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 농어업비서관 신정훈의 《지방에도 희망이 있는 나라》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5 11:00
  • 호수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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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지방 분권을 향한 정치가의 열정 라이프

1985년 5월23일, 만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신정훈은 고려대 대표로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에 참여했다. 자신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은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그는 ‘언젠가 나는 아버지 같은 분을 위해 살겠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살고,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 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일을 내가 하겠다’고 결심한다.

6월 항쟁 후 출소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에 뛰어든다. 100년 전 탐관 조병갑 등이 만들고, 일제가 강화시킨 수세 폐지 운동을 시작한다. 1989년 2월 수세의 반값 인하와 1997년 수세의 완전 폐지를 이뤄낸다. 세계 농민운동사에도 기록될 성공이었다. 이후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호남 정치에 들어가지 않고, 무소속으로 두 번의 도의원과 두 번의 나주시장에 당선된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해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녹색 열풍에 밀려 낙선한다. 이후 대선에서 활약하고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지방에도 희망이 있는 나라》 신정훈 지음│비타베아타 펴냄│272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지방에도 희망이 있는 나라》 신정훈 지음│비타베아타 펴냄│272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농민운동 여정 생생하게 기록한 자서전

만만치 않은 정치 여정을 생각하면 환갑은 넘었을 것으로 느껴지지만 그의 나이는 만으로 55세밖에 되지 않았다. 위의 여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서전 《지방에도 희망이 있는 나라》를 출간한 신정훈 전 비서관을 고향 나주에서 만나봤다. 그는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이 고향 집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거친 손을 잡을 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농촌이고, 고향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을 외지 학교로 보낼 수 없어서 나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이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고향의 가치가, 농촌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회장도 우리 가족과 깊은 인연인데, 딸 백도라지씨가 나주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밤새 술을 마시며, 정담을 나눴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작가에게 고 백남기 농민회장은 또 다른 의미로도 남아 있다. 바로 자신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연결한 것도 고인이었기 때문이다.

“백남기 농민회장이 2015년 11월14일 물대포를 맞고 서울대병원에 이송된 후 수상쩍은 뇌수술을 두고, 병원과 유족이 의견을 달리할 때 문재인 대표가 수행원도 없이 혼자 몸으로 헐레벌떡 병원을 찾아왔다. 당시 백남기 농민회장에 대한 여론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놀라운 일이었다. 명동성당 장례미사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진심으로 위로하는 문재인의 모습은 다른 정치인들과 사뭇 달라 보였다. 이 때문에 더 깊은 인연을 맺었고, 청와대 근무까지 이어졌다. 물론 더 큰 배경은 대통령이 가진 농업에 관한 신념과 의지였다.”

작가의 뇌 구조 그림을 그리면 가장 큰 것은 농촌이고 다른 단어는 나주나 화순 등 지역, 혁신도시, 한전공대 등도 적지 않은 크기를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그는 2014년 상반기 나주·화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당선된 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농민 대표였던 김현권 의원이 입성하는 데도 가장 힘을 쓴 의원이었다.

“농어업은 우리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희생된 분야다. 특히 식량 주권의 뿌리인 쌀값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말 12만8000원이던 것이 2017년 18만5000원으로 상승했다. 급속한 가격 상승에도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은 것은 농업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또 농어업은 향후 우리나라 미래산업이 될 요소가 충분하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에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이 극소수라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가 책 제목을 《지방에도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정한 것은 그간 활동하던 지방 분권의 가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이 새로운 미래 동력이 돼야 한다. 실제로 그는 시장 시절 ‘나주 혁신도시’를 유치했고, 최근에는 한전공대 유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에 당선된 후 나주시 인구에 대한 상황을 봤다. 암담했다. 내가 어렸을 때 1000여 명에 달했던 읍·면·동 중학교들 가운데 지금 폐교 위기에 몰리지 않은 학교는 거의 없었다. 30년 안에 전국 군 지역 37%와 읍·면·동 40%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 해법으로 나주 혁신도시 유치는 정말 사활을 건 문제였다. 하지만 행정도시가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전공대를 기획했다. 이 지역 공기관 등과 함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나주가 거점이 되면 주변 시·군들도 활기를 띨 수 있다.”\

 

“좋은 고집 지키고, 아집은 버린다”

작가는 도의원으로 시작해 무소속 시장, 국회의원,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등 행정과 정치의 밑바닥부터 다져왔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그의 고집에 대한 의견이나 이미 판에 박힌 정치인이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신씨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이런 정당한 고집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행정도시 이전에 역행하는 소식이 나왔을 때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우리 시민들도 어떤 지역보다 먼저 나섰다. 또 내 가족의 성공을 위해 어떤 힘도 쓰지 않고 신념을 지키려 했다. 반면에 고향 어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아들이고자 낮은 자세로 임했다. 그것이 지역 정치가 강했던 호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고집은 지키고 아집은 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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