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확산의 첨병, CJ ENM의 위기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1 10: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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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으로 이미지 타격
마마 2019 日 나고야 단독 개최에도 뒷말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은 1995년 3월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삼성에서 분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이 회장은 CJ의 차세대 먹거리로 문화·콘텐츠 사업을 점찍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 등이 설립한 드림웍스에 대한 투자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스필버그는 한국의 두 젊은 경영자에게 적지 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CJ는 드림웍스의 지분 30%를 3억 달러에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CJ그룹은 식품회사에서 미디테인먼트(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급속히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했고, 1997년 영화 제작 사업에 본격 나섰다. 《슈퍼스타K》 시리즈로 유명한 음악 전문 방송채널 엠넷(Mnet)도 그때 인수했다. 1998년에는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를 오픈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IMF 외환위기로 먹구름이 짙게 드리울 때였다. 대우그룹을 포함한 쟁쟁한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09년에는 오리온 계열 PP(프로그램 공급업자) 온미디어와 게임업체인 넷마블까지 인수했다.

엠넷(Mnet) 《프로듀스X 101》 안준영 PD와 관계자들이 생방송 투표 조작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뒤 11월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엠넷(Mnet) 《프로듀스X 101》 안준영 PD와 관계자들이 생방송 투표 조작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뒤 11월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CJ, 미디테인먼트 업계 ‘알파이자 오메가’

이 회장은 2011년 이들 회사를 하나로 묶어 CJ E&M을 설립했다. 2018년에는 계열사인 CJ오쇼핑과 합병한 CJ ENM을 탄생시켰다. 미디어와 영화, 음악, 커머스 등을 아우르는 공룡 콘텐츠 기업이 국내에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은 6조7550억원, 매출은 3조422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4조7813억원에 이를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CJ ENM의 성장은 단순한 매출 증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CJ ENM은 현재 한류 확산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는 투자와 제작, 배급, 상영을 아우르는 업계 공룡으로 성장했다. 2000년 전후로 3000억원대 수준이던 국내 영화산업은 CJ그룹 진출 이후 세계 5위 수준인 16억 달러(약 2조원)까지 확대됐다. 케이블TV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1998》과 《도깨비》 《윤식당》 등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2012년 미국에서 시작한 한류 축제 ‘케이콘(KCON)’은 현재 동남아와 일본, 유럽, 남미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누적 관객만 100만 명에 이른다. 마마(MAMA)는 아시아 최고의 음악축제로 자리 잡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을 통해 워너원과 I.O.I, 아이즈원 등 글로벌 아이돌그룹이 탄생했다. 미디테인먼트 업계에서 CJ는 알파이자 오메가가 된 것이다.

그동안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CJ ENM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X 101》이 우선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월 엠넷이 생방송 투표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경찰은 7월부터 4차례에 걸쳐 엠넷 사무실과 연예기획사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안준영 PD와 김용범 CP(총괄 프로듀서) 등이 업무방해와 사기,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CJ ENM 측은 “《프로듀스 101》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직 수사를 받지 않은 나머지 시즌의 투표 조작 의혹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논란이 확대 재생산됐다. 검찰은 12월3일 이 프로그램의 모든 시즌이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제작진 8명을 재판에 넘긴 상태여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2월4일 일본 나고야에서 막을 올린 ‘마마 2019’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그동안 마마 공연은 홍콩과 마카오, 싱가포르 등에서 분산 개최됐다. 하지만 마지막 시상식은 항상 홍콩에서 진행됐다. 올해의 경우 홍콩 시위가 격화되면서 일본 나고야가 단독 개최 장소로 일찌감치 확정된 상태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하필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No Japan’ 운동이 정점에 이를 때 나고야 단독 개최가 발표되면서 뒷말이 나온 것이다.

서울 마포 상암동에 있는 CJ ENM 사옥 ⓒ 시사저널 포토
서울 마포 상암동에 있는 CJ ENM 사옥 ⓒ 시사저널 포토

이미경 부회장 빈자리 컸나

CJ그룹 측은 “마마 2019의 나고야 개최는 문화적인 교류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홍콩에 시상식 장소를 미리 대관했다. 그런데 홍콩 시위가 격화돼 어쩔 수 없이 위약금을 물고 취소해야 했다”며 “사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각에서 일본 단독 개최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며 “마마는 문화적 교류로 한·일 양국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나고야 공연을 규탄하는 글이 올라왔을 정도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 불매운동 초기에 CJ제일제당은 큰 곤욕을 치렀다. 회사의 베스트셀러 상품인 햇반의 첨가물이 일본 수입품으로 알려지면서 불매운동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렸다”며 “이런 배경을 잘 알고 있는 CJ가, 그것도 이 민감한 시기에 나고야 단독 개최를 왜 강행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미경 부회장의 빈자리가 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콘텐츠 한류를 주도했던 인사다. 탁월한 인맥을 바탕으로 ‘CJ=문화 대통령’이란 성공신화를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1993년 CJ가 드림웍스 대주주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부회장의 영화계 인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권 때인 2014년 10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5년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CJ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우 CJ가 수입할 영화의 필름 프린트를 구해 미리 관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송 채널도 수시로 모니터링한다”며 “하지만 박근혜 정권 때 거의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에 따른 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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