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기 상한제는 서민 아닌 강남 부유층 위한 정책”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19.12.15 10:0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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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형기 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 “공급 늘리는 정책이 이상적”

서울의 신축 아파트 물량은 90% 이상이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공급된다. 택지를 개발할 만한 공급용지가 없어서다. 과거 종이호랑이 같았던 조합장의 역할과 책임이 커진 것도 사실상 조합이 시행사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 한형기씨는 이 같은 시류를 등에 업고 정비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이제는 하루 최소 1~2곳의 다른 사업 조합장이 찾아와 자문을 구하고 언론이 조명하는 인사가 된 것이다.

한 조합장은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재직 경력 21년, 타워팰리스3차 현장소장 경험을 되살려 국내 공동주택 최초로 3.3㎡당 1억원을 돌파한 아크로리버파크(구 신반포1차)를 만들었다. 지금은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재건축인 원베일리 일반분양 물량의 통매각 건을 추진 중인 건설시장 전문가다. 시사저널e는 반포에 위치한 조합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형기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은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스타 조합장으로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e 노경은
한형기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은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스타 조합장으로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e 노경은

강남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크다.

“강남에서 집값 상승이 시작되는 것은 사실이다. 강남은 대한민국 집값을 상승시키는 주범이라는 차원에서 강남권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래서 도입된 게 분양가 상한제 아닌가.

“잘못된 처방전이었다고 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가) 주택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집값은 어떤가. 더 오르고 있다. 매물이 없어서 못 산다. 거래될 때마다 신고가를 경신한다. 2011~13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해 집값이 잡혔고, 2014년 말 박근혜 정부 때 분양가 상한제를 푸니 집값이 폭등하더라는 전례를 보고 대책을 내놓은 것이 실수다.”

김현미 장관은 공급물량 축소는 ‘공포 마케팅’일 뿐이라고 일축했는데.

“토지가격 산정 기준부터가 과거와 다르다. 아파트 분양가는 땅값에 정부가 고시하는 기본형건축비 기준에 따라 산정한 건축비를 더해 결정한다. 땅값이 비싼 서울의 분양가는 건축비보다 택지비 비중이 훨씬 크다. 게다가 건축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정될 여지가 없지만 땅값은 감정평가 정도에 따라 조합의 수익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감정평가를 통한 택지가격이 시세 수준으로 충분히 인정됐다. 2013년 10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았던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청실아파트 재건축)는 공시가격의 2.5배나 인정받았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더라도 조합으로선 마진이 남아 상당수 조합은 정비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주택 공급물량도 충분해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공시지가의 120%에서 많아야 150% 수준에서 책정할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비사업장이 손해 보며 사업하겠나. 억울해서 못 한다고, 정책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실제 사업을 중단한 곳이 있나.

“철거와 이주를 해서 되돌아갈 수 없는 단지 빼고는 다 잠정 중단하는 추세다. 분양가 상한제 때문만은 아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적용 때부터 불만이 쌓였다가 터진 것이다. 대치쌍용2차는 시공사를 뽑아놓고 중단했다. 바로 옆 쌍용1차나 우성도 마찬가지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사실상 멈춰서 있다. 결국 공급물량이 나올 데가 없어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아파트 값이라고 가만히 있겠나. 지금은 멈춰 섰지만 언젠가 재건축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폭등해 버린 신축과 보조를 맞추며 오른다. 공급물량이 줄면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분양가 상한제 반대 집회 모습 ⓒ 연합뉴스
분양가 상한제 반대 집회 모습 ⓒ 연합뉴스

저렴한 가격에 무주택자에게 공급한다는 정부의 취지는 좋은 것 아닌가.

“무주택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민이 아니다. 정부가 지정한 27개 동은 대부분이 강남이다. 이곳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받아도 분양가가 전용 84㎡ 기준 10억원을 넘는다. 대출도 막아놓은 마당에 이걸 누가 살 수 있나. 강남의 현금 쥐고 있는 부자들이다. 조합원 사유재산을 뺏어서 더 부자들에게 움켜 쥐여주는 상황이다. 절대 평범한 서민을 위한 정책은 아니다.”

공급물량 축소에 따른 집값 급등 말고 다른 부작용은.

“건설사가 분양가 상한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이주·철거까지 마쳐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내년 4월말까지 분양을 마쳐야 분양가 상한제를 확실히 피한다. 조합은 내부 자재 등에 대한 도급가격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건설사는 조합이 가장 두려워할 사업 지연과 분양가 상한제 적용 가능성 등을 빌미로 계약서를 검토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려 할 것이다. 품질이 낮고 부실공사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품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조합이 건설사를 상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맞다. 가장 큰 문제는 조합장의 전문성 부재다. 전문성이 없으면 지자체 인허가 등 모든 정비사업 과정에서 시공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조합장이 시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중에는 중요한 의사결정 때 조합을 대변해야 할 조합장이 제 목소리를 못 낸다. 문짝도, 싱크대도 주택건설의 모든 게 돈인데, 자재에서 부풀리기를 한다고 생각해 봐라. 조합원의 추가분담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더 넓게는 전체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

“나 역시 건설사 출신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공사비 10% 부풀리는 건 일도 아니다. 1군 건설사 가운데 30%까지 올리는 악질도 있다. 최근 컨설팅을 했던 과천의 한 조합은 지하 1층 층고를 70cm 높이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지상 대신 지하에 쓰레기차와 같은 대형차가 드나들게 하는 차원이다. 거푸집과 콘크리트, 철근, 페인트 정도 추가된다. 어림잡아봐야 20억원 정도 추가비용이 든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건설 지식이 없으니 시공사가 추가비용 100억원이 필요한 것처럼 예산을 잡는다. 그러면서 공약 당시 무상으로 주겠다던 가전 몇 가지를 빼고, 창문 자재를 한 단계 더 낮은 것을 적용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챙기는 것이다.”

시장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정부가 그걸 공략해야 할 듯한데.

“시장을 왜 두렵게 하려고 하나. 그렇게 두려워할 법한 정책들 내놓아서 시장에 먹힌 적이 있나. 그냥 두면 된다. 집값도 저절로 가다보면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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