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범 그 후] 새벽 길거리를 피로 물들인 심영구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31 09:00
  • 호수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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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범죄사 ‘최초 노상 연쇄살인범’…서울-경기 오가며 8명 살해 3명 중상

1989년 5월21일 오전 1시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미용실 앞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는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리다 잠겨 있던 문을 따고 미용실 안으로 침입했다. 손에는 등산용 칼이 들려 있었다.

괴한은 미용실 계산대에 가서 돈을 찾기 시작했다. 쪽방에는 원장 이아무개씨(여·23)가 잠들어 있었다. 이씨는 ‘덜그럭’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방문을 열고 “누구세요?”라고 했더니 검은 물체의 괴한이 나타나 흉기로 위협했다. 순간 이씨는 “사람 살려”라고 소리쳤다. 당황한 괴한은 들고 있던 흉기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이씨는 목과 가슴을 찔려 그 자리에 쓰러졌고, 괴한은 미용실 안에 있던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이씨는 비명을 듣고 달려온 이웃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씨도 어두운 데다 놀란 나머지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날 미용실에 침입한 괴한은 강도 상해죄로 3년6개월을 복역했던 심영구(29)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돈 떨어지자 흉기 들고 거리로

그는 출소 후 빈둥거리며 놀다 돈이 떨어지자 약 9개월 만에 또다시 범행에 나섰던 것이다. 심씨가 미용실에서 챙긴 돈은 고작 7000원에 불과했다. 그는 한동안 숨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20일이 지난 6월11일 새벽에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범행 대상을 물색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전 4시30분쯤, 심씨는 성남시 신흥동 골목길을 배회하다 한 여성과 마주쳤다.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술집 여주인 신아무개씨(42)였다. 영업을 끝내고 귀가하던 신씨는 심영구를 보고 “아니, 총각이 새벽에 웬일이야”라며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를 던졌다. 가뜩이나 신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심씨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안쪽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신씨를 위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신씨는 뒷걸음질하며 달아났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붙잡혔다. 심영구는 신씨의 온몸을 마구 찔러 살해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도 목격자도 없었다. 그의 범행은 거침이 없었다. 성남에서 두 건의 범행을 저지른 심씨는 범죄 무대를 잠시 서울로 옮겼다.

그가 나타난 곳은 관악구였다. 심씨는 한때 남현동에 있는 건축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6월16일 새벽, 이곳의 거리를 배회하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오전 2시30분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아무개씨(여·42)가 눈에 띄었다.

심영구는 그를 쫓아가 으슥한 곳에 이르자 흉기로 살해한 뒤 손가방에 있던 현금 10만원을 챙겨 달아났다. 이날 아침에 발견된 김씨는 가슴과 등 부분을 난자당한 상태였다. 경찰은 단순한 노상강도 살인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고, 성남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 수사망이 자신을 비켜가자 범행에 더욱 자신감을 드러냈다. 돈이 절실했지만 그가 세 건의 범행을 통해 챙긴 금액은 10만7000원이 전부였다. 8월4일 밤, 심씨는 성남시 중원구 단대동 길가를 서성였다. 오전 1시쯤, 박아무개씨(여·43)가 나타나자 이전처럼 뒤를 따라가며 기회를 엿봤다. 인적이 드문 으슥한 길로 들어서자 흉기를 꺼내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인정사정없이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심씨는 박씨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돈이 없자 그대로 달아났다. 박씨의 비명을 들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박씨는 등과 어깨 등을 6차례나 찔린 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후 검거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던 심영구는 석 달 정도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었다. 이에 반해 경찰 수사는 무기력했다. 성남과 서울에서 잇따라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이 터졌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이번에도 심영구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런 사이 그는 다섯 번째 범행에 돌입한다. 11월16일 새벽, 심씨는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검은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50대 남성을 발견했다. 심씨는 그게 돈가방이라고 생각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심씨는 그 남성의 뒤를 따라가며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다짜고짜 찌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성은 저항 한 번 못한 채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심씨는 남성이 갖고 있던 가방을 빼앗았다. 그 안에는 돈 대신 달랑 성경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피해자는 세탁업을 하는 김아무개씨(53)였고, 철야기도를 하고 귀가하던 중에 변을 당했다. 허탕을 친 심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집 근처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의 창문을 부수고 차 안에 있던 동전 등 금품을 훔쳤다.

심영구는 5개월 동안 서울과 성남에서 4명을 살해하고 1명은 살인미수에 그쳤다. 이 중 4건은 성남에서 저질렀다. 이때쯤 돼서야 경찰도 동일범의 소행으로 의심했지만 용의자의 윤곽을 파악할 만한 증거나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심씨의 계속된 범행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광란의 살인극, 브레이크 없는 전차 

심영구는 주도면밀했다. 그는 한 지역에서 범행을 지속하면 언젠가는 꼬리가 잡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면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줘야만 했다. 그렇다고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범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7일 후인 11월26일 새벽, 심영구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 나타났다. 노점상 이아무개씨(여·57)가 희생양이 됐다. 심씨는 이씨의 뒤를 쫓아가 같은 방식으로 살해하고 돈주머니를 빼앗아 달아났다. 여섯 번째 살해 피해자였다.

심영구는 이미 살인에 중독된 상태였다. 광란의 살인극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범행 지역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마치 경찰에게 “나 잡아봐라”는 식이었다.

구리에서 노점상을 살해한 다음 날인 11월27일 그는 서울 종로구로 이동했다. 오후 9시쯤, 창신동에 있는 한 노상 주차장에 있다가 승용차를 주차하던 한 남성(29)에게 시비를 걸었다. 상대방이 따지고 들자 심씨는 흉기를 마구 휘둘러 살해하고 그의 차량을 탈취했다.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승용차를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심영구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의 살인 목적은 ‘돈’이었지만 그가 챙긴 금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살인의 횟수만 더 늘어갈 뿐이었다. 여기에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감도 커졌다. 그는 한 달 정도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그리고 12월23일 밤,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돈이 바닥을 드러내자 흉기를 지닌 채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길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노점상이 희생됐다. 오후 8시30분쯤, 길에서 노점을 하는 박아무개씨(여·54)가 눈에 들어왔다. 돈을 세는 것을 보고는 범행 충동이 일었다. 그는 박씨의 주위에 머물며 기회를 엿봤다. 얼마 후 인적이 없는 틈을 타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무차별로 휘둘러 살해했다. 박씨에게 빼앗은 금품은 현금 17만원과 버스회수권 240장이었다.

그의 범행은 성탄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종로에서 노점상을 살해한 지 이틀 후인 12월25일 새벽, 심영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밤새 웃고 떠드는 이웃집들의 소리에 잠을 설쳤다. 그는 새벽 4시쯤,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흉기를 챙겨 무작정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의 집을 나왔다.

 

슬리퍼 한 짝에 덜미 잡혀 

마침 집 앞 슈퍼마켓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가게 안을 살펴보니 주인 조아무개씨(여·37) 혼자 앉아 있었다. 순간 성욕을 느낀 심씨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조씨를 끌어안고 강제로 추행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조씨가 비명을 지르자 잠에서 깬 아들 박아무개군(11)이 대항했다. 다급해진 심씨는 흉기로 박군을 살해하고 쏜살같이 도망쳐 나왔다. 이때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채 나오면서 꼬리가 잡히게 된다.

경찰은 조씨를 통해 범인의 인상착의와 복장 등을 조사했다. 새벽 시간에 운동복과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는 것에 착안해 인근 주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증거물인 슬리퍼를 단서로 대대적인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심영구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그는 이미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은신하고 있었다. 경찰은 심씨 주변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의 애인이 서울 강서구에 산다는 것을 파악했다. 경찰은 1990년 1월22일, 심영구를 등촌동의 애인 진아무개씨(23) 집에서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진씨 집에서는 미처 처분하지 못한 장물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심씨의 연쇄살인도 막을 내렸다.

경찰은 그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1989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7개월 동안 8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연쇄살인을 통해 챙긴 돈은 불과 수십만원에 불과했다. 심씨는 강도살인,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져 사형이 확정됐고, 1992년 12월29일 처형됐다. 그는 한국 범죄사에 ‘최초 노상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됐다. 

억눌린 욕구와 불만을 잔혹하게 표출한 외톨이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심영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8살 때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아버지가 재혼했지만 계모와 이복형제들과의 갈등이 심했다. 급기야 중학교 1학년 때 집을 뛰쳐나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이런 사이 사회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남에게 멸시받고 무시당하면서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고, 열등의식과 불만에 싸여 피해의식만 남게 됐다.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면서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억눌린 욕구와 불만이 공격적으로 표출돼 포악성을 드러냈다.

20대 중반부터는 범죄의 늪에 빠져들었다. 26살 때인 1985년 강도상해죄로 구속돼 3년6개월간 복역했다. 출소 후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돈이 필요하게 되자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대하면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일단 한 번 찌르고 나면 이성을 잃고 마구 찌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들이 살인자의 칼날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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