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SKY’부터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6 09: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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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희망과 축복의 덕담을 나누는 때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운명의 시간이기도 하다. 새해 시작과 함께 대입 정시의 계절도 함께 열렸기 때문이다. 입시생들의 초조함과 긴장감도 극에 달할 시기다. 이번에도 많은 입시생이 ‘인서울(in Seoul)’을 외치며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 것이다.

입시철인 이맘때면 무작정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커진다. 그들을 혹독한 시련 속으로 밀어넣은 것이 우리 같은 어른들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느낌에서다. 거기에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까다로워진 입시 제도에 대한 미안함도 적지 않다. 대학 입학에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이 처절한 경쟁은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도, 그 부모에게도 한없이 무거운 굴레일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알려주는 지표들은 늘 무한으로 나빠진다. 최근에 나온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조사 결과 자료에는 우리 아동‧청소년 중 33.8%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거나(28.6%), 자주 한다(5.2%)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응답자 중 37.2%는 학교 성적 등 학업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다시피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부동산, 지방 분권 같운 사회적 문제들이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잘못 손대면 ‘역린을 건드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 만큼 교육이 기준만 잘 잡아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가지런해질 수 있다. 교육부는 대입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시 확대 방안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사교육 열기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고액을 받고 ‘맘 케어’를 펼치는 입시 코디가 버젓이 활개 치는 등 입시가 거대한 시장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는 완벽한 정책을 찾기도, 펼치기도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각 부문의 공조가 절실하다.

가장 핵심적인 열쇠는 대학이 쥐고 있다. 이른바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으면 틀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대학이 서로 좋은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결과 명문대 입학생의 다수를 특정 지역, 특정 고교 출신이 차지하는 현상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교육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더 좁아든 ‘인서울’의 문을 뚫으려는 일반고와 지방 학생들의 경쟁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우리나라처럼 ‘SKY’로 불리는 명문대 지향성이 강한 입시 풍토에서는 그해 명문대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은 입시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명문대들이 솔선수범해 ‘변별력 지상주의’를 버리고 좀 더 고르게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들이 발휘하는 선한 영향력은 사회 곳곳에서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들이 똑똑한 인재보다는 좀 더 다양한 계층에서 학생을 뽑아 ‘잘 가르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긴 세월 고질이었던 줄 세우기 교육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제도가 나와도 그 취지가 현장에서 살아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관성을 깨려면 관성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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