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로운 길’] ‘北과 의회 사이’ 한계 봉착한 트럼프
  •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 (hyunik@sejong.org)
  • 승인 2019.12.16 10: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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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구도라면 3차 북·미 회담은 내년 3~4월 유력…그동안 ‘北 도발’ 관리가 관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제시한 미국의 새로운 셈법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참모들을 시켜 시한 종료 임박을 재공지하면서 새로운 길을 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원치 않지만 부득이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결기의 일단을 보였다.

일단 미국은 유엔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추궁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인권 문제는 일단 제쳐뒀다. 대신 주요 현안인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동향을 논의해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대북 석유 수출 등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압박태세를 갖추고, 북한의 핵협상 이탈 시 중국과 러시아가 그 뒤를 돌봐주지 못하도록 차단해 협상력을 강화했다. 또 큰 셈법의 변화 없이 협상을 시도해, 타결되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협상 국면으로 복귀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년으로 협상을 연기하려 할 태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9일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연설하고 있다. ⓒ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9일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연설하고 있다. ⓒ AFP 연합

美 여론 ‘낮은 수준 타협’ 반대해 트럼프 고민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북한이 바라는 선(先) 신뢰조치로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 의향을 표명하면 전격적으로 북·미 실무회담을 거쳐 정상회담으로도 직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대북 불신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 언론도 낮은 수준의 북·미 타협을 반대하고 있어 큰 위기 국면 없이 트럼프가 갑자기 전향적인 입장을 채택하기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임기 초반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북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방기하면서 솜방망이 제재만 가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준 북핵 방기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관여해 역대 어느 지도자도 해결 못 한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루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최고의 압박 전략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금만 더 진척시키면 상당한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국과의 대화를 제쳐두고 트럼프가 주도하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맞아가면서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했다.

2017년 7월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에 국제법상 불법인 ‘예방공격’을 거론했고, 트럼프는 핵 공격을 암시하는 ‘화염과 분노’로 위협했다. 북한은 수소폭탄급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트럼프는 유엔에서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한다면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totally destroy)”고 경고했다. 북한은 11월29일 뉴욕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 15형을 발사했다.

당시 남은 것은 그야말로 정면 대결뿐이었다. 여기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2018년 초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연기 방침 표명으로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중재로 6월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게 됐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북·미 간 신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의하고는 실제 북·미 관계 정상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첫 단계인 연락사무소 설치 및 종전선언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핵실험장을 붕락시켰고 인질을 돌려보냈으며 유해를 송환했을 뿐 아니라 장거리미사일 시험장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핵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유예했다. 미국이 성의 표시를 하지 않자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중재안으로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한다고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하노이 회담에서 이를 거부했다.

김 위원장은 이때도 트럼프에게 속았고, 6월말 한·미 연합훈련 중단 의사를 들었지만 또다시 속았다면서 이제는 미국이 체제 안전 보장 의사와 제재 완화 등 신뢰조치를 먼저 이행하지 않으면 아예 핵 협상에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응변식 대응과 김 위원장과의 친서 교환, 강대국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한껏 활용해 김정은에 대한 신뢰를 표명해 주는 것으로 핵과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중요한 시험대에 처하게 됐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와 미국의 대북 불신 여론을 다 만족시켜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더구나 의회의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그 빌미가 된 문제가 국내정치 목적으로 외교를 남용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북 핵 정책을 선거에 활용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을 위험이 있어 쉽게 북한의 요구를 받아주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해결 전략은 일단 북한의 요구를 최소화하고, 만약 북한이 협상을 이탈하려 할 때는 중국 및 러시아를 움직여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는 압박 작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이 요구 사항을 축소하면 적절한 시점에 실무회담에서 성과를 낸 뒤, 내년 대선 때 가장 유리한 시점에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이 강조하는 연말 시한이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 실무회담 개최 용의를 표명하게 하고, 비건 대표에게는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 용의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라고 지시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연말까지 실무나 고위급 회담으로 북한의 도발을 막고, 대선의 신호탄이 오르는 내년 2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직전인 1월말이나 5월초 NPT 평가회의가 개최되기 전인 3~4월경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 전에 한·미 연합훈련 유예 발표할 듯

특히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보다 상당한 차로 우세를 보이거나 미국 경제 상황이 양호해 낙승이 예상된다면 오히려 굳이 무리해서 내년에 북한과 협상을 추진하지 않고 2기 임기의 과제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앞서가고 경제 사정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외교정책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북한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면서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대선자금은 상당히 많이 모았지만 민주당 후보들에게 예상 지지도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하려 할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협력해 김 위원장의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미사일(ICBM) 발사를 저지하고, 미국 정부를 설득해 북·미 회담 가동 중 한·미 연합훈련 유예를 공개 제안해 북핵 협상 동력을 살리는 게 필요하다. 미국의 턱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도 대응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 또 만약 연말까지 북·미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내년 초에라도 북·미 실무협상이 시작될 수 있도록 김 위원장이 제시한 연말 시한을 유예하는 명분을 제공해 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에 북·미 협상을 거쳐 정상회담이 실현되면 반드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수 있도록 보다 능동적인 대미 설득 작업을 펼쳐야 한다. 대북 불신에 입각한 빅딜 거래 요구가 이번에는 적용되기 어렵고 일단 북핵을 동결시키고 영변 핵을 영구 폐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라는 것을 주지시키는 노력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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