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눈앞에 두고도 끝나지 않는 영국의 혼돈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2 14: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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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야당 “브렉시트가 진정 국익 위한 선택인지 의심”

세 차례 연기를 거듭하던 브렉시트의 시한이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브렉시트를 화두로 한 올 한 해 영국 정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세 번의 극적인 브렉시트 시행 일자 연기, 불신임 투표로 인한 총리 경질, 신임 총리 제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판을 짜기 위한 조기 총선 시행까지. 그러나 무수히 많은 브렉시트 변수들이 거듭 등장하고 있어 영국의 향후 행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비록 2020년 1월31일로 브렉시트가 예정되어 있지만, 12월 중에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협상을 종결 짓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왔다. 현 의회에서 여당인 보수당이 중심이 되는 브렉시트 찬성파와 야당 노동당 중심의 반대파가 각각 차지하고 있는 의석수는 비슷하다. 이로 인해 투표를 통한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에 늘 난항을 겪어왔으며, 결국 브렉시트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존슨 총리는 기존 의석수에 변화를 주어 교착 상태에 빠진 브렉시트 합의 문제를 타개하고자 조기 총선 법안을 발의했다. 총선 결과에 따라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문 통과부터 브렉시트 국민 재투표에 이르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가능해진다. 현재 모든 정당들이 총선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새해 1월 발효 예정인 브렉시트 법안은 일단 보류 중이다.

8월25일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만나 브렉시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 AP 연합
8월25일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만나 브렉시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 AP 연합

각 정당마다 입장 엇갈려

브렉시트를 주도하는 존슨 총리와 그가 속한 보수당은 “곧 죽어도” 유럽연합을 탈퇴할 것임을 단언하며 브렉시트 시행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민주통합당(Democratic Union Party)도 브렉시트 찬성에는 보수당과 뜻을 함께하지만, 존슨 총리의 수정된 브렉시트 합의안에는 이견을 가지고 있다.

반면 대표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s)은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특히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재협상 및 브렉시트 국민 재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재투표 결과가 탈퇴일 경우에도 현재 논의되는 ‘노딜’ 브렉시트는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유럽연합과 긴밀한 단일시장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당과 노동당에 이어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국민당(SNP·Scottish National Party)도 유럽연합 잔류에 찬성하며 브렉시트 국민 재투표를 위해 힘쓰고 있다.

현 총리를 비롯한 여당은 최대한 빨리 브렉시트를 실행하고자 한다. 여당은 2020년 12월31일까지 주어진 조정 기간 동안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을 맺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기간 FTA 협정에 실패하고 노딜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될 경우, 2021년부터는 세계무역기구(WTO·World Trade Organisation) 규정에 따르게 된다. 따라서 존슨 총리와 보수당, 그리고 내각은 브렉시트가 반드시 진행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브렉시트 이후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무역 또는 경제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은 특히 미국과 더욱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하고자 노력 중이다. 미국은 개별 국가로는 영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미국에 대한 수출액은 약 1182억 파운드(약 183조원)로 유럽연합 내 최대 무역 상대국인 독일에 대한 수출액인 554억 파운드(약 86조원)의 두 배 이상이다. 따라서 유럽연합 소속 국가와의 경제교역 시장 판도에 이변이 예상되는 만큼, 유럽연합과의 FTA 준비와 함께 비유럽 주요 무역국들과의 관계 유지 및 개선에 이전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미국과의 교역 준비는 순탄치만은 않다. 최근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은 미국이 영국의 국영 의료보험제도인 NHS를 ‘구매’하기 위한 협상을 2017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해 왔다는 내용의 증거 자료를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에 자국 의약품에 대해 더 긴 특허 유지 기간과 ‘시장 가격 보장’을 요구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제약 및 의료 분야의 시장 불안정과 의약품의 가격 급변이 우려되는 속에서, 만약 이와 같은 미국의 요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은 영국에 독자적인 규제 기준을 갖출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기존에 준수하고 있던 유럽 기준을 철폐하고 미국의 기준을 반영해 달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의약품에 대한 요구 이외에도 기후변화 논의 금지, 염소 세척 미국산 닭 유통 허용, 높은 당 함량 식품에 대한 별도 표기 철회 등 현 영국 정책하에 금지되어 있거나 이에 반하는 요구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코빈 대표는 해당 문서의 내용을 비판하며, 과연 브렉시트가 진정으로 영국의 국익을 위한 선택인지 다시 고심해 볼 것을 재차 강조했다.

 

유럽연합 “브렉시트 논의 수년 더 걸릴 수도”

12월3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존슨 총리는 영국 내 기업들이 노딜 브렉시트를 준비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상당히 괜찮은 딜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무탈하게 유럽연합을 탈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브렉시트 전환 기간은 2020년 말까지로 합의되어 있다. 그러나 존슨 총리와 여당은 조정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주어진 기한 내에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켜 하루빨리 브렉시트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존슨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탈퇴해 WTO의 규정을 따르게 될지라도 조정 기간을 연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과연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이 순조롭게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영국 내 여론과 싱크탱크들에 따르면 현재 예정되어 있는 1년의 기간으로는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와 유럽연합과의 새로운 경제협력안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12월4일 유출된 유럽연합 내부 문건에 따르면 유럽연합 각국의 정상들은 이번 영국 총선 이후 잠재적으로 브렉시트 논의를 수년간 더 지속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영국 총선일인 12월12일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향후 계획을 확정 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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