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사대주의로는 AI 정복 힘들다”
  • 변소인 시사저널e 기자 (byline@sisajournal-e.com)
  • 승인 2020.01.02 15: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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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희석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센터장 “1% 우수 인재에 과감히 투자해야”

알파고에 이어 한돌까지. 알파고와 대국하며 은퇴를 결심한 이세돌 9단은 최근 한돌과의 은퇴 대국에서도 패배했다. 인공지능(AI)이 자신의 역량을 다시 한번 과시한 것이다. 이 세기의 대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확실히 달라졌다. 3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데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번 한돌과의 대국은 인공지능의 우세를 미리 전망하고 기술로서 이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로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며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현재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고려대는 인공지능연구센터를 세워 기술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임희석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센터장을 만났다.

ⓒ 변소인 시사저널e 기자

센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우리 센터에서 표방하는 것은 ‘사람이 생각하고 사람이 학습하는 것처럼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휴먼 인스파이어드(human inspired)’ 컴퓨팅 기술이라고 한다. ‘브레인 인스파이어드(brain inspired)’ AI라고 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핵심은 사람의 지능을 모방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지 기술을 잘 따라 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핵심이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컴퓨터과학 측면의 연구들만 많이 이뤄졌다. 알고리즘을 짜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 가까운 것들을 만들려다 보니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연구한 후, 그 원리를 반영한 컴퓨팅 기술을 만들어 인공지능 성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기술을 만들어 10년, 20년 뒤에도 꾸준히 쓰일 원천기술을 만들고 싶다.”

 

인공지능 연구소는 많다. 고려대 센터만의 특징이 있다면.

“강인공지능을 강조하고 싶다. 그동안 인공지능 연구는 대부분 약인공지능에 한정됐다. 약인공지능은 입력이 들어가면 결과가 나오는 방식이다. 규칙대로 수행하는 방식인데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반면 강인공지능은 설명도 가능하고 추론도 가능한 인공지능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언어 능력에서는 전이학습이 가능하다. 한 언어를 습득하면 다른 언어에도 응용이 가능한 것이다. 강인공지능 역시 그렇다. 규칙을 만들면 다른 분야 적용이 가능하다.”

 

정부의 지원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가 적기 때문에 1%의 리더에 집중해야 한다. 1%의 리더가 양성되도록 해야 한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하고 남들 투자하는 것만큼 해서는 힘들다. 남들과 다른 교육 프로그램,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1% 우수한 인력에 집중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사업보다는 1% 인력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지원과 환경이 갖춰줘야 한다는 얘기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

 

대기업의 인공지능 관련 연구나 방향은 어떻게 보나.

“현재까지 연구는 잘하고 있다. 외국에 연구소도 만들고 있지만 국가 안팎을 잘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인공지능 국내 인재, 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외국 인재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 기술 사대주의 같다. 과도한 외국 학자 모셔오기가 그렇다. 국내 인재들도 우수하기 때문에 10분의 1이라도 국내 학자와 신진 연구원에 투자하면 5년 후, 10년 후에는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국내 인재들이 다 해외로 나간다. 연봉에서 6~8배 차이가 나는데 제자들도 다 나가려고 한다.”

 

최근 눈에 띄는 연구가 있나.

“재미있는 연구가 있는데, 가소성 뉴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가소성이 있다. 경험에 따라 구조가 바뀐다. 많이 쓴 뇌의 시냅스 연결이 많아지고 과도한 부분은 제거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에 이런 가소성 원리가 반영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구조가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축소하는 연구에서 성과가 보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감성분석 연구도 흥미롭던데.

“사람의 대화를 바탕으로 감성을 6가지로 분석하는 연구다. 이런 것이 잘되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 감성별로 색을 바꿔서 상대방이 색만 보고도 감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보통 문장 하나만 보고 감성을 분석하는데 우리 연구소에서는 대화의 맥락을 보고 감성을 인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컴퓨터와 대화할 때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려면 감성적인 것이 잘돼야 한다. 흔히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로봇 같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로봇이 감성적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감성을 잘 분석할수록 로봇이 사람다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성 처리 분야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이 분야가 연구돼야 한다.”

 

기술 이전이 활발한 것으로 안다.

“연구소에서 연구한 것들이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산업에 쓰일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지향한다. 사실 대학에서는 연구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술 이전이 쉽지 않다. 보물들이 많은데 산업체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 이번에 센터를 운영하면서 이런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소개 책자도 만들고 지난 5월에 기술 교류회도 개최하면서 산업체와 많이 연결됐다. 기술 이전은 올해만 9건 정도 했다. 실적이 매우 좋은 편이다. 내년에도 기술 이전을 활성화할 생각이다.”

 

내년 계획이 궁금하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자연어 처리 교육 프로그램을 좀 더 체계화해 산업체와 연구기관, 민간 기관을 교육하려고 한다. 또 논문지를 창간할 예정이다. 현재 창간호를 만드는 중이다. 논문지를 인공지능 분야에서 권위 있는 연구 논문지로 만들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선도기술을 만들어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하게 경쟁해 명성을 잇는 연구소가 되는 것이 목표다. 산학협력을 통해 학교도 좋고 산업체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학교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의 삶과 노동의 질이 높아지면 사회, 국가에도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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