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6465]“고령 장애인 문제, 정책 아닌 정치가 해결해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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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동범 한국장총 사무총장 “정부, 장애인 고령화 문제 너무 한가롭게 봐”

‘늘어난 노인’은 전 세계의 고민거리다. 유엔(UN)에서는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고령인구가 14.9%인 고령사회다. 그런데 만약 이 비율이 50%로 치솟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찔한 이 가정을 이미 국내 장애계는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등록 장애인 수(258만5876명) 대비 만 65세 이상 장애인 수(120만6482명)의 비율은 약 46.7%. 즉 우리나라 장애인 2명 중 1명은 노인이다. ‘초고령사회’를 넘어 ‘초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셈이다. 

정치권과 국회는 고령사회 대비에 국가적 역량을 쏟고 있지만 유독 고령 장애인 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다. 고령 장애인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처방전은 보이지 않는다. 중증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8시간 이상 제공받던 지원 서비스 시간이 하루 4시간 이하로 줄어드는 ‘복지 절벽’을 맞이하는 게 대표 사례다. 고령 장애인들은 문제 해결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지만 이들의 호소는 현실을 바꿀 힘센 정치인들에게까지는 닿지 못하고 있다. 

꼬인 실타래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은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에 시사저널 《사선(死線) 6465》 기획취재팀은 오랜 기간 장애계를 대표해온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 사무총장을 찾았다. 김 사무총장은 “장애인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장애 관련 복지 정책을 ‘지출’ 아닌 ‘투자’라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이 12월6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이 12월6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장애인 고령화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국가는 우리가 고령사회로 진입했을 때 고민했다. 하지만 장애인 고령화 문제는 어떤가. 특색 있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고령 장애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와 같은 고민은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청년도 많은데 어떻게 고령 장애인까지 걱정할 수 있냐’는 반발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14%의 논쟁’이다. 우린 ‘절반의 문제’다. 정부가 장애인 고령화 문제를 너무 한가롭게 보고 있다.”

고령 장애인 문제가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인 정책을 우선했던 정부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장애 문제를 ‘메인(main)’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 주류화’가 중요하다. 우리가 얘기하는 ‘우선해서 보라’는 주문은 다른 문제보다 먼저 봐달라는 게 아니다. 일반 문제에 꼭 껴서 같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국가의 모든 정책 속에서 장애 문제가 반드시 고려되는 문제가 돼야 한다. 과거보다는 발전했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고령 장애인들은 만 65세가 돼 지원시간이 반 토막 나는 걸 ‘현대판 고려장’이라 부르더라. 

“제도의 모순이다. 요보호 대상자를 나라가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태생은 노인 장기요양제도와 같다. 문제는 지원 시간의 차이다. 활동지원서비스의 시간이 더 길다보니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는 순간 급격한 ‘복지 절벽’에 마주한다. 정부는 이를 장애인들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제해결을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장애인이 직접 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 장기요양제도 중 받을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만 복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고령 장애인들이 ‘복지 연착륙’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주장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에서 노인 장기요양제도로 넘어갈 때 단번에 지원 시간을 줄이지 말고, 연차적으로 시간을 줄여나가라는 주문이다. 활동지원서비스 덕에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루 지원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부가 이 문제를 무조건 방치하고 귀를 막기에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많다.”

활동지원서비스라는 복지를 모르는 고령 장애인도 많더라.

“대부분의 복지법이 그렇지만 당사자가 직접 찾아봐야 한다. 정보가 부재하니까 있어도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사각지대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가 나서서 장애 문제를 관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서비스센터 같은 걸 만들어 거기서 어떤 혜택이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한국의 복지는 신청주의다. 신청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장애인 복지 제도를 넓혀가는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경비가 아니다. 투자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이 11월15일 오후 국회 앞에서 정치권에 장애인 관련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2020년 예산 쟁취 국회 담벼락 넘기 전국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이 11월15일 오후 국회 앞에서 정치권에 장애인 관련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2020년 예산 쟁취 국회 담벼락 넘기 전국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우리나라의 현행 장애인 관련법을 평가한다면.

“우리나라 법? 나쁘지 않다. 문제는 법은 있는데 장애인들이 그 법의 혜택을 체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큰 그림은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구멍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법제화 이후 후속 작업들이 더 힘들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정치권이 응답해야 할 텐데.

“여태껏 정부는 장애인을 정책의 대상으로 봐왔다. 그러나 장애문제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장총은 장애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왔다. 총선과 대선 등을 앞두고 연대를 만들어서 공약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후보를 내는 식이다. 그런데 정당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더라.”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것인가.

“정당이 단계적 플랜을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고 장애계와 머리를 맞대면서 그 계층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장애계에 일관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장애문제에 대한 이해도부터 굉장히 낮다. 선의를 가진 정치인도 정작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모른다. ‘복지사회 만들겠다’ ‘함께 사는 사회 만들겠다’ 이런 구호 속에 장애인 정책이 다 포함돼 있다고 한다. 결국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결국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21대 국회에선 장애인 비례대표를 만들어서 장애인을 대변해줄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20대 국회에는 장애인 비례대표가 0명이었다. 그 문제가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장애 관련법이 제정된 게 실제 하나도 없다. 장애인 의원이 있었다면 동료 의원이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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