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이 승소해도 음원 사재기는 없어지지 않을 것”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8 14: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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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사재기 브로커, 보이스피싱보다 잡기 힘든 구조’”

음원 차트 하루 100위권 진입은 8800만원, 50위권은 2억5000만원. 블락비 멤버 박경의 ‘실명 저격’으로 촉발된 음원 사재기 논란은 구체적인 사재기 ‘견적’과 관계자들의 추가 증언까지 등장하면서 더욱 불붙고 있다. 가요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재기 의혹이 제대로 공론화된 지금이야말로 차트를 좌우해 온 ‘검은 손’의 실체를 밝힐 적기라는 대중의 기대 또한 커지고 있다. 방송에서, 거리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노래가 하루아침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발견되는 이 ‘의문의 현상’은 이번 기회에 근절될 수 있을까.

블락비 멤버 박경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언급된 가수들은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현재 글은 삭제된 상태다. ⓒ 연합뉴스

“제안 거절한 유명 가수들 폭로 많았다”

사재기 의혹이 조심스레 제기되던 2012년 무렵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고발해 온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는 “그럼에도 음원 사재기 수법은 더욱 성행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12월11일 시사저널과 만난 김작가는 지금 사태의 파급력이 향후 확실한 근절과 처벌로까지 이어질 거란 기대에 줄곧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특정 음원 사이트 차트에 의존적인 지금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박경이 승소하고 상대 가수가 처벌을 받는다 한들 바뀌는 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작가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아이돌 팬덤 때문이었다. “음악을 듣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도 언제부턴가 차트 100위권에 아는 노래나 가수가 스무 명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그 무렵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기계에 의한 음원 사재기 의혹을 뒷받침하는, CSI 수준의 정교한 데이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차트는 아이돌 팬들의 놀이터 아닌가. 직접 휴대폰·노트북 다 동원해 손으로 열심히 스트리밍을 돌리는데, 어느 날 놀이터를 흐리는 분탕 종자들이 나타난 거다.”

김작가는 몇 년간 계속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그간 조금도 시정되지 못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수사당국이 이 문제를 ‘잡범’ 수준으로 치부해 왔다는 것과 다량의 아이디를 돌리는 ‘공장’을 적발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논란은 크지만 사실 이게 경범죄에 불과하다. 형량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니까 검찰 압수수색을 하거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하는 등 크게 움직일 명분이 없다. 이들도 그냥 잡범이라 생각해 온 것 같다. 또 하나, 공장으로 불리는 장소가 그냥 조그만 사무실이다. 이전에는 폐업한 지방 PC방에서 여러 PC로 돌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필요한 공간이 더 줄었다. 게다가 대부분 중국에 있다.”

그는 사재기 공장이 보이스피싱 업체보다 더 찾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보이스피싱 업체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한 기록이 남고, 피해자가 한국에서 출금을 하는 등 흔적이 남는데, 사재기는 범죄에 공모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계약 자체가 아주 내밀하게 이뤄져 알아내기가 힘들다”.

공장은 어떻게 가동되기에 순식간에 차트를 좌지우지하는 걸까. 김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낡고 작은 사무실에 값싼 스마트폰 수백 대를 구비해 놓고 온종일 음원 하나를 반복 재생시킨다. 폰 하나로 30~50개의 아이디를 제어할 수 있도록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순위가 조금씩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 끝. 이렇게 일을 해 주고 한 번에 수억원을 받는 큰 브로커 업체는 현재 3~4개로 추정된다고 김작가는 말한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브로커들은 가수 또는 제작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나.

“브로커들은 아마 엔터업계에 잠깐 발을 담갔거나 인맥이 좀 있는 사람들일 거다. 한두 다리 건너 누가 데뷔한다, 신곡 나온다 소식을 듣고 접근해 ‘일주일 동안 50위권’ ‘몇 시간 동안 30위권’이라며 조건과 금액을 제시한다. 오케이를 받으면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직접 들은 사례나 의심 가던 정황이 있었나.

“차트 진입한 음원들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떠올라야 한다. 아이돌이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거나, 헤이즈 같은 전형적인 음원 강자이거나. 이런 노래들은 또 길에서든 카페에서든 자주 들린다. 그런데 사재기 의혹의 음원들은 이런 외부 요인이 없다. 차트인(IN) 한 홍대 유명 인디밴드라는데, 홍대에서 공연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제안을 받았다가 거절한 이들의 폭로도 내부적으로 꽤 있었다. 예를 들어 브라운아이드소울과 같은 팀들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재기 의혹을 받는 음악들이 사실 굉장히 후지다.”

 

“음원 사이트, 차트 권력 놓을 생각 없어”

최근 5년 새 음원 사재기 의혹이 두 차례 공론화되면서 브로커들의 수법은 더욱 진화했다. “예전엔 꼬리를 잡기가 비교적 쉬웠다. 모든 아이디에는 IP가 있잖나. 특정 지역을 알게 해 주는. 불법을 저지르는 아이디마다 알파벳과 숫자 조합이 유사하고 IP도 비슷해 티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VPN(가상사설망)을 돌려서 하나하나 IP를 다르게 만든다”. 김작가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혹 적발됐을 경우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교묘히 만들어놓기도 했다.

사재기 브로커들과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몇몇 페이스북 페이지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 페이스북 내 굵직한 곡 바이럴 마케팅 페이지가 한 4~5곳 정도 있다. 이런 페이지들이 사재기 공장의 그럴싸한 명분이 돼 준다. ‘이 음원이 뜬금없이 1위를 한 게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재기가 아니라 정당한 바이럴 마케팅을 한 것이라고. 또 이런 페이지들은 세금 처리를 한다. 정체불명의 사재기 공장에 비용을 다이렉트로 전하면 꼬리가 잡힐 수 있지만, 이런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 마케팅 비용으로 지불하는 형식을 취하면 이것도 좋은 명분이 된다.”

브로커들이 급기야 곡 제작에도 관여한다던데.

“‘장르는 발라드로, 제목은 좀 더 감성적이게.’ 차트에 올려준 후 계속 이용자들의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 팁을 전수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음악을 듣는 이들 중 유독 ‘수동적 수용자’의 비중이 높다. 내 취향에 맞아서 찾아 듣는 게 아니라, 차트에 있으면 듣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 이런 팁들이 전수되고 있다. 지금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노래들이 다 발라드 아닌가. 댄스는 아이돌의 영역이니 어렵고, 스트리밍 작업을 돌리는 시간대가 새벽 시간이니까 발라드가 낫다는 걸 브로커들이 아는 거다. 그로 인해 얻는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도 한다.”

실시간 차트 위주로 운영되는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왼쪽)과 취향에 따른 큐레이션 위주로 운영되는 글로벌 음원 서비스 애플 뮤직

결국 지금의 ‘차트 장난’을 막기 위해선 “이러한 장난이 먹히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뿐”이라고 김작가는 지적한다. 더 이상 독점적인 음원 사이트에서 내거는 차트가 무의미해지고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 형식의 음원 소비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

“애플뮤직을 쓰는데, 여기엔 차트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검색한 음악, 내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근거해 내 취향 음악들이 나열된다. 물론 미국엔 빌보드 차트 같은 강력한 권위를 가진 차트가 있긴 하지만 음원 소비는 이렇게 큐레이션 바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우린 멜론만 들어가도 바로 메인에 실시간 차트부터 뜨잖나. 말로는 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강조하는데 왜 이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걸까”. 기술은 충분하다. 다만 차트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 김작가는 이러한 세계적 변화를 바라보는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업체의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음원 사이트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안에서도 이 방향대로 가야 한다, 언제까지 차트 중심으로 가야 하나 목소리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굉장히 소수다. 다수파들, 주로 사내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런 사재기가 비즈니스에 손해 되는 게 없기 때문에 지속하고 싶어 한다. 아무리 차트 개선 방안을 제시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거다. 변화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차트를 통해 음악을 듣는 질서가 이미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솔선수범해 현 구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거다. 기존 음원 사이트들이 현 상태를 고수하려는 한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거다.”

사재기 의혹 실명 언급 이후 근절 목소리 커졌지만…

박경이 SNS에 여러 가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지 3주. 가요계에선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박경의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가수 아이유, BTS 멤버 진, 헤이즈 등 음원 강자들이 나서 사재기 근절의 필요성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며 힘을 실었다. 가수 이승환, 성시경 등은 사재기 제안을 받았던 본인 혹은 지인의 경험담을 공개하며 그 실체를 더욱 분명히 했다.

그사이 박경에 의해 실명이 거론된 당사자 전원은 박경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와 확실한 혐의 입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번 명예훼손 조사 과정에서 사재기의 실체 일부가 밝혀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과 비슷한 논란이 터졌을 때마다 속수무책이던 정부도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음원 사재기 신고 창구’를 운영해 온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최근 사재기가 의심되는 IP와 아이디 조사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내년 5월까지 직접 사재기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가요계 관계자와 대중들은 이러한 움직임의 실효성을 여전히 의심하는 분위기다. 여전히 차트 중심의 구조와 사재기 행위에 대한 미미한 현행 처벌 규정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대부분 ‘미봉책’에 불과하단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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