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깬 반전의 주인공들 ‘가시밭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5 07:3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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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격전의 현장을 가다 - 험지 출마자]
김부겸, 대구 수성 여부 최대 관심…與는 PK 사수, 野는 수도권 탈환에 집중

총선을 앞두고 여야에서 어김없이 당 지도부와 중진들을 향해 ‘험지 출마’ 압박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상대 당의 텃밭에 뛰어들어 이변을 연출해 내는 결과는 매번 선거 때마다 큰 화제를 만들었고, 그 화제의 주인공은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압도적인 지역 정서를 극복하기 힘든 불리함은 있지만, 뚜렷한 명분을 안고 도전할 경우 낙선해도 정치적 입지가 커진다는 점에서 험지 출마는 정치인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그 때문에 당의 선당후사(先黨後私) 요구에 등 떠밀려 나가기도 하지만, 스스로 결단해 뛰어드는 이들도 많다. 21대 총선을 100일여 앞둔 지금, 동야서여(東野西與) 구도가 명확한 지금의 선거 판세에서 이번 총선은 과거 그 어느 총선보다 험지 출마자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그만큼 지난 총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주인공들 가운데 수성(守城)에 나서는 의원들이 많은 까닭이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그간 험지로 분류돼 온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여러 기적을 만들어냈다. 전체 40석 중 8석을 차지한 것이다. 그 8석 가운데 6석을 초선 도전자들이 기성 보수 의원들에 맞서 따냈다는 것도 의미가 컸다.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PK에서 우세를 이어가면서, 이제 PK는 더 이상 민주당의 험지가 아닌 접전지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민주당은 내심 이번 총선에서 40석 중 절반가량을 획득할 목표를 세운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지역 정서는 그리 녹록지 않다. 드루킹 사건부터 조국 사태 등으로 PK 민심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다시 험지로 되돌아가는 모양새다. 

지난 총선 때 PK에서 기적을 이뤄낸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재선 성공 여부는 단연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해영(부산 연제)·서형수(경남 양산을)·박재호(부산 남구을)·전재수(부산 북·강서갑)·최인호(부산 사하갑) 의원과 김해을 재보선에서 당선된 김정호 의원 등 6명의 초선 의원 가운데, 현재 서형수 의원만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부산 연제에선 김해영 의원과 자유한국당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리턴 매치가 벌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북·강서갑 역시 지난 총선에서 전재수 의원에게 분루를 삼킨 박민식 전 한국당 의원이 재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PK 지역 최다선(3선)인 부산진갑의 김영춘 민주당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해 본격적인 대선 가도를 달릴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호남 이변’의 두 주인공, 모두 한국당 탈당

견고했던 지역주의를 상당 부분 허물며 ‘반전의 선거’로 기억되는 20대 총선의 이변 지역은 비단 영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시 호남 전역에 불어닥친 국민의당 돌풍으로 민주당은 이 지역 28석 중 단 3석만 차지하는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하지만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이정현·정운천 의원이었다. 예전 같으면 명함도 못 내밀었을 호남에서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후보로 출마해 각각 전남 순천과 전북 전주을 지역에서 당선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 전망이다. 정 의원은 이미 한국당을 탈당해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전주을 지역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현재 무소속 신분인 이 의원은 순천을 떠나 수도권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보수의 텃밭 중 텃밭인 TK(대구·경북) 상황도 주목된다. 지난 총선은 31년 만에 큰 기적이 일어났다. 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의락 후보가 각각 대구 수성갑과 북구을에서 과반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이다. 특히 김 의원은 수성갑에서만 세 번의 도전 끝에 승리해, 과거 부산 험지에 출마해 세 번(부산시장 선거 포함) 떨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되며 ‘바보 김부겸’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4월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 김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수성에 나선다. 한국당 경쟁자로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등 거물들이 거론됐지만, 모두 수성갑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현재 정순천 수성갑 당협위원장 외에는 아직 눈에 띄는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대구 시민의 지지도가 최근 추락하면서, 김 의원에 대한 지역 민심 또한 2016년과는 사뭇 달라진 상태다.

김 의원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대권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대구 동구을) 역시 본인의 지역구가 험지가 돼 버렸다. 여전한 ‘배신자’ 딱지와 지지부진한 보수 통합 논의 등으로 인해 그를 향한 지역 내 반감이 적잖은 상황이다. 이런 탓에 한때 수도권 출마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유 의원은 12월8일 국회에서 열린 ‘변화와 혁신’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대구의 아들 유승민은 대구에서 시작하겠다”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총선 승부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은 어떨까. 지난 총선에선 민주당이 수도권 122석 가운데 3분의 2인 82석을 차지하면서 제1당으로 올라서는 데 큰 힘을 얻었다. 그 때문에 한국당에선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를 제외한 수도권 전역을 험지로 간주하며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를 압박하고 있다. 수도권 탈환에 관심이 모이는 곳은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를 비롯해 강북, 광진 등이 대표적이다. 당내에선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홍준표 전 대표 등이 이 같은 수도권 험지로 앞장서 나가 당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교안 대 이낙연’ 빅매치 성사될까

험지 출마론이 꾸준히 가열되고 있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경우,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 출마해 이낙연 국무총리 등 이곳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여당 거물과 직접 맞붙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일찌감치 도전장을 낸 서울 광진을 역시 또 하나의 주목받는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세가 강한 광진을에 뛰어들며 현역 지역구 의원인 추미애 의원과의 한판 맞대결이 예상됐으나, 추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에서 이낙연 총리가 종로가 아닌 광진을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면서 뜻밖의 빅매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장관 출신 등 거물급 인사들을 향한 험지 출마 권유가 당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 총리를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강원 춘천), 강경화 외교부 장관(서울 동작을 또는 강남), 정경두 국방부 장관(경남 진주) 등에 대한 험지 출마설이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한편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스스로 험지 출마를 예고하고 나선 상태다. 비례대표 1번 박경미 의원은 보수 텃밭인 서울 서초을에, 송옥주 의원은 8선인 서청원 무소속 의원이 터를 잡고 있는 경기 화성갑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재정 의원 역시 5선의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가 버티고 있는 경기 안양 동안을에 출마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수도권 지지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상대 당 중진과 맞붙어 정치적 몸집을 키우기 위한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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