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단일 기업 기준 최대 규모 송곳 세무조사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12.19 07:30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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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리베이트, 수입 맥주 저가 신고 의혹 손보기 나섰나

최근 오비맥주 강남 본사와 안양물류센터, 이천공장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오비맥주가 지난해 4월 인수한 수제맥주 제조업체 더핸드앤드몰트도 조사 대상이 됐다. 조사의 강도는 상당하다. 투입된 국세청 인력만 150여 명에 달한다. 올해 단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가운데 최대 규모다. 오비맥주는 이번 조사가 정기 세무조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그러나 칼을 빼든 곳이 ‘재계 저승사자’로 통하는 조사4국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가 특별세무조사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오비맥주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오비맥주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오비맥주, 올해 들어 적극적 밀어내기 나서

국세청과 주류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세무조사는 불법 리베이트와 연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주류 리베이트는 주류 제조업체가 판매촉진을 위해 한 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는 도매업체들에 현금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구입한 주류 1박스당 일정 금액을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식이다. 리베이트 액수는 한 번에 많은 양을 구매할수록 많아진다. 주류업체들이 시장점유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출혈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주류 리베이트는 엄연한 불법이다. 공정경쟁을 해치고 시장을 교란함은 물론, 세금 탈루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베이트는 계속해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 이런 가운데 국세청은 최근 주류 리베이트 근절에 주력해 왔다. 이를 위해 리베이트 제공자에 더해 수혜자까지 처벌한다는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를 추진해 왔다. 김현준 국세청장도 올해 6월24일 인사청문회에서 주류 불법 리베이트에 대해 “탈세와 과당경쟁 등을 유발해 주류업계 부실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근절 의지를 내보였다.

불법 리베이트 규모는 재무제표상으로는 추정하기 어렵다. 판매촉진비와 광고선전비, 접대비 등 정상적인 영업비용에 혼재돼 있어서다. 다만 주류 도매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올해 되레 리베이트 수위를 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3월부터 리베이트를 앞세워 도매업체들에 물량 밀어내기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올해 7월1일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처럼 무리한 영업활동을 벌인 건 오비맥주가 겪고 있는 경영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오비맥주는 올해 들어 계속된 부진을 겪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카스’를 앞세운 시장점유율 1위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키움증권은 오비맥주의 올해 3분기 국내 판매량은 최소 15% 이상 감소했고, 시장점유율도 기존 55~60%에서 올 2~3분기 합산 기준 약 5~6%포인트 하락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국세청과 업계 안팎에선 맥주 수입가를 실제보다 낮게 신고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수입 맥주의 경우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가 적용되고 있다. 세율은 수입 신고가의 113%다. 수입 신고가가 1000원이라면 1130원의 세금이 매겨지는 셈이다. 수입 신고가를 실제 가격보다 100원만 낮춰도 113원의 관세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올해 8월 네덜란드 맥주 하이네켄 수입사 하이네켄코리아와 체코 맥주 필스너우르켈을 수입하는 AE브랜드코리아가 관세를 줄이기 위해 수입 신고가를 낮춘 사실이 적발돼 각각 230억원과 160억원의 관세 납부를 고지받았다. 이들 업체는 신고 가격을 낮춰 줄인 세금을 마케팅과 배당 등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도 수입 신고가를 어렵지 않게 낮출 수 있다. 오비맥주가 최대주주인 벨기에 주류업체 AB인베브로부터 맥주를 수입해 국내에 유통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간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수입 가격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오비맥주의 맥주 수입 신고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관세청이 발표한 지난해 국가별 맥주 수입 신고가 통계치를 통한 대략적인 추정은 가능하다.

지난해 가장 높은 수입 신고가를 기록한 국가는 기네스 등이 포함된 아일랜드산(톤당 1189달러)이었다. 이 외에 프랑스산과 일본산 맥주의 톤당 수입 신고가는 각각 941달러와 903달러, 중국산도 751달러였다. 그러나 오비맥주가 수입·유통하는 호가든·스텔라 등이 포함된 벨기산의 톤당 수입 신고가는 668달러에 불과했다. 앞서 신고가를 낮춘 혐의가 적발된 네덜란드(603달러)와 체코(535달러)보다는 높지만, 전체 수입 맥주 평균 신고액(798달러)을 크게 밑도는 액수였다. 이를 두고 그동안 업계에선 오비맥주 역시 맥주 수입 가격을 실제보다 낮췄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11월26일 오비맥주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 연합뉴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11월26일 오비맥주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 연합뉴스

‘괘씸죄’ 적용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

일각에선 이번 오비맥주에 대한 세무조사가 유독 강도 높게 진행되는 건 ‘괘씸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비맥주가 올해 4월부터 6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카스 등 주요 맥주 출고가를 조정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주류 제조업체는 가격을 정해 신고만 하면 된다. 국세청의 ‘주류 가격 명령제’가 올해 1월 폐지되고 주류 가격 신고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주류 가격 명령제는 국세청장이 주세를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사업자에게 주류 가격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로, 그간 가격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주류 가격 명령제가 폐지되기 전 주류업체가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선 국세청과의 조율이 필수에 가까웠다. 명령제가 폐지된 후에도 주요 주류업체들은 가격 조정을 앞두고 관행적으로 국세청과의 의견 교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업체들은 지금까지도 가격 인상과 관련해 국세청과 의견 조율을 해 오고 있지만 오비맥주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출고가를 반복적으로 변경했다”며 “오비맥주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로 인해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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