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도 한국영화는 ‘레디, 액션!’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28 14: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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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만나게 될 한국영화 기대작들

2019년은 여러모로 기록적인 한 해였다. 한국영화사 100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을 꼽자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더불어 영미권 평단 및 관객의 전례 없는 폭발적 반응. 이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을 두드릴 참이다. 《기생충》을 포함해 처음으로 한 해 총 다섯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독과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2013년 2억 명 돌파 이후 사상 최다 관객 수(2억2000만여 명)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장 확대의 이면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추석 시즌 개봉했던 《나랏말싸미》 《타짜: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일제히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하면서 극장가의 전통적 성수기가 휘청이기도 했다. 새로운 2020년에는 어떤 기록들을 맞이하게 될까. 새해 만나게 될 한국영화 기대작들을 통해 가늠해 본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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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스릴러’ ‘신인 감독 활약’ 기대할 만

2019년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일종의 교훈을 남긴 해이기도 하다. 연말 개봉한 《백두산》이 개봉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았지만, 부실한 전개와 재난영화의 클리셰 모음과도 같은 연출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반면 《엑시트》처럼 새로운 상상력으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 작품도 있었다. 새해에도 역시 여러 편의 대작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일단 각각 소재 면에서 참신한 기획들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한국영화에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운 《부산행》(2016)의 속편 격이다. 시간 배경을 《부산행》 4년 후로 설정하고, 폐허가 된 반도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반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군부대 등의 상황들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등이 출연한다. 이 작품을 비롯해 2020년의 한국영화 블록버스터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SF’다.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의 신작 《서복》의 소재는 복제인간.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추적을 시작하는 가운데, 죽음을 앞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이 그와 얽힌 여정을 시작한다.

《승리호》는 한국에서는 생경한 우주 탐험 소재를 다룬다. 우주 함선 승리호의 선장과 파일럿에 각각 김태리와 송중기가 캐스팅됐으며, 유해진과 진선규가 합류한다. 특히 유해진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로봇 모션 캡처와 목소리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초 찾아오는 《사냥의 시간》 역시 10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경제 붕괴 여파로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2040년 한국을 배경으로, 빈민가에 사는 네 명의 친구들이 위험한 범죄를 계획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제훈, 박정민, 최우식, 안재홍 등 젊은 배우들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2019년에는 《82년생 김지영》 같은 상업영화부터 《벌새》 《우리집》 《메기》 등 독립예술영화까지 젊은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남성 감독이 연출했지만 사려 깊은 여성 서사로 완성된 《윤희에게》 같은 작품도 있었다. 이들 영화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영화계의 활력이 됐고, 영화 안팎의 담론들까지 풍성하게 만들어냈다. 새해에도 한국영화계 안에서 ‘여성 파워’가 기대되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특히 2019년과 동일하게 신인 감독들의 활약이 기대를 모은다.

신예 홍의정 감독의 《소리도 없이》는 배우 유아인과 유재명의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다.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하며 살아가는 두 인물이 예기치 못한 의뢰를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마찬가지로 첫 장편영화를 내놓는 정지연 감독의 신작 《앵커》 역시 스릴러다. 방송국 메인 앵커 세라(천우희)에게 자신이 살해될 것임을 알리는 한 제보자의 취재 의뢰가 들어온다. 《내가 죽던 날》은 사라진 소녀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로, 단편 《여고생이다》로 2008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을 받은 박지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혜수, 이정은, 김선영 등 믿고 보는 충무로 여성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단편 《몸값》(2015)으로 주목받았던 이충현 감독도 첫 장편영화로 여성 서사를 택했다. 배우 박신혜와 《버닝》(2018)의 신예 전종서가 만나 화제를 모은 스릴러 《콜》이다. 두 사람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다. 지난해 《걸캅스》로 여성 서사의 중심에 섰던 배우 라미란은 정치 코미디 《정직한 후보》로 컴백한다.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이 선거를 하루 앞두고 갑자기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종욱 찾기》(2010), 《부라더》(2017)를 연출했던 장유정 감독의 신작이다.

(왼쪽부터)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행복의 나라로》, 박신혜 주연의 스릴러 영화 《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등장시킨 《남산의 부장들》 ⓒ 주)NEW·쇼박스
(왼쪽부터)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행복의 나라로》, 박신혜 주연의 스릴러 영화 《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등장시킨 《남산의 부장들》 ⓒ (주)NEW·쇼박스

전통의 강호들 출격 대기 중

이름만으로 믿음직한 배우들의 활약은 2020년에도 계속된다. 연말 개봉한 《백두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이병헌은 연초부터 다시 《남산의 부장들》로 돌아온다. 동명의 논픽션이 원작으로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과 《내부자들》(2015)의 영광을 다시 한번 이룰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 한재림 감독이 연출하는 항공 재난영화 《비상선언》은 송강호와의 재회로도 기대를 모은다. 두 배우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설경구도 두 편의 영화로 돌아온다. 이준익 감독과 손잡은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당한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다. 그는 섬 청년 창대(변요한)를 만나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해 간다. 설경구에게 다시 한번 전성기를 열어준 작품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변성현 감독과는 《킹 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를 선보인다. 설경구는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 김운범을, 그의 ‘킹 메이커’ 서창대는 이선균이 연기한다.

최민식과 박해일이 두 남자의 우연한 동행을 그린 임상수 감독의 신작 《행복의 나라로》를 선보이는 가운데, 2019년 《증인》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정우성은 연초 전도연과 함께 출연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컴백한다.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인생 최악의 코너에 몰린 이들이 의문의 돈가방을 두고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다. 정우성은 《강철비》(2017)를 함께 했던 양우석 감독, 곽도원과 함께 《정상회담》으로도 컴백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남·북·미 정상회담 중 쿠데타로 인해 세 정상이 북에 납치된 후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다. 한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황정민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돌아온다. 마지막 청부 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휘말리는 남자의 이야기다. 이정재, 박정민과의 호흡도 기대를 모은다.

외화 시장 ‘디즈니 천하’ 이어질까

2019년 탄생한 천만 영화 다섯 편 중 세 편이 ‘디즈니발’ 작품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겨울왕국 2》가 그 주인공. 2020년 외화 전체 라인업도 진전한 가운데, 디즈니 천하가 이어질지도 영화계의 이슈다. 2019년 전 세계 티켓 판매 수입 10억 달러를 넘긴 디즈니 영화는 총 여섯 편. 디즈니는 총수입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원)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디즈니의 새해는 쉬어가는 해에 가까워 보인다. 《어벤져스》나 《스타워즈》(1월8일 개봉하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북미에서 지난 12월 이미 개봉) 시리즈처럼 흥행이 공인된 신작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2020년 디즈니는 블랙 위도우의 단독 무비와 새로운 히어로 집단의 이야기 《이터널스》까지 두 편의 마블 작품을 선보인다. 중화권 배우 유역비가 주인공으로 나선 《뮬란》 실사판, 엘프 형제가 아버지를 부활시키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그린 픽사 신작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픽사의 첫 흑인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 《소울》 등도 개봉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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