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존중 품귀(品貴) 사회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5 18:00
  • 호수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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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은 요즘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만큼이나 멋진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존중 또한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예상외의 역설과 다양한 딜레마를 감추고 있기도 하다.

일찍이 ‘존중’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던 미국의 사회비평가 리처드 세넷은 1976년 발표했던 역작 《계급 체계하의 숨은 희생자(The Hidden Injuries of Class)》를 통해, 불평등이 물질적 궁핍을 넘어 개인의 자존감 및 자긍심을 어떤 방식으로 침해하는지 치밀하게 분석한 바 있다.

태어나는 순간 불평등이 결정되는 신분제도 아래에서 오히려 ‘존중’을 표현하는 의례가 정교하게 발달했다는 사실은 일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영주의 아내가 장원에 거주하는 농노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일련의 선물을 하사하는 의례가 정중하게 진행되는 방식이 생생히 그려지고 있다. 불평등한 시스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원활하게 유지하고자 일상생활부터 통치 영역에 이르기까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겠다.

프랑스 혁명을 필두로 평등을 기치로 내세운 현대사회가 실상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표현이 빈약하고 의례가 결여된 사회라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이 불편한 동거를 지속 중인 현대사회로 오면서 선별된 소수의 특권층과 다수의 대중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존중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니, 어인 까닭인가 싶다.

이들 존중 품귀 현상은 마치 아프리카에서 종종 일어나는 기근(飢饉) 현상처럼 자연재해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까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기근과 달리 존중은 품귀 해소를 위해 별다른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존중이 공급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음이야말로 현대사회 특유의 딜레마로서 필히 해결돼야 할 과제라는 것이 리처드 세넷의 통찰이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존중 품귀 현상에 시달려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 7월 직장 내 만연된 ‘갑질’을 예방하고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도입되지 않았던가. 직장인 10명 중 7명이 “나는 직장에서 사축(社畜)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리요다. 이뿐이랴. 1년 내내 얼굴 붉히며 극단적 갈등과 소모적 충돌을 거듭해 온 정치권을 보면 상대 정당에 대한 존중은 티끌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을 향한 존중은 언감생심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었고.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존중은 ‘그렇게 하도록 하자’는 선언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함은 물론이다. 존중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 장치와 실천하기 위한 표현적 의례를 두루 갖추어야만 한다. 존중을 솔선수범해야 하는 주체는 당연히 특권을 누리는 층, 혜택을 받은 층, 파워를 가진 층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존중은 동정심과 종이 한 장 차이기 때문이다. “동정심이란 종종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오인하는 것”이라 했던 애덤 스미스의 경고나 “자선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했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충고는 오늘 우리네 상황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존중은 상호적·호혜적일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는 점 또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 존중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존중받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받은 존중을 언젠가 되돌려줄 수 있을 때 사회적 신뢰가 정착되고 나아가 사회적 연대까지 가능할 것이다. 직장생활 중 언제 존중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조사한 결과 ‘지지를 받았을 때, 개방적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케어를 받았을 때’로 밝혀진 것을 보면, 존중은 그다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새해에는 너나없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삶이 일상화되길 감히 소망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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