의 명령을 받아 단식에 들어갔고, 국민의 성원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문재인 정부 3대 권력형 게이트 조사’와 ‘당 쇄신·보수 대통합’ 두 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한 영남권 의원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까지 경험해 보면 독해진다고 하던데, 황 대표가 노숙 단식 후 확실히 생각이 바뀐 것 같다”면서 앞으로 대여(對與) 투쟁이나 당 관리가 더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황 대표는 12월2일 “그동안 너무 태만했다고 반성한다. 과감한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을 이겨내겠다. 필요하다면 읍참마속(泣斬馬謖)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6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중앙당 당직자 35명이 일괄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황 대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이나마 감지됐다. 그러고는 곧장 인사를 내 사무총장에 박완수(초선·경남 창원 의창), 전략기획부총장엔 송언석(초선·경북 김천) 의원을 임명했다. 비서실장엔 김명연(재선·경기 안산 단원갑), 대변인엔 MBC 기자 출신인 박용찬 서울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을 발탁했다. 인재영입위원장으론 염동열 의원(재선·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성동규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가 내정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4일 국회 나경원 원내대표실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4일 국회 나경원 원내대표실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공천,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 드러내

표면적으로 보면 핵심 당직자의 정치 성향은 강경보수에서 중도보수 쪽으로 옮겨간 모습이다. 박완수 의원을 요직인 사무총장에 발탁한 것에서 이러한 생각이 읽힌다. 박 의원은 초선이지만, 황 대표의 정치권 입문 과정에 깊숙이 개입된 인물이다. 세 차례나 창원시장에 당선됐으며 이 때문에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경남지사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됐다. 한 한국당 재선 의원은 “한선교 총장 시절부터 황 대표에게 가는 모든 기획안은 사무총장 손을 거쳤는데, 상당수 혁신안이 거기서 컷오프돼 실제로 대표에게까지 보고되지 않았다”면서 “사무총장에게 많이 의존하는 황 대표로선 당내 이러한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박 의원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시장으로 활동한 창원은 노동계의 입김이 강한 곳이다. 지역으로는 PK(부산·경남)로 분류되지만, 진보 색채도 비교적 강하다. 2016년 총선에선 정의당 고(故) 노회찬 의원이 창원시 성산구에서 당선됐고, 올해 재보선에서도 이 지역에서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당선됐다. 조대원 한국당 경기 고양정 당협위원장도 “전임 박맹우 총장이 11월14일 ‘2020 총선 디자인 워크숍’에서 한 발언을 보라. 이날 박 총장은 ‘내년 총선이 사회주의와의 전쟁이라는 한국당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 청년의 발언을 듣고는 ‘조금 충격받았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한국당의 현주소”라고 꼬집었다.

이번 당직자 인선에서 또 주목받는 이는 전략기획본부장에 임명된 주광덕 의원이다. 직전까지 전략기획업무는 사무부총장인 추경호 의원이 맡아왔지만, 황 대표는 이번에 당 특별기구로 전략기획본부를 신설하면서 책임자로 주 의원을 앉혔다. 당내에서는 주 의원 임명에 대해 “조국 사태 과정에서 대여 공세에 적극 나선 것을 황 대표가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또 황 대표가 당초 주 의원을 사무총장에 선임하려 했지만, 경기도 남양주에 지역구를 두고 있어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전략기획본부장으로 뽑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완수·주광덕 의원 모두 ‘공명선거추진특별위원회’(공추위)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공추위는 황 대표가 당내에 비밀리에 꾸린 친위조직으로 박완수·주광덕·정점식 의원을 포함한 현역 의원 5명과 당 외곽 인사 5명 등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요직에 두 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당 내에서 가장 파워가 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된 염동열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홍준표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은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 회장으로 활동한 것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국당으로선 내년 총선에서 2030 세대의 표심을 적극 공략해야 하는데 이 방면에 염 의원이 나름 일가견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략기획부총장인 송언석 의원은 기재부 차관 출신으로 정치색이 옅다. 김명연 의원이 비서실장에 기용된 것은 재선 의원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이헌승(부산진을)·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의원 등 재선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뽑았다. 3선 이상은 당내에서 중진으로 분류되는 만큼 정무 감각을 갖춘 참모로 재선 의원이 적당하다는 판단이 앞섰던 것으로 분석된다. 더군다나 김 의원은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어 영남권 독식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여의도연구원장에 황 대표 측근인 성동규 교수를 뽑은 것은 공천을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 교수는 지난 2월 황 대표의 당 대표 경선 당시 황교안 캠프 자문 교수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한국당 인사는 공천 과정에서 당내 잡음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박완수 의원은 2014년 경남지사 경선을 앞두고 홍준표 전 대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악연’이 있다. 당시 홍 전 대표는 현역 경남지사였다. 상황이 역전돼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홍 전 대표의 출마 요구를 박 의원이 거절한 바 있다. 12월2일 신임 당직자 발표 후 홍 전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쇄신(刷新)이 아니라 쇄악(刷惡)”이라고 혹평한 것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조직과 예산을 관리하고 사무처를 관장하는 사무총장은 그동안 3선 이상 중진급 의원이 맡는 게 관례였기에 초선인 박 의원의 임명은 더욱 의미가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홍준표·김세연 등 당내 비판세력 차단

당 해체를 공식 요구한 김세연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서 물러나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인천시에 지역구를 둔 한국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황 대표로선 껄끄러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령대는 낮아졌지만, 고시 출신을 선호하는 황 대표의 인사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완수·송언석 의원은 행시, 주광덕 의원은 사시 출신이다. 신상진 한국당 의원은 “만점짜리 인사는 아니지만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겠다는 황 대표의 의지가 읽히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이번 인사를 두고 당내 잡음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원내사령탑인 나경원 의원이 교체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서다. 한국당 내에서 황교안-나경원 ‘투톱 체제’가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2월3일 한국당 최고위가 나경원 원내대표 불가를 결정하면서 이는 표면화됐다. 이달 9일로 1년 임기가 끝나는 나 의원은 당초 의원총회를 소집해 재신임 여부를 물으려 했지만, 당 지도부는 이를 거부했다. 최고위의 이번 결정에는 황 대표의 강력한 의사가 반영됐다는 게 정설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최고위는 만장일치로 나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 임기는 1년이지만 국회의원 잔여 임기가 6개월 이내로 남았을 때는 의원총회 추인으로 연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나 의원이 20대 국회의원의 임기(5월29일)가 끝날 때까지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었다.

당 안팎에서는 나 의원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무력 충돌에 가담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등 여러 안건에서 손발이 맞지 않았으며, 서울시당 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놓고 두 사람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이번에 표면화됐다고 본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의 나경원 원내대표 스타일에 황 대표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12월4일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나경원 원내대표 연임 불가) 규정에 대해서는 내가 자의적으로 한 게 아니라 당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고 밝혔다.

 

원외 당 대표-원내대표 체제에서 갈등은 불가피?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12월4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화합을 못 하고 이게 뭐냐. 20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날 정 의원의 발언은 전날 최고위가 나경원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도부에 대한 비난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총에서도 터져 나왔다. 김태흠 의원은 비공개회의 전 공개발언을 통해 “어제(12월3일) 최고위가 의결한 내용(연임 불가)은 유감스럽고 개탄스럽다”며 “연임이나 경선 결정은 의원총회에 권한이 있는데 너무나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당내 갈등의 발단은 각 정당 당헌·당규에 관련 규정이 명확하게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한국당의 경우,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1년으로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해임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이 “원내대표의 선출과 임기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의원총회에만 있다”며 “의원총회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위가 나서서 임기 연장을 불허한 것은 월권행위”라고 비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의 원내대표 역할을 했던 과거 ‘원내총무’는 구조상 지금의 당 대표에 해당하는 총재가 직접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분란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제아무리 당 대표라 하더라도 원외일 경우 의총에 참여할 수 없다. 황 대표와 마찬가지로 역시 원외 당 대표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역시 오신환 원내대표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윤리위에서 ‘변화와혁신’(가칭) 소속으로 활동하는 오신환 원내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결정을 내렸지만 오 원내대표 측은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 결정과 무관하다”며 맞서고 있다.

현행 국회법에는 ‘교섭단체대표의원(원내대표)은 ‘국회법’상의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당의 대표와는 구분된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처럼 원외 인사가 당 대표를 맡고 있을 경우 원내대표와의 이견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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