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세균 포스코 청탁’ 朴씨, 친노 인사들 로비 의혹
  • 조해수·유지만·조유빈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6 10:00
  • 호수 15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정세균, ‘계약체결이 유력한 상태 만들어 달라’는 박씨의 요구 들어줘”
朴씨, 노무현 정부 때부터 ‘친노’와 막역 주장…故강금원 회장,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 등 거론
당사자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박씨가 자랑 위해 꾸민 것" 반박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2014년경 박아무개씨의 청탁을 받고 포스코건설에 송도사옥 매각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시 송도사옥 지분을 갖고 있었던 박씨는 송도사옥이 높은 가격에 팔리길 원했다. 정 후보자는 포스코건설로부터 매입업체 상황, 매각결정 시기 등을 알아내 박씨에게 전달한 것은 물론이고, ‘계약 체결이 유력한 상태로 만들어 달라’는 식의 노골적인 요구까지 들어줬다(기사 하단 녹취록 참조).

송도사옥 매각은 3000억원 상당의 초대형 계약이다. 또한 포스코는 2000년에 이미 민영화됐다. 즉, 정 후보자는 수천억원이 오가는 민간기업의 계약에 개입한 것이다. 더구나 2014년 당시 정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이자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만큼 거물 정치인이었다. 포스코건설 측은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황태현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은 기자에게 “(외압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고 나중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보안과장에게 경호 수위를 높여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 측은 “박씨는 교회에서 만난 지역구민이고, 민원을 들어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평범한 민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박씨는 단순한 지역구민이 결코 아니다. 박씨는 송도사옥 매각을 위해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친박(근혜)’ 실세였던 서청원·이우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수십억원의 불법 자금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청원·이우현 의원은 그 대가로 포스코건설의 모기업인 포스코의 권오준 당시 회장을 직접 만나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2018년 1월22일 “[단독] 서청원 의원, 포스코 회장 만나 이권 청탁” 기사 참조).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박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정치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불법 정치자금을 정치인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특혜를 요구했다. 특히, 박씨는 ‘친노(무현)' 인사들과 오래전부터 막역한 관계를 가져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민원인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 수준 현저히 벗어나”

시사저널은 지난 2018년 3월19일 ‘[단독] 정세균 국회의장,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매각 개입 의혹’ 기사를 통해 정 후보자와 박씨의 대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정 후보자는 시사저널을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 역시 시사저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민사13부는 지난해 12월18일 원고(정 후보자) 패소 판결을 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박씨가 원고(정 후보자)로부터 포스코건설 측과의 접촉 결과를 전달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원고에게 포스코건설 측으로부터 ‘역으로 우리에게 인포메이션을 주면서 어떤 조건이 좋겠다’는 특혜성 정보를 받아와 달라고 요구하였고, 원고가 이를 수락하였다. 이는 박씨가 노골적으로 원고에게 포스코건설 측이 박씨를 계약 상대방으로 인정해서 계약 체결이 유력한 상태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원고가 이에 응하는 것으로서, 지역구민과 그의 통상적인 민원을 경청하는 국회의원이 나누는 평범한 대화의 수준을 현저히 벗어나 있다.”

정 후보자와 박씨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ㅇ’교회를 함께 다녔다. 박씨가 정 후보자에게 청탁했을 당시 살았던 집은 ‘ㅇ’교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박씨의 부인이 소유했던 ‘ㄱ’빌딩은 ‘ㅇ’교회와 담을 맞대고 있다. 정 후보자와 박씨가 단순히 교회에서 만난 사이인지는 의문이다. 정 후보자 측은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당시 안수집사로 있던 박씨를 소개해 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씨와 함께 송도사옥 매각을 추진했던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 A씨는 “박씨가 (정 후보자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씨의 정체는 박씨가 직접 녹음한 파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사저널은 2013~14년 박씨의 녹음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수백 개가 넘는 파일에는 박씨가 통화하거나 만난 사람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녹음파일에는 다양한 정·관·재계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수의 국회의원과 정치인, 검찰·경찰 관계자 등이 눈에 띈다. 문제는 이들과의 관계가 결국 불법적인 커넥션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녹음파일 곳곳에는 박씨가 정치인 등에게 거금을 주며 특혜를 청탁하는 정황이 담겨 있다. 박씨는 호주 로또 사업을 추진하며 서청원 의원에게 수십억원의 돈을 건넸으며(2017년 12월20일자 “[단독] 서청원, 호주 로또 사업권 빌미로 50억 가로챘다” 기사 참조),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는 이우현 의원에게 수십억원의 공천헌금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2018년 1월5일 “[단독] 이우현, 서청원 내세워 용인시장 공천헌금 받았다” 기사 참조). 또한 김성회 전 의원이 한국난방공사 사장으로 재직할 때 공사를 따내기 위해 수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2018년 3월5일 “[단독] 김성회 한국당 당협위원장, 수억대 뇌물 수수 의혹” 기사 참조).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박씨, “옥살이 때 노무현 정부 비서관 하나도 안 불었다”

‘친노’ 인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녹음파일에는 2013년경 박씨와 정현태 당시 남해군수와의 커넥션이 담긴  수십 건의 통화가 존재한다. 정 전 군수는 부산·경남(PK) 지역의 ‘친노’ 인사다. 진주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3~05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남해군수를 두 번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도 그를 중용하고자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 전 군수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발탁했으나, 정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공무담임권이 박탈된 상태였기 때문에 위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정 전 군수는 현재 노무현재단 남해지회장을 맡고 있다.

박씨와 정 전 군수의 ‘만남’은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출발한다. 정 전 군수는 당시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녹음파일을 종합하면, 박씨는 검찰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정 전 군수에게 폐기물 매립장 인허가를 받아냈다. 이와 관련해 정 전 군수는 “박씨가 창원지검 진주지청 B부장검사, 대검 C공안과장과 친밀한 사이였다”면서 “실제로 로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 전 군수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5년 5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정 전 군수와 자신의 관계를 “식구”라고 말하며, 친노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강조했다. 다음은 녹취의 일부분이다.

“제가 자신 있게 얘기를 하지만 내가 군수님한테 안 한 얘기가 있어요. 나중에 김영배(청와대 전 민정비서관)한테 물어봤지만(물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사실 노무현 정권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 저도 10개월을 한 사람이에요. 그 정도로 제가 입이 무겁고 노무현 정부 하다 못해 비서관 출신 하나만 불면 풀어주겠다는데 제가 입을 꼭 다물고 1, 2, 3심 다 무죄를 받았습니다.”

박씨가 언급한 것은 2008년 터진 ‘부산자원 특혜 대출 사건’으로 보인다. 폐기물 처리업체 부산자원의 대표였던 박씨는 폐기물 매립장 조성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부정대출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박씨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박씨의 인맥으로 ‘친노’ 핵심 인사들이 대거 거론됐기 때문이다. 2008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은 쟁점화됐고, 박씨가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박씨는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는데,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2008년 국감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사철 의원은 이렇게 질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동지인 강금원이라는 창신섬유 회장이 있습니다. 경기도 장호원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박씨는) 강금원씨하고 계약을 해서 군납 의류를 만드는 하청업자였습니다…(중략)…대출 과정을 거쳐서 (박씨에게) 490억이 대출이 됐는데, 강금원씨나 청와대로부터 부탁이나 또는 압력이 내려온 것이 아닌지(의심됩니다).”

이와 관련해 정 전 군수는 “처음 만났을 때, 박씨가 ‘강금원 회장을 모시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면서 “강금원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다. ‘친노’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은 박씨를 “김대중 정권 때도 동교동 측근들을 주무른 사람”(한겨레신문, 2008년 10월29일자 “대형 게이트 인사들은 서로 통했다?”), “송기인 신부의 양아들”(동아일보, 2008년 10월30일자 “구속 박○○ 대표 송기인 신부 양아버지라고 과시”)이라고 소개했다. 다음과 같은 기사도 눈에 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인) 송기인 신부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에게서 ‘박 대표를 조심하라’는 취지의 얘기를 들은 뒤 박 대표와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동아일보, 위 기사 동일).”

이와 관련해 송 신부는 기자에게 “박씨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씨 “김영배 면회와 눈물 뚝뚝”, 김 전 비서관 “면회 사실 없다”

박씨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자랑하기도 했다. 정 전 군수는 “박씨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씨와 정 전 군수의 통화 녹취 중 일부다.

“그랬더니(2008년 부산자원 특혜 대출 사건으로 구속됐더니) 영배가 면회 와 가지고 눈물을 뚝뚝뚝 해 갖고, 영배를 내가 따귀를 때렸어요. 사나이 새끼가 이렇게 약해 가지고 무슨 정치를 해 먹느냐고. (내가 김영배에게) ‘앞으로 두 번 다시 면회 오지 마라. 니들 잡으려고 그렇게 발버둥 치는데 면회 오는 자체가 나는 달갑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내가 입이라도 조금 무겁다면 무거운 놈입니다.”

김영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친노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때로 ‘부산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부산 출신으로 브니엘고와 고려대를 나왔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실·정무기획비서관실·민정비서관실 행정관과 행사기획비서관을 지냈다. 2010년에는 성북구청장에 당선됐고 재선까지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2018년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재입성했고, 백원우 전 비서관에 이어 2019년 8월까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을 지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재 서울 성북갑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 뛰고 있다.

김 전 비서관은 박씨와 관련해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부산에서 알게 된 사이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어졌고,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서 “박씨에게 면회 간 사실이 없다. 아마 박씨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내 얘기를 꾸며서 하고 다닌 것 같다”고 밝혔다.

박씨는 사기 혐의 등으로 수감돼 있다가 최근 출소했다. 시사저널은 박씨의 입장을 듣고자 박씨와 그 가족에게 수십 차례 연락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우현 전 의원 공천헌금 수수 사건 당시 박씨도 조사를 받았다”면서 “박씨의 녹취파일이 더 많이 있다고 들었다. (검찰이) 이를 어느 정도까지 확보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고소·고발이나 수사의뢰가 있다면 수사가 바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박씨 통화 녹취록(2014년 6.4지방선거 전날)>

정세균 : (포스코 측이 송도사옥 매각을) 처음 그냥 초벌, 초벌 검토한 결과는 “국내에 마땅한 업체가 없는 것 같다”(라고 했다.)

박씨: 네.

정세균: 그런 반응이에요. 그래서 (포스코 측이 송도사옥 매각을) “이번 주에 검토를 해서 아마 결정을 다음 주 초쯤 하게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박씨 : 네네네.

정세균: 그래서 이제 우리 얘기를 하면서 “지불 조건이 좋은 내용으로 비딩(bidding·입찰)을 했다고 하니 잘 좀 감안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박씨: 하하. 예 감사합니다, 예.

정세균: (포스코 측에 그렇게) 얘기를 한 상태인데 일단 처음 나온 반응은 그래요. 그래서 (내가) 거기(포스코 측)에 “이제 지금 좀 더 좀 더 체크를 해 봐라. 그래서 길이 없겠는지 연구를 해 봐라”(라고) 얘기를 해 놓은 상태예요.

박씨: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어떻게 선거 판세는 좀 좋습니까. 대표님 고생하시는데 결과가 좋아야죠.

정세균: 글쎄 말이에요. 예... 그래서 (포스코 측이) 오늘 내일 결정하는 상황은 아니고, 지금 심층적으로 검토를 한답니다.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박씨: 그러면은 그쪽에서 역으로 지금 우리한테 인포메이션을 좀 주면서 “어떤 조건이 좋겠다”(라고) 이렇게 얘기 한번 해 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정세균: 글쎄 말이죠. 한번 다시 그런 걸 어떻게 해 보든지 (포스코 측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박씨: 예 감사합니다, 대표님. 하여튼 오늘 마지막 남은 시간 좀 힘드셔도 파이팅 한번 하십시오.

정세균: 예예 그러겠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