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는 정말 나쁜 것일까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8 14: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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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한국 정부 상대로 제기된 소송만 7건
국내서 통용되는 관행 및 규범 재점검해야

유엔 산하 국제중재재판소는 지난해 6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과 관련해 이란 다야니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취소해 달라고 한국 정부가 영국 고등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패소가 확정됐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정부의 조치를 국제중재에 넘길 수 있는 특권(ISD)을 준 이후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패소한 경우다. 한국 정부는 이란 다야니 가문에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모두 75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이란 다야니 일가는 이란의 대표적 가전 회사인 ‘엔텍합’의 주주다. 2011년 부실기업이 된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고 지분 57%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까지 지급했는데 결국 계약은 해지되고 자산관리공사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소송으로 비화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가 잇따르면서 관련 규범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가 잇따르면서 관련 규범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연합뉴스

이란 다야니 가문과의 소송에서 패한 이유

사실 이 사건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을 이유로 이란계 은행을 미국의 달러 결제망에서 제외했다. 한국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다야니 가문과의 인수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계약은 무산됐다. 얼핏 보면 채권단과의 문제였지만 자산관리공사가 공기업이라는 게 문제였다.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인 ISD(Investor -State Dispute)란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 때문에 피해를 봤을 경우 국제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투자자가 투자 상대국의 법령이나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았거나 투자 상대국이 협정상의 의무나 계약을 위반해 손해를 본 경우, 해당 투자기업이 아니라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196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 한·미 FTA 체결 때부터 ISD 조항이 도입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는 모두 7건이었다. 이 가운데 3건은 종결되고, 4건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정식 제소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것도 3건 있다. 이들의 소송 가능성까지 포함하면 모두 7건이 된다. 모두 우리 정부가 진다고 가정한다면 거의 13조원의 유출이 우려된다.

진행 중인 4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역시 외환은행 지분매각 심사를 금융위가 고의 지연했다는 등의 이유로 론스타가 제기한 소송이다. 규모가 5조4000억원에 이른다. 론스타의 ISD 제소는 한·미 FTA의 ISD 조항이 아니라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에 근거한 소송이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주식 51%를 1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그 뒤 2011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4조4000억원에 하나은행에 팔고 떠났다. 적지 않은 수익 같지만, 론스타의 생각은 다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을 2006년 KB금융지주, 2007~08년 영국계 글로벌 은행인 HSBC 등에 매각하려 했지만 금융 당국이 매번 국민 정서 등을 이유로 매각 승인을 늦췄다고 주장한다. 론스타에 매각을 늦추도록 요구하고 세금을 부과한 것이 과연 국제관례에 어긋나지 않는 것인지가 관건이다. 설사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면 그 피해액을 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ISD 소송은 문제가 더 복잡하다.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결의가 발표됐다. 엘리엇은 바로 다음 날 주주 자격으로 삼성물산에 합병 반대 의사를 통보했지만, 공방 끝에 합병은 최종 승인됐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한국 정부가 합병 승인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그 때문에 주가가 하락해 적어도 7억7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 문제는 이미 국내 법원에서 박근혜 정부 개입의 불법성이 확인된 사안이다. 대법원까지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이면 엘리엇 측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정부로서는 론스타와 비교해 봐도 상황이 더 어렵다.

ISD는 하나의 절차 규율이다. 분쟁이 발생하면 정부도 투자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기업을 보호하는 투자협정의 성격을 갖고 있어 ISD 중재는 기본적으로 제소자에게 유리하며 국가 주권을 제한한다. 투자 자본에는 반가운 제도지만, 투자를 받는 국가에는 부담이다. 기원을 따지자면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미국 자본의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공공정책과 기업의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ISD로 인해 공공정책이 위협받는 사례는 심심찮게 발견된다. 독일 정부의 원전 폐쇄 결정도 스웨덴의 한 에너지 기업의 소송 때문에 분쟁센터로 가야 했다.

민변은 2016년 1월 국세청을 상대로 론스타 관련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했다. ⓒ 연합뉴스
민변은 2016년 1월 국세청을 상대로 론스타 관련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시장 개입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

하지만 우리의 투자 상대국 대부분이 따르는 기준이라면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국내에서 통용되는 관행이나 정책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바람직하기도 하다. 정부의 시장 개입도, 정책도 이른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낫다. 이미 우리 기업이나 개인도 외국 정부를 상대로 ISD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2013년 우리나라 기업이 키르기스스탄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2015년 오만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가 합의 종결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밖에 국내 기업이나 개인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ISD가 3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시장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법과 원칙을 따르는 정공법이야말로 항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상대의 잘못이 없는데 계약을 취소하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 아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무리한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비판을 각오하고 절차를 밟아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했어야 했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정치 권력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투명하고 정당하며 비차별적인 제도의 경우라면, ISD를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관행은 가능하면 고치는 것이 옳고, 그런 의미에서 ISD의 효과는 긍정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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