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인기 원작이 능사는 아니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4 14: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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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동》의 장단점 분석…웹툰 원작의 영상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12월18일 개봉하는 《시동》은 시동 안 걸리는 인생, 버티며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그린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엄마와 갈등을 겪던 택일(박정민)이 우연히 군산에 가고, 택일의 절친한 친구 상필(정해인)은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사회로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작은 2014년부터 포털사이트 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 영화는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등을 캐스팅하며 화제를 모았다. 웹툰 원작의 영상화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신과 함께》 시리즈처럼 값진 성과를 이뤄낸 경우도 있고, 흥행에 처참히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상 작품으로 이어지는 시도는 매해 꾸준하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보다 기획 개발이나 초반 인지도 면에서 리스크가 적다는 강점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의 화제성이 무조건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시동》에서는 그 장단점이 모두 보인다.

놀라운 싱크로율이다. 《시동》의 포스터가 공개되자마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다. 가출한 택일이 우연히 군산 장품반점에 배달원으로 취업하고, 그곳에서 만나 함께 지내는 주방장 거석이형은 웹툰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다. 거대한 풍채나 험악한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발머리, 핑크색 티셔츠와 도트 무늬 바지라는 기이한 조합. 원작 팬들의 관심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과연 누가 소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포스터에 웹툰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한 마동석이 등장하는 순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반갑지만…

이뿐이 아니다. 샛노란 머리의 택일로 분한 박정민, 상필 역의 정해인, 틈만 나면 택일에게 스파이크를 날리는 배구 선수 출신 엄마 정혜 역의 염정아, 택일과 자꾸만 얽히는 빨간머리 소녀 경주 역의 최성은 등등 모든 배우들이 맞춤옷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긴 마찬가지다.

웹툰이 만화라는 특성과 유저들이 보는 방식(스크롤)을 합쳐 재미를 추구하고 상상력을 펼치는 장르라면, 영화는 모든 것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는 실감을 남다르게 전하는 장르다. 캐릭터뿐 아니라 기택과 거석이형이 투덕거리며 정을 쌓은 장품반점 등의 공간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순간의 재미는 원작 팬들에게 작지 않은 선물이다.

캐릭터는 웹툰 원작 작품들의 강점이기도 하다. 워낙 개성이 충만하다 보니,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인물들이다. 보통 영상화 과정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작의 묘사를 살리는 게 대부분이다. 《시동》 역시 원작의 특징이었던 캐릭터 묘사, 대사 등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공간 배경이 원주에서 군산으로 달라진 것과 몇 가지 디테일들은 바뀌었지만 대부분 원작을 따랐다.

《시동》의 인물들은 소시민이다.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처럼 보인다. 집을 나와 방황하는 택일이나 경주 같은 청춘들은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던져져 악으로 깡으로 매일을 버텨 나간다. 대부분 세상에 얻어맞는 역할을 담당하곤 하지만, 때론 역으로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괴롭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악덕 고리대금업에 뛰어들게 된 상필의 경우가 그렇다. 정혜는 아들 택일의 뒷바라지를 위해 작은 가게를 열지만 그곳은 곧 철거되고 말 재개발 건물이다.

영화 《시동》의 한 장면 ⓒ (주)NEW
영화 《시동》의 한 장면 ⓒ (주)NEW

원작의 재미가 영화의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원작에는 일상의 비정한 그늘들, 그럼에도 반짝이는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힘이 있다. 《시동》은 그 비범한 관찰력을 옮겨오고자 시도한다. 다만 배우들이 구현한 각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는 것 외에 영화만의 매력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러 편에 걸쳐 각 인물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원작의 구성을 100분가량의 시간에 합쳐 넣다 보니, 단발의 에피소드들을 나열한 데 그치고 마는 인상이 짙다.

가출, 사채, 재개발 등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통해 여러 사회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 배경으로만 소화되는 데 그친다. 웹툰 특유의 과장된 묘사 역시 스크린으로 옮겨왔을 때 자연스러운 웃음을 부르기보다는 이질감만 부추길 뿐이다. 캐릭터들의 싱크로율에서 오는 짜릿함은 잠시, 인물들을 향한 애정은 쉬이 커지지 않는다.

한 주 앞서 개봉한 《아내를 죽였다》는 문제점이 훨씬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이 영화 역시 포털사이트 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희나리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친구와 술을 마신 뒤 필름이 끊긴 정호(이시언)가 별거 중이던 아내 미영(왕지혜)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스스로 진실을 파헤쳐 가는 스릴러다. 설정 자체는 흥미를 자아내지만, 영화 자체는 한없이 긴장이 떨어진다. 촘촘한 복선, 적당한 속도감, 확실한 몰입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범인을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이야기임에도 허술한 추적의 과정을 좇다 보면 점차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정도다.

10부작 단편 원작을 장편영화로 늘린 모양새는 이래저래 버거워 보인다. 전개에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노래방 도우미, 집단 성폭행 등의 설정은 시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작품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나름의 메시지를 주입하다시피 하는 결말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원작의 기발한 설정, 이미 구조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 외에 이 영화만이 고민하고 노력해 얻은 부분이 무엇인지는 알아채기 어렵다.

인기 원작을 영상화할 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어쩌면 명확하다. 무엇을 ‘영화적으로’ 차별화해 보여줄 것인가. 원작이 담지 못한 무엇을 더해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 2000년대가 낳은 새로운 플랫폼인 웹툰과 영화는 사이좋은 동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유의미하게 이야기되는 작품은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다.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플랫폼을 바꾸어도 여전히 유의미한 이야기인가. 한 번쯤 고심해야 할 문제다.

 

꾸준히 이어지는 웹툰 원작 작품들

‘주X말의 영화’는 웹툰 작가 주호민과 이말년이 자신들의 작품으로 영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선 공개’와 TV ‘후 편성’으로 유통되는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식을 시험한다. 이말년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잠은행》은 유튜브 MBCentertainment 채널을 통해 선 공개됐으며, 지난 12월7일 토요일 밤 TV에서 방영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주인공 성재(박희순)가 야근 도중 잠이 들고, 잠은행장(양동근)으로부터 잠을 대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X말의 영화’의 시도는 웹툰 원작 영상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내년 1월 개봉하는 손재곤 감독의 신작 《해치지 않아》도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가 위기의 동물원 ‘동산파크’의 새 원장이 되면서 직원들에게 동물로 위장근무를 하자는 제안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코미디다. 안재홍, 강소라, 박영규 등이 주연을 맡았다. 네이버웹툰의 자회사로 오리지널 웹툰을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로 제작하는 ‘스튜디오N’은 내년 상반기 넷플릭스와 손잡고 《스위트홈》을 선보인다.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이 이사 간 아파트에서 겪는 기이한 일들을 그린다. 《도깨비》 이응복 PD가 메가폰을 잡고 현재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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